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레이터 일의 가장 큰 곤욕은 같은 화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기계 움직임에 작은 변화도 재빨리 잡아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게 반복되는 장면을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보통 오퍼리이터는 교대로 운전할 수 있도록 사수, 부사수 2명이 배치된다.
운전 교대를 하면 오퍼레이터는 화장실이나, 식사 등을 해결한다. 그도 아니면 쉬기 위해 잠시 눈을 붙인다. 내가 일했던 곳은 몇 십 톤의 철강 제품을 압연하는 곳이었다. 좁다란 롤(roll) 틈새로 거대한 철덩이를 때려 박는 일이므로 소음과 진동이 상상 이상이다. 기계장치 바로 앞에 운전실이 위치한 탓에 일을 하는 내내 땅이 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엔 그 상황 속에서도 눈을 붙일 수 있는 선배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않는가. 일이 손에 익어가면서 나도 아무렇지 않아져 갔다.
2017년 11월 15일 14시경. 옅은 잠에 들었을 때였다. 문득 몸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큰 일 났다.
뭔지 모르지만 이 정도 흔들림이면 대형 사고가 틀림없었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
멍청하게 내뱉은 소리가 곧이어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어어어어 어?"
눈을 떠보니 운전실이 아니라 기숙사였다. 야간 근무 출근 전.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운전실이 아닌데도 몸이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근데 왜 흔들리지? 내가 꿈을 꾸나? 신발장이 바닥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규모 5.4의 지진 발생. 내가 포항에서 거주하고 있을 때 일이다.
진동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황급히 2층에서 뛰어내려왔다. 건물 벽면 이곳저곳에 실금이 간 모습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오니 몇몇 사람들이 이미 나와있었다. 우리는 다시 지진이 발생할까 봐 밖에서 황망히 서있었다.
“야,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
30분 정도 흘렀을까. 나와있는 사람 대부분이 야간 근무자였다. 피곤한 표정을 하고 서로 어찌할지를 묻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기숙사에서 나왔다. 순간 밖에 나와있는 사람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너무도 태연하게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연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휙 들어가 버리는 그 적응력이랄까 생활력이랄까 뭔지 모를 것에 우린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공장 사람은 진동에 강하지.”
옆에 있던 동기가 그만 들어가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한창 자고 싶었던 터라 숙소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는 길에 금이 간 벽면이나 깨진 유리 따위를 사진으로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대박, 포항에서 지진남.
별안간 벌어진 재난이 특별한 경험이라도 되는 양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포항에서 여진이 몇 번 반복되었다. 규모가 이전보다 크지 않은 탓인지 그냥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사람들은 이전처럼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떨어지는 집값을 걱정하고 나라에서 지급하는 피해 보상액에 대해 말하기 바빴다. 나도 여진이 발생하면
“아 씨, 또 흔들리네.”
하고 인상을 잠시 찡그리다 다시 잠들 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