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근무 야간 출근하기 5시간 전. sns에서 분위기와 맛이 좋다고 유명한 초밥집에 앉아있었다. 곁가지로 나온 장국만 몇 번째 들이켰다. 한 입 먹었던 연어 초밥과 양파 소스가 위장에서 겉도는 기분이었다. 가게는 왜 이렇게 좁지. 의자가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사람이 많아서 어수선한데. 아니, 사실 그날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간간히 흐르는 정적이었을지도.
인생 첫 소개팅 자리였다.
평소에 말재간이 별로 없는 터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행 이야기? 아니면 취미 생활? 일단 대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아무 말이나 내뱉어 댔다.
“저는 오퍼레이터 일을 합니다.”
소개팅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덧붙일까 하다가 다른 이야깃거리로 재빨리 넘어갔다.
공장에서 기계 조작을 하고 있다. 정해진 때마다 버튼 몇 개 눌러주는, 그다지 재미없는 일이다. 그걸 굳이 ‘오퍼레이터’라고 표현한 까닭은 괜히 전문적으로 보이고 싶다는 지질한 허세 때문일 테다. 별 거 없는 밑천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나는 내 직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더군다나 센스 있는 남자는 소개팅 자리에서 그런 딱딱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는 법 아니겠는가.
밥 한 끼, 커피 한 잔 하는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내가 매우 감각 없는 남자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바라본 소개팅녀 얼굴에선 표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내 주둥이는 되지도 않는 부동산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중이었다. 나는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둥이가 죄송합니다.' 라며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결국 자리 지키느라 괴로운 듯 한 소개팅녀를 돌려보냈다.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20시 30분. 2시간 뒤면 출근이었다. 이 정도로 일찍 끝날 예정은 없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회사로 바로 가는 계획까지 잡았건만. 나란 인간은 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부동산 이야기나 꺼내고 있었을까. 새로 새겨진 흑역사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출근하기 전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봐도, 회사 버스에 앉아 유리창에 머리를 몇 번 갖다 박아봐도 소개팅녀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며칠 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해 기계를 조작하는 중이었다. 요란한 기계음이 울리고 반사적으로 현장에 나가 버튼을 눌러줬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멍하니 그 앞을 지키고 서있었다. 회전하는 롤러 사이로 왕복하는 철판.
운전실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전문대를 같이 다녔던 형 이름이 오랜만에 떠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받았다.
“요즘 뭐 하고 지내?”
거의 첫마디부터 말문이 막혔다. 소개팅했던 일이 떠올랐지만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거 빼면 회사 출퇴근 한 거 말고 뭐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별 일 없이 잘 지내죠 뭐.”
결국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형이 말했다.
“넌 여전히 재미없게 사는구나.”
팩트 폭행? 폭행 정도가 아니라 칼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때로 어떤 말들은 사람을 깊게 찌른다. 잘 감싸고 있던 치부가 강제로 끄집어내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그걸 다시 감춰보려 했지만 속절없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운전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cctv화면 너머로 움직이는 기계를 바라봤다. 오퍼레이터는 기계가 정상 작동하는지를 몇 시간이고 감시해야 한다. 반복 동작하는 기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 지루하다. 소개팅녀와 전화를 걸었던 형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다. 반복운동하는 기계처럼 특별한 일 없이 출퇴근이나 되풀이하는 나를 그들도 재미없게 여겼으리라.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 톱니바퀴처럼 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고, 휴일이 되면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잠을 잤다. 대충 눈곱을 때고 일어나면 곧바로 컴퓨터 게임을 켰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다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이 되면 다시 회사로 나섰다.
슬며시 떠오르는 시즌 3천 번째 퇴사 욕구. 애써 억누르기 위해 핑계를 만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선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문득 사는 게 재미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원형의 시간에 갇혀버렸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그럴 때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새로운 목표, 취미, 혹은 사랑 등등이 내 삶을 무가치하지 않게 만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기존 내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 이를테면 오래된 연인, 가족, 고향 등 원형의 시간에 익숙해져 버린 존재들은 나를 더 이상 행복하게 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별로 소중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처음 이 회사에 다니게 될 때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단지 지금의 생활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뿐일 테다. 애써 퇴사 욕구를 눌러 담았다.
"쓸데없이 예민해지지 마."
혼자 읊조려봤지만 소개팅녀 표정과 핸드폰 너머 형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