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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Jul 18. 2021

제일 그리워할 마지막 도시

리마, 페루

리마로 가는 버스는 고작(?) 4시간밖에 안되지만 승무원이 있다.

볼리비아는 12시간 짜리도 없던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또 택시가 호객 행위를 한다. 다시 택시 잡기도 귀찮고 유쾌하신 택시 기사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OK 한다. 실제 금액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으로 대충 협상하고는 숙소로 향한다. 이제 가격 협상하기도 귀찮다. 지친다.


남미 마지막 숙소, 리마의 올라 한인 민박. 마지막은 편하게 있다가 가고 싶은 마음에 위치가 멀더라도,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한인 민박으로 잡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아주머니와 어린 딸이 나를 반겨준다. 말이 잘 통하니 모든 게 일사천리. 남자 투숙객이 없어서 방을 나 혼자 쓰게 된다. 운이 좋다. 선풍기도 있고 개인 방 키도 있어서 더 편하게 쉴 수 있게 될 것만 같다.


리마에서 제일 핫한 곳, 미라플로레스 해변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리마 길거리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해변에 다다른다. 해변도 엄청 길게 늘어서 있고, 서핑을 하려는 사람도 참 많다. W가 이전에 리마에서 서핑을 하겠다고 했는데, 괜히 그런 말을 꺼낸 건 아닌가 보다. 세계 3대 서핑지가 이곳 리마라는데 그렇게 불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절벽을 깎아 만들었다는 라르꼬마르는 화려한 야외 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절벽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반대 편 태평양 바닷가, 이곳을 해안 절벽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또 다른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해가 지면, 반대쪽 대한민국에서는 해가 서서히 뜨겠지......


라르꼬마르, 그리고 미라플로레스 해변

그래도 페루의 수도이기도 하고, 잘 사는 곳이라 그런가 사람들 복장부터 쿠스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거의 한국 사람들의 패션과 흡사한 옷들이 참 많이 보인다.

내일 제대로 구경하기로 하고, 다시 걸어서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는 이제 막 남미 여행을 출발하려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있다. 나는 여행의 끝이지만, 그들은 여행의 시작이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얼마 되지 않는 나의 작은 정보들을 그들에게 나눠준다. 이렇게 다들 여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인 민박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민박에서 제공하는 밥이다.

지구 반대편 남미에서 먹는 한식은 한국에서 먹는 비싼 정식보다 맛이 좋다.

그냥 제대로 된 쌀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짝이 없다.


근사한 민박집 아침 식사,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H 누나와 다시 만나기로 하고서 리마 구시가지로 향한다.

어제 들렸던 미라플로레스가 신시가지라면, 오늘은 구시가지인 것이다.


민박집 사장님이 버스 탈 때는 항상 조심하라고 하신다. 현지인이 말하는 건 듣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긴장을 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에 오르니 지하철 개찰구처럼 막혀있다. 현금을 내니 기사 분이 카드를 준다.

일회용 카드인가 싶어서 카드로 개찰구를 찍고 타니 주변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뭘 잘못한 건가 싶어 당황하고 있던 찰나, 어떤 사람이 손으로 기사를 가리킨다.

뒤돌아 기사를 보니, 기사가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민다.

' 아, 카드를 다시 돌려줘야 되는구나 '

그렇게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서 경계하듯 가방을 꼭 안고 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신기한 건지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몇 있다.



홀로 구시가지를 떠돈다.

한국인 어르신 관광객 분들을 만난다. 하나같이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신 게 멀리서 봐도 한국인임이 확실하다.

혼자 왔다는 말에 어김없이 "대단하다"라는 말을 건네신다.

하나도 안 대단한데......


조금 기다리다 보니 H 누나가 온다. 오늘이 남미 마지막 날이라기에 하루 동안 같이 돌아다니기로 한다.

마침 같이 다니는 동행도 없고 나도 환영이다.


대통령궁 앞에서 군악대의 연주도 구경하고, LIMA 조형물에서 사진도 찍어보려는데 여기는 사진 찍는 줄도 없고 아무나 막 난입한다. 중국인 관광객이 특히 심하다. 아이들도 막 왔다 갔다 하고, 일부러 방해하려는 걸까. 아니면 사진에 나 혼자만 나오고 싶다는 한국인 특징 때문일까. 몇 분을 기다려 겨우 혼자 나오는 사진을 건진다.


리마의 길거리


케네디 공원으로 향해서 '꽃보다 청춘'에 나왔다는 샌드위치 집에 들른다.

양도 많고 맛도 좋은 체인점인데, 다른 곳 보다 비싸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맛이 좋으니까 뭐.

바로 옆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시티 머그를 사려는데 쿠스코 컵을 살지, 페루 컵을 살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쿠스코를 사기로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 소개된 La Lucha


이곳 스타벅스에 다시 들려 페루에서만 판다는 루꾸마 프라푸치노를 먹는다.

검색해보니 우엉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약간 땅콩 케이크 맛이 난다. 한 번 즘 먹어봐도 괜찮은 맛이다. 아타카마, 라파즈에서 만났던 경찰대 친구들도 마주친다. 진짜 끈질기게 만나는 것 같다. 그들 또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그래, 출입국 날짜가 비슷해야 계속 만나는 거지......


잠시 들린 바랑코의 벽화

라르꼬마르에서 어제 홀로 먹은 볶음밥 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같이 숙소로 돌아간다.

마지막이라는 H 누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남미에서 마지막 밤은 져물고야 만다.



남미에서 마지막 날이 결국 다가오고 만다.

마지막 날이 올지 걱정하면서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여유를 부리며 지내오던 여행이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도 이젠 한국의 공기, 한국의 음식 그리고 한국말이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나 정도는 장기 여행이라 하기도 애매하지만, 어찌 됐건 나는 그러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숙소에 투숙객은 나 혼자다. 사장님과 따님 분과 셋이서 아침밥을 먹는다. 투숙객이 나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아침밥을 보니 고마울 따름이다.


페루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세비체를 먹어보려 다시 케네디 공원을 찾는다.

어디가 맛집인지 고민하다가, 너무 비싸서 거르고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후기를 보고 거르다가 그냥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특산물은 그 지역 대부분이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맛은 다 비슷비슷했던 경험 때문에 이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이곳 리마에서도 세비체를 파는 식당은 굉장히 많은데, 그중에서 진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세비체를 달라고 한다. 피스코 사워가 공짜라는 말에 하나 달라고 한다. 과연 어떤 맛이려나.


새우, 문어, 생선회 그리고 튀긴 바나나, 상추, 옥수수 이런 것들이 섞여서 나온다. 맛은 고구마 같은데 당근처럼 생긴 이상한 음식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급져 보이는 세비체는 해산물의 맛이 맛있거나 그러하진 않았고 (내가 이름 없는 식당을 찾은 탓일 수도) 레몬과 라임, 식초에 절여서 나온 음식이라 그런가 차갑고 엄청 시다. 내 혀는 고급이 아니라서 신걸 그대로 신맛으로 느끼고 가끔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자주는 못 먹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도 먹는다.


이것이 페루의 세비체

돌아와서 사장님께 세비체를 먹었다고 말하니 좋은 곳 추천해 줄 수 있는데 왜 아무 곳이나 갔냐면서 뭐라 하신다. 그러게 진작 물어보고 갈 걸 그랬다. 사장님은 세비체를 굉장히 자주 드신다고 하는데, 난 도통 맛이 좋아서 자주 먹을 정도는 아닌데 어떻게 자주 드실까 궁금하다.


미라 플로레스를 다시 찾는다.

카페에 앉아서 여유롭게 밀린 일기를 쓴다.

또다시 단체 관광 오신 한국 어르신들을 만난다. 배낭여행자가 있다면 내가 여행한 정보를 공유해줄 수 있을 법 한데, 리마에서 떠나갈 사람들만 방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통 리마를 통해 남미에 들어온다. 그러면 아마 다음 일정은 내가 돌아온 길인 와카치나 사막 혹은 마추픽추일 것이다. 그런 관광지를 앞두고 리마에서 오랜 시간 구경할 이유가 사실 없어 보이긴 하다. 


T 형님이랑 같이 저녁을 먹고 비행기 시간이 비슷해서 공항까지 같이 가기로 한다.

피츠로이에 같이 올랐던 형님이다. 여행 인연 참 끈질기다.

T 형님을 기다리며 스타벅스에서 다시 일기를 쓰고 있는데,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일기장이 사라져 있다. 누가 훔쳐간 건지, 내가 어떻게 쓴 여행 기록들을 모조리 훔쳐갔나 당황해하고 있을 무렵, 옆에 직원이 웃으며 카운터를 가리킨다. 카운터에 보관해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카페에 놔두고 오랜 시간 자리를 떠도 물건이 그대로 있던 것을 생각하면, 나를 놀리려는 것인지 생각도 하지만, 그냥 물건이 도둑맞을까 봐 보관해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려고 짐을 싸는데 사장님이 직접 잡아온 소라랑 문어를 먹어보라고 부르신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조금만 먹고 자리를 떠야 하지만, 그 시간 동안이라도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시 T 형님과 만나서 같이 택시를 타고 리마 공항에 도착한다.

새벽 비행기라 사람이 얼마 없을 줄 알고 적당한 여유를 두고 도착하지만, 사람이 실로 미어터진다. 비행기를 많이 타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본다. 짐을 부치는 줄도 엄청 길고, 출국 심사 줄도 엄청 길다.


사람으로 바글바글한 리마 공항

내가 출국을 앞두고 며칠 전 뉴스 기사로 우한 폐렴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메르스처럼 금방 스치고 지나갈 가벼운 전염병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리마 공항에 중국인 몇 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중국에서 발생한 것이라 그런지 자기네들끼리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출국 심사를 앞두고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또 만난다. 딸과 함께 오셨다는 어머님은 라파즈를 가는 길이라고 하신다. 11일 동안 700만 원 정도. 남미 대부분의 랜드마크를 모두 찍는 투어라고 하신다. 돈이 비싸긴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이 모든 걸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괜찮은 옵션이라 생각한다.


페루인 아주머니도 만난다. 나와 함께 미국을 가는 분이셨는데, 미국에 교환학생을 가서 미국 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에 사신다고 한다. 정글 트레킹을 해봤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음에 오면 꼭 해보라고 하신다. 백인이셨는데, 페루에 백인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공항에서 만난 페루 아이들


공항에서 잠시 헤어진 T 형과는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탄다.

한 달 동안의 남미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시원 섭섭하지만, 나에게 마지막 남은 미국에서의 27시간. 생전 처음 밟아보는 미국에 대한 상상을 하며 비행기에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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