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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un 17. 2024

당신은 어쨌든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일 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남자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남자는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헬스장에서 피티를 등록했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고, 여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다.

또한 남자는 동기 부여 영상 따위를 적극적으로 찾아봤다. 뭔지 몰라도 당신은 할 수 있다는 격려와 위로, 그리고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냐는 채찍질 같은 말들도 받아들였다. 남자는 자기 계발 따위를 하며 자기 모습을 낫게 바꾸고 싶었나 보다. 


과연 남자는 변화에 성공했을까? 글쎄, 전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달라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핑계들 때문이었다. 약속이 있어서, 전날 과음하는 바람에, 일이 고된 하루여서 등등. 남자는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 문득 남자는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일기장을 펼쳐봤다. 자신이 적은 '열심히 살자'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쓰레기 더미가 남자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뭐? 폐가 터질 듯이 뭐든 열심히 해봐? 꼴값 떠네.’

남자는 일기장 속 자신을 비웃었다. 남자는 자괴감에 휩싸여 또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남자는 자기 계발 따윈 집어치우고 그저 비웃기 시작했다. 여러 매체 속에서 열심히 살자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조소했다. 책이나 강의를 팔아먹으려고 그럴듯한 얘기나 지껄인다면서 그것들은 볼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다른 사람의 북돋는 말들도 자신의 일기장처럼 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그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까닭도 누군가가 추천하는 그 책을 비난해보고 싶어서였다. 남자는 책을 읽는 내내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다. 책 내용이 뻔히 보이는 듯해서였다. 

‘죽음이 만연한 수용소에서도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너는 뭐 하는 거냐. 대충 그런 소리를 하고 싶나 보지.’     


책에서 말했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남자는 그 확신에 찬 말을 읽고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더 이상 잔소리를 참지 못하겠다 외치는 사람처럼 말이다. 


대체 왜 그렇게 애쓰면서 살아야 하지? 사람들이 아등바등 사는 이유는 지금 고생해야 나중에 편하다는 생각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향하려는 곳은 편한 상태 즉, 긴장이 없는 상태이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세상엔 노력하고 투쟁하라는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이 때로 사람을 쥐어짜는 듯하다. 어차피 도착지가 긴장이 없는 상태라면 굳이 노력, 투쟁할 필요 없이 지금 당장에 적당히 만족하고 살면 될 테다.


갑자기 남자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방구석에서 쓰레기와 나뒹굴며 멍하니 핸드폰을 하는 자신. 그 또한 긴장이 없는 아주 편한 상태이긴 했다. 다만, 남자의 생각에 그 꼴은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시체와 비슷한 형태였다. 남자는 적어도 그런 상태를 바라지 않았다.


남자는 자세를 조금 고쳐 잡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은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건 아닐까. 그럼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스스로 선택한, 가치 있는 목표라는 건 대체 뭘까.


고민 끝에 남자는 그게 흔히 말하는 꿈이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한숨이 났다. 어려서부터 숱하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아왔으나 제대로 답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자에게 꿈이란 뜬구름 같은 존재였다. 

애초에 대한민국에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아했다. 그런 거 없어도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무척이나 많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전히 자신이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게 된 원인정신적 나약함으로 밖에 설명할 없었다.


나는 그다지 잘난 사람은 아닌지라 남자에게 열심히 살라던가, 스스로 정한 가치있는 목표를 정하라던가 하는 위로나 격려를 잘 할 자신이 없다. 대신 빅터 프랭클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절망도 실존적 고민이지 정신 질환이 아니다.'

나는 남자가 애써 고민하는 것 또한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그건 적어도 정신적 나약함은 아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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