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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ul 15. 2024

허무한 쾌락 속 당신에게 햇살을

기쁨을 잊은 남자와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남자는 일상이 대체로 즐겁지 않아서, 즐겁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내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기 마련이므로, 집에 돌아오면 전원이 꺼진 듯 까무룩 잠이 들기 바빴다.


신나는 일을 잔뜩 하면 사는 게 좀 재밌어질까. 남자는 한 동안 해외여행에 빠졌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볼거리, 먹거리 등을 즐기다 보면 삶에 활력이 생기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버는 돈을 대부분 해외여행에서 탕진했다. 세 달 정도 급여를 모은 뒤 5일가량의 해외여행에서 쇼핑, 술 등을 즐기며 모두 탕진하기를 반복하는 식이였다.     


분명 재미는 있었으나 동시에 허무하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즐거워한 만큼 돌아온 일상이 전보다 지루하게 여겨졌다. 이전보다 되려 일상을 버티기가 힘들어진 기분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고장 난 배터리 같다고 생각했다. 에너지를 충전해도 금세 방전되는 배터리처럼 신나는 일을 해도 충전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방전된 남자는 열심히 산다던지, 재밌게 산다던지를 떠나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졌다. 남자가 뜬금없이 휴가를 내서 부모의 시골집으로 내려간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테다. 아침 일찍 시골집에 도착한 남자는 곧바로 그날 일정을 정했다. 아침을 양껏 먹고 소파에 늘어져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나 쬐기.

분명 무조건 누워있기로 마음먹었건만 남자는 얼마 안 가 참지 못하고 일어서고 말았다. 한 번씩 그런 날이 있지 않는가. 볕이 유난히 좋아 직접 피부로 느끼지 않기엔 너무 아쉬운 날. 남자는 마당에 나가 앉았다.


마당에서 쬐는 볕은 유별나게 따뜻했다. 식구들 먹일 거라며 남자의 부모가 가꾼 조그만 텃밭, 그 둘레로 어린아이 뒤통수처럼 보드라운 생김새의 측백나무, 옆머리에 꽃을 꽂아둔 듯 텃밭 오른쪽 길가를 따라 늘어선 데이지, 그들을 소중히 감싸 쥐고 있는 듯 보이는 앞산.     


특별하지도 않은 풍경이 이상하게 남자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햇살을 바라보는 행위는 아주 신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충분히 좋았다.     

'그냥 이렇게 햇볕을 즐겨본 지가 얼마만이지?'

남자는 문득 자신이 잊고 있던 중요한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남들 보기에 그다지 재미없는 삶일지라도 내 안에 이런 햇살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으면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자를 보고 에리히 프롬의『소유냐 존재냐』가 떠올랐다. 책에서 에리히 프롬은 쾌락에 이렇게 대해 설명한다. '굳이 능동성(생동성이라는 의미에서)을 요하지 않는 욕망의 충족'

남자가 했던 해외여행, 술, 쇼핑은 쾌락에 기대는 행동이었다. 새로운 즐거움을 통해 분비되는 도파민에 의지하여 인체를 흥분시키고 살아갈 의욕이나 흥미 따위를 느끼려 했기 때문이다. 그건 탈수 상태에서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와 비슷하다. 당장 목마름을 가시게 하지만 더 큰 갈증을 야기하고 내부에 큰 부담을 주듯, 쾌락에 기대는 행위 또한 당장 살아갈 의욕을 얻지만 더 큰 허무함을 야기하고 도파민에 과도하게 기대 뇌에 부담을 준다.     


여행 등 을 좋아하는 혹자는 내가 그걸 쾌락에 기대는 행위라고 정의하는 듯 보여 불편해 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행 등의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남자가 여행을 대했던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여길 뿐이다.     


에이리 프롬은 기쁨을 '인간 고유의 능력이 생산적으로 전개됨에 따라서 수반되는 정서의 상태, 존재에 내재하는 불씨.'라고 설명한다. 

여행은 자신을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밀어 넣는 행위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은 생존을 위해 관찰력 등이 극대화된다. 늘 뜨고 지는 해조차 여행지에서 특별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섬세해진 관찰력으로 인해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던 아름다움조차 느낄 수 있게 돼서 일테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즐거움(새로운 볼거리, 먹거리)에 기대는 여행은 굳이 능동성을 요하지 않으므로 쾌락에 가깝다. 낯선 환경 속에서 예민해진 감각을 바탕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려는 여행은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전개해 정서에 불을 지피므로 기쁨에 가깝다.     


에이리 프롬은 기쁨은 내적인 힘을 성장하게 한다고 말한다. 기쁨을 충분히 느낀 사람은 성장한 내적인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나, 쾌락에 의존한 사람은 내적인 성장이 없기에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

나는 기쁨이란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순우리말로 하면 '알음다움'이라고 한다. '모름다움'의 반대말인 거다. 보다 많은 것을 알아갈 때 사람은 성장한다. 

기쁨이란 대상에 대해 알아가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는 일이 아닐까.     


나는 남자가 기뻐했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 햇살을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하고, 그 과정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남자가 사소할지라도 이런 햇살과 같은 것들을 잔뜩 찾아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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