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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Oct 26. 2024

아침에 먹는 소주와 삼겹살, 그 각별한 맛

막 나온 뜨거운 제품에 측정자를 찔러 넣었다. 두 겹으로 낀 면장갑에서 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보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재빨리 열기를 피해 뛰쳐나와 파드닥 몸을 털어냈다. 꽉 쥐고 있던 손에 측정값을 확인하고선 "아, 또 불량이야."라며 한탄을 내뱉었다. 기계가 말썽이었다. 오차 범위를 고려하더라도 정해진 규격에서 아득히 벗어나는 물건이 나오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뭐가 심통이 난 건지 기계는 불량품만 쏟아냈다. 그 복잡한 속내를 어찌 헤아리리. 기계를 어르고 달래다 지쳐 버린 선배와 나는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형, 물 한 잔만 먹고 할까요?"

"그래, 좀 쉬었다 하자."


휴게실로 들어와 안전모와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찬물을 한 잔 들이켜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덜 잠긴 수도꼭지 마냥 턱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땀방울. 머리 꼭대기까지 열기가 가득 찬 기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숨이 헐떡여졌다. 문득 개는 헐떡이는 호흡으로 침을 증발시켜 체온조절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처럼 헐떡이며 흐리멍덩한 눈동자들 하는 나. 꼴이 마치 개와 같단 생각이 들었다.


고생한 보람도 없이 결국 우린 아침 교대 근무자가 올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기진하여 회사 샤워실로 향하는데 선배가 내게 말했다.

"고생했는데 한 잔 하러 가야지."

그냥 몸을 눕히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으나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애써 싫은 기색 없이 따라나섰다.

"근데 뭐 먹으러 갑니까?"

"니 아침 삼겹살 먹어 봤나?"

아침부터 삼겹살이라니. 그보다 아침에 삼겹살 장사를 하는 집이 있나? 선배들은 숨겨진 맛집이라도 소개하는 양 자신만만하게 나를 데려갔다.          


교대 근무자가 많은 공단 근처엔 우리처럼 대낮부터 술을 찾는 손님들이 많기에 생각보다 아침 영업을 하는 고깃집이 꽤 있었다. 불판에 삼겹살이 올라가고 우린 곧바로 소주잔을 부딪혔다.

"고생하셨습니다."

"욕봤다."

피곤한 몸뚱이에 술을 들이 붇기가 썩 내키지 않았으나 눈을 꼭 감고 잔을 들어 올렸다.     

"어? 술이 단데요?"

인생에 손꼽을 정도로 각별한 맛이었다. 고생한 뒤 아침 해를 바라보며 먹는 삼겹살과 소주. 휴가철에 느끼는 묘한 해방감 내지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선배들은 낄낄거리며 내게 말했다.     

"맛이 다르지? 오늘 욕 많이 봤다. 인생 뭐 별 거 있더냐. 맛있는 거 먹고, 술 한 잔 먹고 하면서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소주맛이 워낙 인상 깊어서였을까. 선배 말이 크게 와닿았다. 그래. 집에서 혼자 드러누워 우울해할 필요 없을 거다. 인생 뭐 별 거 없으니까.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사는 거지. 나는 기분 좋게 술을 들이켰다.          


자리를 파하고 보니 오후 1시였다.

"오, 점심까지 해결했네. 이득이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딱히 바로잡지 않은 채 취기에 몸을 맡겼다. 중천에 떠있는 해를 바라보며 뭐가 그리 유쾌한지 홀로 키득거렸다. 택시비를 아낀다고 30분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갑작스럽게 화장실이 급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원룸촌 근방이었다. 공중 화장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근처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난데없이 지린내를 품게 된 불쌍한 벽면. 나는 물줄기를 쏟아내며 그를 올려다봤다. 옆 건물과 간격이 넓지 않은 탓에 한낮임에도 그늘져 있었다. 겉면 가득 달린 에어컨 실외기나 창문 따위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돋아나 습기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건물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쳐 있는 햇빛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해를 느끼려 숫제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개처럼 벌어서 개 같이 싼다."

갑자기 튀어나온 자학 개그 비슷한 무언가. 생각보다 웃기진 않았다.


지금도 야간 근무가 유난히 고된 날이면 한 번씩 회사 동료들과 국밥 등을 곁들어 술을 먹곤 한다.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동시에 아침부터 술을 먹지 않는다는 어떤 금기를 정당하게 깨뜨리는 듯해 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 생각에 그건 일탈의 맛이다. 은근히 금기시되는 일들,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들이 때로 즐거움을 주곤 한다. 준비물 살 돈으로 엄마 몰래 문방구 불량 식품을 사 먹을 때,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을 하다 장맛비를 맞으며 축구를 할 때. 옳든 그르든 틀에서 벗어날 때 사람은 어떤 해방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뭐든 지나치면 해악이다. 일탈로 인해 나는 물론 주변 사람을 지나치게 망가뜨리진 말아야 할 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나면, 이젠 아침부터 과음해서 노상방뇨는 안 한단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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