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즈 칸 박물관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우리의 돌하르방과 놀랍도록 닮은 석상, 훈촐로였다. 낯선 땅에서 익숙한 모습을 마주한 순간, 반가움에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제주의 수호신이자 자연의 시련을 이겨낸 인간의 상징, 돌하르방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돌하르방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으니 양 석상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웅장한 박물관의 이름, 9충 건물 대형박물관이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곳에는 정작 칭기즈 칸의 유물이 거의 없었다. 이는 그가 전장에서 전사한 것 외에 사망 원인조차 불분명하고, 무덤 위치가 비밀에 부쳐져 아직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목민들의 기록문화가 서툴러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탓도 있었다. 대신 박물관은 몽골 초원에 유목 국가를 세운 흉노족부터 시작하여 시대별로 6,000여 점의 전시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화는 역사의 이름으로 강물처럼 흐르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몽골과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3세기, 몽골의 침략은 황룡사 9층 목조탑 소실과 같은 아픈 역사를 남겼다. 이후 90년간 이어진 원의 간섭과 제주도의 탐라총관부는 150여 년간 한반도가 몽골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제주 돌하르방이 몽골 훈촐로와 닮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르방'이라는 어원이 몽골어 '하라'와 '바라칸'의 합성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필자의 관심은 단순히 문화가 지리적으로 이동되고 전파되는 현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물의 외형적 유사성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가 형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런 문화 전파의 가장 강력한 메신저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700여 년 전의 격렬한 전쟁 속에서도, 몽골과 고려 백성의 불편한 일상 속에서도 문화는 '사람'을 통해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이어져 온 것이다.
언젠가 몽골 초원에서 바람과 마주하며 훈촐로를 만날 날을 기다린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몽골을 자주 오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진 인간과 문화의 끈질긴 연결고리를 다시금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