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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un 10. 2024

일상이 톱니바퀴 같다면

벗어나고 싶은 남자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뭐라도 해야 해.'

남자는 곧바로 의자에 걸려있는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발 길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집 근처 산책로에 도달했다.

'뛰자.'

난데없이 뜀박질을 시작했다. 어디까지, 언제까지를 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정신없이 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폐부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해서야 남자는 도착지를 정했다.      

‘저기 보이는 3층 건물까지 가자.’ 남자는 마라톤 선수라도 되는 양 최후의 한 방울까지 쥐어짜듯 내달렸다.     

남자는 주변 사람이 쳐다보든 말든 쓰러지다시피 건물 입구 돌계단에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들이켰다. 어느 정도 호흡이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생각해 냈다.

‘방청소를 하자.’

남자는 여전히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일단 뭐라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쓰레기 더미에 가만히 묻혀있기보다 폐가 터질 때까지 어디로든 달리다 죽는 게 좀 덜 비참할 것 같았으므로.   

  

나는 남자의 행동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폐에서 피 냄새가 올라올 정도로 달려대다니.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남자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다 앞서 남자가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말했단 점을 포착했다. 그 대사가 꽤 우울하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는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말에 한 번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왜 사는 게 재미없는 걸까. 나는 남자를 알아가기 위해 그의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살펴보기로 했다.


남자는 공장에서 일했다. 기계가 정상 작동하는지 감시하고 상황에 따라 버튼 몇 개 눌러주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다. 별로 힘든 일은 아니었을 테지만 남자는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반복 운동하는 기계를 반나절 정도 멍하니 지켜보는 일이 지루하다 못해 고문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의아해할 테다. 그 정도로 싫으면 그만두지 그랬어? 글쎄, 남자는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제 역할을 버티지 못하고,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는 꼴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라 여겼던 듯하다. 남자는 낙오자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 했을 테다.     


남자가 그렇게 억지로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왔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이었다. 사내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만 곧바로 멀쩡한 척을 하기 위해 말해냈다.

“그냥, 별 일 없이 잘 지내죠 뭐.”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남자의 지인이 말했다.

“넌 여전히 재미없게 사는구나.”

잘 감추어 놓은 속내가 타인에 의해 강제로 끄집어져 진 기분. 남자는 칼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남자는 한참 생각해 봤다. 왜 나를 재미없게 산다고 평가한 걸까. 남자는 눈앞에 기계를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은 기계다.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했다. 자기 의사라기 보단 반쯤 떠밀리듯이 말이다. 그건 기계와 비슷하다. 남자가 반복 운동하는 기계를 지루하게 쳐다봤듯이 남자의 지인도 그를 따분하게 바라본 거다. 생각을 마치자 남자는 자신의 인생이 톱니바퀴와 같이 보였다. 사는 게 재미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고 난 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올랐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자는 출퇴근 말고는 별달리 하는 게 없는,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냈다. 남자는 여기서 자신의 시간이 원형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을 테다. 더군다나 남자는 자신의 일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긴커녕 그다지 의미나 가치조차 가지지도 못했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의미나 가치를 지니지 못했을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공허함 따위를 느끼게 된다.

    

나는 그제야 남자가 달리기를 이해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남자는 스스로 의식하진 못했지만 어떻게든 원형의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신의 의미나 가치를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뭔가를 해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일상이란 분명 소중한 것이라 여기지만 때로 그것의 반복되는 성질이 괴롭게 여겨진다면, 조금 변화를 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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