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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명리학은 왜 필요할까?

intro. 명리는 논리.

by 전인미D

최근 혼자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연달아 힘든 일이 있었다. 큰 일로 휘청이고 나니 작은 일에도 갈대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세상에 동요되지 않고 혼자서 위로하고 해답을 구하는 건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위로가 필요했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타인의 위로는 한계가 있다. 진짜 위로는 남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해답을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직장생활 19년, 결혼생활 13년 차. 이 정도 세월이면 누구나 삶이 순조롭기보다는 해결하고 책임질 일 투성이다. 내 손에서 감당 안 되는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날때 다만 이 상황들을 잘 정리하여 해결을 하고 싶었다.


내가 겪는 일들과 내 상황을 이해하고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명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사주팔자를 공부하며 많은 부분이 위로가 되고 납득을 하며 플랜을 짜고 있었다.

사주는 사기 아니냐며, 궁합따위 안중요하니 좋아하는 마음만 믿고 결혼했던 내가 지금은 명리학을 중심으로 삶을 꾸리고 있다.


나는 해답을 찾고 잘 해결해서 지금의 고착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이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조급하지 않고 시간을 믿으며 오늘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요즘 회사에서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신과 상담보다 좋아. 명리학 공부를 해봐."


우리가 원하는 위로와 해답은 모두 다 내 안에 있다.

우리가 사주를 보러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운명을 살펴보며 자신을 이해하고 현재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치유받고자 한다. 길흉화복을 점치며 미래를 희망하고 싶은 것이다.


사주 감명(鑑命)도 일종의 위로 카운슬링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한 인생 컨설팅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모두 스스로의 정답을 가지고 있다. 꺼내 쓸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


명리는 논리다. 미래를 점치고 과거를 맞추는 게 아니다. 스스로 공부하면 자신의 명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삶의 가이드라인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렇게까지 불안하고 흔들릴 필요가 없다. 흔들림 속에 중심을 잡을 수 있고, 괴로움 속에서 희망을 읽게 되고, 절망 속에서도 움직일 힘을 내게 된다.


무엇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눠 좋고 나쁨으로 우열을 나누지 않게 된다.

자연은 칼 같지가 않다.

한참 더웠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다 인지하지 못하게 기온이 점점 떨어지고 눈이 내린다 싶었는데 꽃이 피고 있다.

모든 것은 그라데이션처럼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

이렇게 세상사는 연결되어 있고, 길흉은 명확한 선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인생의 위기라는 게 무의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극복에는 성장과 배움이 있다. 부딪혀 나가면서 우리는 자신이 성장하고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건강한 보통의 사람들은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성장을 희망한다. 이런 성장은 위기의 순간 해결하고 실행했던 노력에서 탄생한다. 안정만 지속되어서는 삶이 정체되기 쉽다.

길한 상황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며 흉한 상황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순조로운 시기에는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며, 위기의 시기에는 어떻게 관리할지를 스스로 전략을 짜는 것이 삶의 의미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은 쓸모없는 것이 없다. 괴로운 시간이라고 시간아 빨리 흘러버려라 주문 외울 것도 없다. 어떤 시간을 겪든 거기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건 자신의 행동 밖에 없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야 하지만, 사람 자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명리학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관계의 학문'이다. 나는 원래 이야기를 듣는 것과 하는 것을 모두 좋아했다.

지금이야 사회생활에 치여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끼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사람을 참 좋아했었다. 그리고 다시 좋아하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내 인생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미움의 에너지는 사랑의 에너지보다 더 크다. 그래서 다들 세상을 미워하느라 늘 지쳐있다.

미움이 많은 사람은 분노로 기운을 흘려버려서 늘 지쳐있고 기운이 없다.

에너지가 넘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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