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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주 없는 사람 없다

<태어난 순간 나만의 우주 시계를 갖게 되었다>

by 전인미D

사주 없는 사람은 없다.

명리학에 관심이 없다 해서 사주라는 것이 없던 일인건 아니다.

어머니 몸에서 나온 순간 우리는 각자 탄생 시각을 부여받는다. 그 순간부터 우주의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나의 시계는 움직이게 된다.


각자가 받은 인생의 시계는 10년마다 새로운 모델로 바뀌게 된다. 이것을 대운이 바뀐다고 한다.

내 생년월일 사주명식은 이미 나에게 고정된 기운이지만, 10년마다 새롭게 받는 시계 속 대운은 유동적인 기운이다. 사람마다 대운의 흐름과 기운은 제 각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2025년 을사년이라는 세운(1년)은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적용지만, 대운은 사람마다 다른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모두 자기만의 시계 속에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10년마다 바뀌는 대운은 시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의 삶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우리의 삶은 그 안에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 방향이 순조롭든 아니든 길게 보면 지금 당장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새로운 대운은 늘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기분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번 대운이 어려웠다고 해도, 다음 대운에서 더 나은 세계가 펼쳐지길 희망하며 오늘을 실천한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 나만의 우주 시계를 갖게 되었지만 자기의 시간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 시간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보통 스스로가 아니라 전문가에게 찾아가서 상담을 하게 된다. 상담 시간은 보통 30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처음 본 사람에게 내 우주 시간은 몇 시쯤이며 몇 시로 향해가는지 물어보게 된다.

물론 전문가니까 대략의 시간을 알려주겠지만, 진짜 시간은 나만이 알아낼 수가 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내 진짜 욕망을 파악해 내 시간을 제대로 알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담자는 상담 시에 100% 솔직할 수가 없다. 방어기제로 일부 내용을 숨기거나 시간 제약과 기억력 문제로 일부 상황을 누락할 수 있다.

남이 봐주는 사주상담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최적화된 풀이는 스스로가 해야 정확도가 높다는 말이다.


명리학이라는 학문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주를 들어본 적도 없거나, 알긴 하지만 뭔지 잘 몰라서 못 본 척한다고 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 눈 감는다고 타인이 나를 못 볼 리 없듯, 내가 모른 척 한다한들 내 우주 시간의 영향이 내게 미치지 않을 리 없다. 시계는 내가 알아채든 모르든 흘러가고 있다.

누구나 가진 태어난 시간, 기왕 존재하는 거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활용하는 게 더 전략적이다.


델포이 신전에는 너무나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 아포리즘이 새겨져 있다.

신전에 신탁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오히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최고의 신탁'이라는 반어적인 뜻이 아니었을까.

온갖 과학 기술이 발전했지만 자신을 알기가 어려운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SNS에 심취하여 남에게 관심을 쏟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좌지우지되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는 자신을 잘 모르고 있고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거나 정신이 힘들 때 그제야 방치되고 아파진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즉 명리를 찾는 순간은 많은 이들이 지쳐있고 힘든 시기일 때가 많다. 사주풀이를 통해 마법처럼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그러나 명리는 마법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주가 모든 운명을 결정론으로 취급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가만히 있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건 사주의 태어난 시간인 명命 뿐이다. 여기에 나만의 우주시계 운運이라는 기운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

사주는 상수지만 실행은 변수를 만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태어난 위치(환경)와 나의 주체적인 결정과 선택, 실행으로 옮긴 행동들이 많은 결과를 생성해내 인생을 유니크하게 창조한다.

운명이 결정론이라면 팔자가 좋게 태어난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잘 풀려야 하는데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 실행이 없으면 그 기운을 전혀 쓸 수가 없다.

오히려 좋은 운이 들어올 때 잘 쓰지 못하면 운명의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자기의 명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뭘까?

내가 해야 할 일과 방향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길을 직접 걸어가 성과든 실패든 결과를 만드는 것은 나의 발걸음이다.

최근 선생님이 어떤 분을 상담하신 내용을 말씀해 주셨다. 내담자는 과거의 어떤 결정으로 큰 손실을 입었는데 그 선택 때문에 현재에 도리어 큰 이익을 얻게 된 사례였다. 그 내담자가 과거에 상담하러 왔다면 그 선택을 못하게 솔루션을 드렸을 거고, 그랬다면 지금처럼 큰 성공은 없었을 거라며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 말씀하셨다.


삶이란 늘 실패를 피한다고 잘 흘러가는 건 아니다.

큰 실패 뒤에 큰 성공이 있을 수 있고 모험을 피해 안정적으로 선택한 일들은 무난하고 평범해 별다른 성과가 없기도 한다.

무난해서 지루하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는 실패를 최대한 피하고 삶이 순조롭게 흐르길 바라고 있다.

안정적인 삶 속에 안분지족 하기도 하고, 평범한 삶 속에서 회한에 젖어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며 살걸 후회하기도 한다.

크게 배팅하면 크게 잃고 크게 얻는 한방이 생기기도 하고, 소심하게 배팅하면 적게 얻고 미미하게 잃는다.


타고난 운이 좋아서 팔짱 끼고 기다린다고 세상의 성취들이 공짜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명리는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나의 실행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잘 쓸 수 있는 기운이 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명리는 인간의 삶을 철학하는 실용 인문학이다.

이 학문은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다.

존경받고 지혜로운 선인이 되자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세속적인 욕망이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학문이다.

실제적인 일상이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행을 느낀다. 보통 사람의 인생에서 고차원적 철학보다 중요한 행복의 요소는 세속적 삶이 별 탈 없이 유지될 때다.


물론 이 세속적인 욕망의 유지는 봉사/기부/나눔과 베풂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

뭐든 먹기만 해서는 병이 난다. 내가 세상에서 얻은 것이 많을수록 세상과 잘 나누고 소통하여 풀어내는 것이 건강하게 지속되는 삶이 된다.

돈을 벌고 잘 나누라는 말이 구태의연할 수 있지만 공부를 지속하면 알게 된다. 인생의 전략을 잘 파악하고 사회적으로 잘 나갈 때 내가 가진 것을 잘 나누어야 그것이 지속되고 되돌아오는 선순환을 이룬다는 것을.

탐욕적으로 혼자 움켜쥔 것들은 쉽게 증발되거나, 나를 결국 해치게 된다.


잘 먹고 잘 살살자는 세속의 목표와 더불어 이런 부귀영화를 지속하는 쉐어를 이해하는 것이 이 학문이 필요한 이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잘 사는 방법은 나를 이해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것은 내가 태어날 때 부여받은 사주팔자 명식을 공부하는 것으로 결국 이어진다.

나를 공부해야 내가 잘 사는 방법을 알고 결국 나만의 유니크한 행복을 운영하는 길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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