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흐바타르 광장,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몽골의 심장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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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흐바타르 광장,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몽골의 심장


울란바토르 중심부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은 단순히 도시의 한 공간을 넘어, 몽골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곳은 몽골 현대사의 영웅인 '담딘 수흐바타르(Damdin Sükhbaatar)'와 몽골 제국의 창시자 '칭기즈 칸'의 정신이 함께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담딘 수흐바타르는 1893년, 몽골의 수도였던 후레(현재의 울란바토르) 근교의 가난한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부 일을 했던 그는 1911년 몽골이 독립을 선언하자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몽골은 중국의 압제와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외세의 간섭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수흐바타르는 1919년 중국의 재점령을 계기로 독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몽골 인민당의 전신인 비밀 조직을 결성했다.




수흐바타르는 1920년 소련으로 건너가 볼셰비키 지도자들의 지원을 얻어냈고, 인민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 전쟁을 이끌었다. 1921년 7월 11일, 그는 군대를 이끌고 수도를 점령하며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래서 ‘7월 11일’은 몽골의 독립기념일이자, 최대 명절인 나담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독립 후 그는 국방부장관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에 헌신했으나, 1923년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짧은 삶을 통해서도 몽골 현대사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의 영웅적인 업적은 칭기즈 칸과 함께 몽골 국민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불교 사원과 귀족들의 거주지였으나 몽골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46년, 수흐바타르 광장이 조성되었고, 중앙에 그의 기마상이 세워졌다. 그 이후 이곳은 오랫동안 몽골의 공산 혁명과 사회주의 정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06년,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을 기념하여 국회의사당 앞에 ‘칭기즈 칸’ 좌상과 그의 후손인 ‘쿠빌라이 칸’과 ‘오고타이 칸’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로 인해 광장의 정체성이 흔들렸다. 한때 광장의 명칭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일어, 2013년에는 '칭기즈 칸 광장'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행정법원의 판결로 다시 '수흐바타르 광장'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러한 명칭 논란은 몽골 사회가 고대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민족주의와 근대 국가를 탄생시킨 사회주의 혁명정신 사이에서 겪는 역사적 갈등을 잘 보여 준다.




필자의 눈에 비친 수흐바타르 광장은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중앙에는 몽골의 근대 독립을 상징하는 수흐바타르 장군상이, 그 뒤편으로는 몽골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칭기즈 칸의 좌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광장은 칭기즈 칸이 세운 과거와 수흐바타르가 이끈 현대 몽골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곳은 몽골의 중요한 국가 행사는 물론,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시위와 각종 축제가 열리는 활기찬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일본 나루히토 천황의 몽골 방문을 환영하는 일장기가 펄럭이며, 국제적인 교류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몽골인들의 역사를 소리없이 기억하며 독립과 자유의 정신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장소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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