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커튼을 두른 듯 눈동자를 가득 채운 하얀 장막.
많은 것이 선명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보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백내장 수술은 칠십 대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엄마는 많이 늦은 나이라면서 의사는 걱정했다. "나이가 들면 수정체도 얇아져서 수술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열어봐야 알지,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라는 말에 긴장되었지만, 지금껏 수많은 인생의 산을 극복해 온 엄마의 인생 근육을 믿기로 했다.
전에 다니던 안과는 몇십 년을 다녔지만, 참말로 불친절했다. 까막눈인 엄마 혼자 병원에 갔는데, 뾰족한 말투로 "할머니, 여기에 이름 적으세요."라고 했더니, 엄마가 "간호사님이 써주면 안 돼요?"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간절히 물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식은땀 흘리며 간신히 적었던 이름 석 자, 그 일은 큰 상처가 되었고, 그 뒤 작은 손주와 글씨도 쓰고 그림책 색칠도 하면서 은행과 병원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올봄에 이사했다. 이사하고 다행히 좋은 안과를 찾았다. 비문증이 있었던 나도 이참에 검사했는데 엄마의 눈과 내 눈은 차이가 컸다. 엄마 눈동자에는 하얀 장막이 가득했다. '이러니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구나.' ‘왜 진작 손을 쓰지 못했을까?’ 자괴감에 힘들었다. 수술 첫날, 엄마는 큰딸과 둘째 딸의 팔짱을 끼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의사는 상냥한 미소로 다정하게 안심시켰다. 수술이 어려울지 모를 여든여덟의 엄마, 오른쪽 백내장 수술 시간 10분이 내겐 1시간 같았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는 활짝 웃으며 나왔다. 엄마의 눈에 근력이 남아서 수술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넓은 세상 더 보고 싶은 간절함이 수술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른다.
다음 날, 오른쪽 눈의 붕대를 떼었다. 밝게 보여야 왼쪽 눈 수술도 할 수 있다. 의사는 양쪽 눈 사진을 비교하며 보여주고, "어머님이 도와주셔서 어제 오른쪽 눈 수술이 잘되었습니다." 안심을 주면서 자신이 수술을 잘했다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우리 모녀는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 들었다. 왼쪽 백내장 수술도 무사히 마쳤다.
왼쪽 눈 수술 후, 엄마는 잘 보이는 오른쪽 눈이 낯설다고 했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이리 좋은 줄 잊고 살았다고 했다. 두 눈이 점차 보이지 않자,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늘 불안해하고 계셨던 차였다. 해가 질 무렵 재래시장 산책을 나섰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고깃집이 많다, 장마철 복숭아는 싱겁다.’ 등의 두런두런 재미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시장 끝, 옷 가게에 발걸음이 멈췄고 설레는 옷 몇 개를 입어보고 샀다.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며 저녁노을과 함께 집으로 왔다.
엄마는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사흘째 병원을 향했다.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었다. 두 눈이 모두 또렷해져 보이는 사물들이 신기하기만 한 엄마의 한마디, "이렇게 잘 보일 줄 알았으면 진즉 할 걸 그랬다." 너무 아픈 말이다. 이 말씀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수술인 줄 알고 미뤘던 후회와, 수술하다 잘못될까 두려웠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나는 잘 안다. 이제 그런 걱정은 모두 지나갔다. 엄마의 눈은 밝게 빛나는 세상과 마주했고, 안도와 감사함이 넘치고 있다. 엄마가 말했다. "눈처럼 치아도 고쳐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50년 동안 완전 틀니로 살아온 엄마의 잇몸은 주저앉아, 씹는 것이 큰 통증을 유발한다. 그동안 체념하고 살았던 희망을 소쿠리에 하나씩 담는다. 좋아하는 트로트를 듣고 가수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며, 다시 찾은 좋은 날이 걸음을 새 걸음을 시작했다.
엄마의 수술은 단순한 시력 회복이 아니다.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자, 희망을 다시 품는 긍정의 성장이 되었다. 88세의 엄마는 희망이라는 씨앗에 날개를 달았다. 우리는 그 씨앗이 또 어느 곳에서 자라나, 다시 찾은 좋은 날들이 조금 더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며, 밤하늘로 육 남매의 기도를 올린다. 장막을 걷어낸 후, 먼지까지 다 보인다면서 더 깔끔해진 엄마가 바쁘다.
오늘도 엄마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부디부디 조금 더 곁에서 조금 더 땅 딛고 살아가시길 간절한 기원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