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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집순이의 방구석 역마

<역마는 내 몸이 직접 돌아다니는 기운이 아니다.>

by 전인미D

사주를 몰라도 역마살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은 살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역마'라고 쓴다. 과거와 달리 고향을 떠나 돌아다니는 게 나쁜 것이 아니라 성공과 기회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사주 상담을 받는다면, "너는 역마살이라 고향 떠나 살면 좋아~ 너는 역마살이라 그렇게 평생 빨빨거리고 돌아다닐 거야. 역마가 있으니 해외로 가는 것이 길해."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역마라고 하면 물리적으로 신체가 돌아다니는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마는 꼭 내가 직접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역마가 있는 사람은 집에 가만히 있기 어렵다고 단식적으로 통변을 하면 안 된다.

역마 있는 사람이 집에만 있으면 병이 난다거나 인생이 안 풀린다는 건 일차원적인 분석이다.


집순이도 역마를 아주 잘 쓰고 살 수도 있다.

얼핏 집과 역마는 모순적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에는 이 역마의 개념을 물리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이거나 시스템으로도 연결할 수 있다.


요즘은 구매 대행, 배송 시스템, 방송 송출(유튜브, SNS 등) 등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보나 서비스를 이동하게 하는 것도 역마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무엇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내 몸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방 안에 앉아서도 세계여행을 할 수 있고, 물건을 구입하여 배송시키고, 이메일로 정보를 보낼 수 있다.

21세기의 역마는 몸의 이동이 아니라 정보와 서비스의 이동도 포함한다.


내 사주 원국에는 역마가 2개가 있다. 사巳 역마와 해亥 역마다.

두 역마는 서로 충을 하는 관계라 기마(일어선 말)가 되어 역마 기운이 더욱 활성화된다.

사와 해 역마 모두 체는 음이지만 용이 양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음의 본질을 갖고 있어서 활동 범위가 작은 역마라고 보면 된다.


역마가 있으니 당연히 생활의 활동반경이 커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활동력은 음적인 영향으로 "바쁜 집순이"로 드러나게 된다.

사역마는 시지의 오화와 묶여 식신 장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천간의 정인으로 상관패인까지 되어 이 역마는 집에서 책을 읽고 공부(인성=input)하여, 글로 쓰며 표현(식신=output)하고 장생의 기운으로 세상으로 출력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내 공부는 블로그에, 내 생각은 브런치에 공유하며 세상에게 내 정보와 생각을 송출한다.


나의 역마는 공부와 내 생각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몸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움직일 필요가 없다.

내게 최고의 힐링 장소는 집이며, 외출이나 여행보다 집에서 내가 목표한 바를 해나갈 때 더없는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나는 이 역마를 집에서 아주 잘 쓰고 있다.

물론 역마가 사주 원국에 병존되어 있을 경우 사사역마 / 해해역마일 경우 전국이나 해외를 돌아다니는 물리적이고 광역 역마의 기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두 역마가 서로 충하여 활성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정인이 이 둘을 집순이적인 역마로 만들고 있다. 사역마는 해역마에게 상관패인으로 묶여버렸다. 게다가 해역마는 정인으로 십이운성상 사지에 있으므로 육체활동보다는 정신 활동에 최적화되어 있다.


집에서도 혹은 어떤 공간에 갇혀 있어도 내 머리는 온갖 세상을 기웃댄다.

나의 폭발적인 열정과 에너지는 집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어떤 규제도 타인의 눈치도 없이 내 마음대로 활동을 펼칠 수 있다. 그야말로 방구석에 최적화된 역마인 것이다.


보수적이고 수동적으로 역마를 쓴다는 건 뭘까?

제한된 공간에서 혼자 하는 활동을 즐기는 것이다. 몸보다는 정신세계가 바쁘게 움직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활동성이 뛰어난 양적인 역마보다 음적인 역마는 훨씬 더 실속이 있다고 풀이한다.

집이나 한정된 공간에서 나를 바쁘게 만든다는 것은 고요하게 제야에서 실력을 쌓는 시간이 된다.

혼자서 깊이와 경험치를 높이는 것이 바로 방구석 역마라고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겉으로는 전혀 움직임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아웃풋이 나오기까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을 위해 모든 시간을 알짜로 쓰는 좁은 역마는 은근 실속이 있다.

그래서 음의 역마인 사화와 해수는 역마를 자기 스타일대로 잘 쓰면 현실적인 결과물이 꽤 좋다.


이제 역마를 잘 쓰기 위해 무조건 돌아다니며 새로운 일을 수행하고 발견할 필요가 없다. 내 역마가 어떤 형태에 최적화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내가 돌아다니는 기운으로 이 역마를 썼다면, 체력이 약해서 별다른 성과 없이 헛방만 날릴 수도 있다.

내 역마는 방구석 스타일로 쓸 때 효율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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