“인생은 본질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스스로의 실존을 찾아 떠나는 끝없는 여정이다.”로 요약될 수 있는 실존주의에서 나는 인간을 보려고 했다. 규정되지 않은 부정성으로서의 실존은 다양한 경험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 특히 고전에서 실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으로 읽는 실존주의”는 데미안에서 청춘과 불안을 이방인에서 부조리를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로 대표되는 고정관념을 살펴봤다. 한강작가는 채식주의자를 통해 여성과 소수에 가해지는 폭력을 보여줬고 난장이가 쏳아올린 작은 공과 디디의 우산은 자본주의 하에서 강요되는 인간상을 낱낱이 보여줬다.
열두 편의 고전을 지나며, 나는 실존이란 개념이 아니라 감각임을 배웠다. 내가 느낀 실존은 경험이 아니라 공감이고 만족이 아니라 불안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의 발전이 불안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불안하기 때문에 사회에 의해 규정된 본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실존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자립이 주는 고통과 공포는 결국 타자와의 연대 속에서만 치유될 수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실존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규정하고 불안하지만, 타자와의 공감을 통해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인생의 등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키치처럼, 혹은 『1984』의 전체주의 체제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규정하고 길들이려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결단일 수밖에 없다. 결단하고 행위할 때만 우리는 실존에 다가갈 수 있고 우리가 조상들에 의해 열어 밝혀진 실존을 등불로 삼는 것처럼, 우리가 미래의 우리에게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은 그렇게 이어지는 불빛들의 사슬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