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회사 버스를 타고 좌회전. 눈이 얼어붙을 때면 자연 미끄럼틀이 되는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 다시 좌회전. 과속 방지턱을 하나 밟고 그 뒤로 곧바로 있는 횡단보도를 지나친다. 액셀이 다시 부지런히 속도를 올린다. 몇 분 정도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면 오른쪽으로 주유소가 보인다. 나는 내비게이션 안내양 목소리를 떠올리며 속으로 말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입니다.
인적이 드문 공단 도로가 이어진다. 이곳은 잿빛깔의 세계이다. 땅바닥 대부분을 아스팔트가 차지하고 있다. 그 위로 회백색 콘크리트와 철제 몸체를 가진 공장 건물들이 당당히 서있다. 간혹 건물이 없는 빈 공터에는 녹슨 컨테이너 박스 따위가 버려져있다. 듬성듬성 자라난 잡초들은 컨테이너 밑바닥이 자기 자리라는 듯 몸을 잔뜩 구기고 들어서 있다.
버스가 사거리에 들어서 신호를 기다리면 정면으로 거대한 공장 굴뚝이 보인다. 굴뚝에선 불기둥이 뿜어 나오고 있다. 공장에서 발생되는 폐가스를 태워내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그게 공단 세계를 비추는 횃불처럼 보인다. 자유의 여신상이 번쩍 든 그것처럼.
이곳에는 종종 아주 뜬금없는 존재들이 나타나곤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흔적이 나타나곤 한다. 동물의 사체. 고라니로 추정된다. 도로에 화물차가 많이 지나는 탓에 그들의 흔적은 대체로 무자비한 형태로 남아있다. 대체 어디서 온 걸까. 공단 근방은 그다지 발전되지 않은 촌이긴 하지만 고라니가 살 정도의 산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먼 곳에서부터 길을 잃고 헤매다 흘러들어 왔나.
나는 이 길을 지날 때 종종 그들의 마지막을 떠올려 보곤 했다. 어두운 밤. 어딜 가나 돌바닥인 세계. 잠시 몸을 누 위기 위해 부드런 흙을 찾아 다닥다닥 발굽을 놀린다. 그때 저 멀리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뭐야 저게. 낯선 세계에서 고라니는 황망히 서있는다. 고라니 앞으로 거대한 쇳덩이들이 거칠게 지난다. 그는 잠시 도로를 바라본다. 지나야 하나. 고민할 찰나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밝은 빛이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기다. 본능적으로 빛을 향해 몸을 내던진다. 쾅. 눈앞이 번쩍하고. 고라니는 자기가 찾던 세계로 돌아갔을런지.
그날도 버스가 거대 굴뚝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 좌석에 앉아 버스 옆 화물차에 실린 철강 제품의 무게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이것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도로에서 화물차에 실린 익숙한 철강 제품을 보면 괜히 무게나 규격을 추측해 보곤 한다. 저 정도 너비에, 외경이면 대략 30톤 정도 되겠구먼.
속으로 혼잣말을 하는데 갑자기 버스 기사님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뭐야. 웬 수탉이 있어.”
뭔 소리야. 사람들이 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몸을 일으켜 왼쪽을 바라보니 정말 닭이 있었다. 멀리서 봐도 검고 윤기 나는 깃털에, 붉은 볏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수탉이었다. 녀석은 화물차들이 지나는 사거리 한가운데를 여유로히 거닐고 있었다.
수탉이 우리 앞을 지나칠 때쯤 신호가 바뀌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옆 화물차는 바앙 하는 경적 소리를 울릴 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우린 지나쳐가며 트럭을 막아서고 있는 수탉을 바라봤다. 뭐 어쩌라고. 그렇게 말하듯 수탉은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검은 수탉의 붉은 볏이 머릿속에 남았다. 나만 그러한 게 아닌지 버스에서 내리면서 한 사람이 말하기를
“아, 고놈 깡다구 좋은 거 봤냐. 하나 갖다 키우고 싶더구먼.”
나는 공장 굴뚝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녀석을 떠올리곤 한다.
야생 동물 보호 구간입니다.
자기보다 수십만 배는 무거운 화물차를 막아서는 어처구니없는 자식. 자동차 통행을 막는 민폐 녀석. 하지만 그 검고, 붉은 것이 자기 빛깔을 잃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