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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ul 16. 2024

바람이 오고 갈 '틈'이 필요했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과열된 일상을 식혀준다.

오늘은 화요일.

그러니까 어제는 월요일.


매주 월요일은 내 브런치북 '글감 복지 에세이' 발행일.

하지만 어제는 새로운 글을 발행할 수가 없었다. 시도는 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두 군데의 카페에서 총 세 시간을 앉아있었지만 문장은 가던 길을 멈추고 페이지 상단에 주저 않았다. 그러고는 더 이상 커서를 따라가기 싫다고 칭얼댔다.

꽤 오랜 시간을 어르고 달래 봤지만 대책 없는 녀석을 남겨둔 채 나는 예전에 저장해 뒀던 다른 글들의 목록을 살펴봤다. 그래도 발행일은 맞춰야 하니깐. 하지만 오늘따라 마음에 들어오는 글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마음에 들어오는 글이 없는 게 아니라 눈에 글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세 시간 동안 노트북은 멍하니 입만 벌렸고 내 손가락은 노트북의 가지런한 치아를 붙잡고 가만히 멈춰있었다. 마치 어떤 행위 예술가의 행동처럼. 나와 노트북과 손가락은 모두 멍하니 그대로 멈춰 버렸다.

복잡한 머리와 번아웃된 컨디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쉬움과 답답함을 노트북 가방에 밀어 넣고 카페를 나선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결석이다.




대학 시절. 학기에 한 번은 결석이나 지각을 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잠을 늦게 자서.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고의적인 결석.

같이 수업을 듣던 동기들이 물으면 '벚꽃이 너무 예뻐서. 낙엽이 너무 아름다워서.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서'등의 이유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쉴 틈'이 필요해서였다.

그렇다고 뭐 엄청 열심히 공부했던 건 아니지만, 경험상 그렇게 한번 흐름을 살짝 끊고 다시 출석하면 뭔가 머리가 더 상쾌하고 부드러워진 기분이랄까. 그래서 더 공부가 잘되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겨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항상 마음속에 이만큼의 '틈'이 필요하고 '여백의 미'가 필요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보다고 짐작만 할 뿐.


학창 시절의 미술 시간에도 그러했다.

나는 그림 속에 하얀 공백이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일정 부분엔 색칠을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스케치북에 물감을 안 칠한 곳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수를 매기는 건 선생님이니깐 그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에 채워 넣은 색들은 언제나 이전의 여백보다 아름답지 않았고, 여백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는 선생님을 마음속으로 원망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떠나고?

사실 어제의 골치 아픈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서 여전히 머리는 복잡하다.

하지만 어제와 다르게 지금은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건, 여전히 복잡한 어제의 머리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오늘은 어제부터 이어져온 문제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날이라 더 혼란스러운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틈'이 생겼기 때문일까.


브런치를 발행했어야 하는 날 땡땡이치는 바람에 완벽했던 내 계획에 틈이 생겼고 그곳을 비집고 바람이 불어온 걸까.

그 미세한 바람이 뜨거운 머릿속을 오고 가며 열기를 잠재우고 과열 상태에서 벗어난 뇌가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일지도.

어제는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거 같았는데, 글을 쓰는 지금은 잘 들리고 잘 보인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거리엔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손에 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또각. 또각. 또각

출입문의 틈사이로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온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만약. 떨어지는 빗방울의 틈을 활용할 수 있다면 저 우산도 필요 없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어렸을 때 관련된 유명한 유머가 있었다.


비 오는 날 비 안 맞고 돌아다니는 일본 사람은?

비사이로막가상.


엉뚱한 상상을 한 김에 조금 더 살을 붙여본다.

나도 비사이로막가상처럼 사람들의 틈사이로막가의 초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틈이 필요한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과열된 열기를 식혀주고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낸 상처에 밴드라도 한 장 붙여줄 수 있다면.

세상의 숨결 조금 더 부드러워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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