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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ul 29. 2024

비가 오면.. 벽지는 운다.

둘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비와 벽지는 어떤 관계였을까.

무슨 관계였길래 장마철마다 벽지는 저렇게도 우는 걸까.


평소엔 찔러도 눈 한번 안 찡그릴 것 같던 벽지가 장마철만 되면 운다.

어쩌다 한번 비 오는 날에는 그래도 괜찮다.

살아가다 잠깐 생각나는 재채기 같은. 딸꾹질 같은. 기억일 뿐이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평평한 모습을 유지한다. 하지만 며칠씩 비가 이어지는 날에는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저렇게도 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도대체 비와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대답할리가 없다.

울퉁불퉁 가득 고인 눈물의 음영만 더 뚜렷해질 뿐이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물이 더 거세진다.

질문은 벽지에게 했는데, 대답은 빗물이 하는 걸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빗물어를 배우지 못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다.

다만 창문을 두드리는 강도와 간격을 통해 둘 사이엔 분명히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이 있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말은 안 통해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애절함에 나는 순간 창문을 열뻔했다.

저렇게 애절한데 둘을 만나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창문 손잡이에 올렸던 손을 잠시 멈춘다.

아니야.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만큼의 거리만 허락하는 게 저 둘에겐 좋을 수 있어.

만약 내가 창문을 열어 둘을 만나게 한다면, 당장은 간절했던 재회에 기쁘겠지만 결국 벽지는 빗물에 젖어 더 이상 못쓰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 적어도 매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는 있잖아.


나는 다시 방바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벽지에게 말한다.

실컷 울어. 마음껏 울어.

하지만 장마가 그치면 다시 예전의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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