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자기 계발은 어렵다.'는 연역법적 모순 논리
"앞으로 네가 군대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
초도면담 간 신병들에게 항상 물었던 마지막 질문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답변들은 다음과 같다.
1. 각종 자격증 공부 : 향후 취업준비
2. 영어 및 제2외국어 공부
3. 헬스를 통해 근육질 몸매 만들기
4. 다양한 독서경험
5. 군대에서 넓은 인맥 만들기
소대장, 1,2차 중대장 임무수행을 하면서
수많은 병사들과 초도 면담을 진행했지만
위의 5가지 답변이 보편적이었다. (약 90%정도)
크게 위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군 복무 간 목표한 바를 말한 것이니 다소 심플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약 2년 뒤 결과는 어떨까?
꿈을 이루고 금의환향하는 해피엔딩인가?
많은 병사들이 대부분 그냥 시간을 보내다가
전역 3~6개월 전, 즉 '똥줄이 타는 순간'이 오면
그들은 관물대에 고이 모셔둔 토익 단어장을 꺼내서
22시에 연등실로 향한다. 그리고 30분~1시간 잠깐
공부하는 듯싶더니 이내 취침에 든다.
2시~4시 불침번 근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ㅠ.ㅠ
본격 하이퍼 리얼리즘 에세이의 시작이다.
*전역자는 글을 읽으며 PTSD가 올 수 있으니 주의 바람
군대에서 많은 제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군대에 PC방도 있고 이제 스마트폰도 사용하는데
군대에서 자기 계발하면 딱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기 힘든 곳이 또 군대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현상은 비단 병뿐만 아니라
직업군인인 군 간부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오늘은 군대에서 자기 계발이 힘든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왜 군대에서 자기 계발이 힘든가?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군대는 사회에 비교해서 여건이 좋지 않다.
예전에 부사관 임관을 희망하는 병사가 있었다.
간부 임용을 위해서는 체력검정을 통과해야 하는 데
그 친구는 체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3km 달리기 연습을 해야 하는데 신발에 진흙이 묻어서 못 뛰겠다는 것이다.
왜? 연병장은 깔끔한 우레탄 트랙이 아니니까.
만약 체력단련실에 민간 헬스장처럼 러닝머신도 몇십 대
구비되어 있다면? 매일 달리기를 하고 싶을텐데!
부대 연등실이 깔끔한 민간독서실과 비슷하다면 얼마나
공부할 맛이 날까? 토익점수는 문제없을텐데!
애석하게도 아직 그 정도로 편의시설이 잘 구비된 부대는
많지 않다. 바야흐로 1년 국방예산 50조 시대지만,
조금 더 가야 할 길이 남았다.
둘째. 군대는 바쁘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앞선 불침번 근무의 사례처럼 군대에선 정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입대 후 전역까지 모든 순간들이 전부
명령 속에서 이루어진다.
휴가를 나오는 것도 인사'명령 (휴가)'이며,
위병소, 탄약고 등 각종 경계근무에 투입되는 것도 '명령'
평상시에는 상급부대의 각종 단편 명령을 통한
지시사항까지 명령으로 시작해서 명령으로 끝난다.
의무복무를 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월~금 일과가 있는
평일에 온전한 자유시간은 약 2시간 30분 ~ 3시간 남짓,
정말 찰나의 순간이다.
그 시간을 쪼개서 PX도 가야 하고, 여자 친구와 통화,
유튜브 시청 및 세탁물도 정리해야 한다.
군인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러니 자기 계발할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필자의 개똥철학을 조금 담아서 이 상황을
연역 논증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군대는 여건이 좋지 않으며, 해야 할 것들이 많다.'(A)
'자기 계발은 적절한 시간과 조건이 필요하다.(B)
'그러므로 군대에서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은 제한된다.(C)
연역법에서는 논리적 형식의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한,
결론은 전제로부터 필연성을 가지고 도출된다.
즉 전제가 참일 경우 결론은 반드시 참이 된다.
여기서 군대에서 자기 계발을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길 원치 않는다.
위 연역적 논증 과정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면?
전제가 참이 아님을 밝히면 된다.
(A) 전제를 앞서 살펴봤듯이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B)가 거짓임을 밝히면 된다.
즉 자기 계발을 하는데 반드시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면 된다. 그 방법은 쉽다.
반례를 찾아서 제시하면 된다. 그리고 그 반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군 생활 간 반례를 몸소 실천한 많은 이들을 봤다.
1. 시간을 쪼개어 후임, 선임들에게 영어 재능기부를 하며
동시에 본인 대학원 공부를 성공적으로 준비한 병사 A
2. 새벽 5시마다 부대에 나와 열심히 체력단련을 해서
'300 워리어'에(최정예 전투원) 도전하는 부사관 B
3. 바쁜 업무를 속에서도 교범을 꾸준히 탐독하여
교리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인정받은 장교 C
아마 독자들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역경을 딛고, 아니
역경까지는 아니라도 제한사항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스토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군대가 바쁘고 여건이 불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느끼는 오늘의 사회현상이다.
'젠장 바쁜데 해야 할 일은 더럽게 많다.'
사실 필자는 지금 스스로 뼈를 때리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은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일을 안 하고자 마음먹는다면,
변명거리는 백 가지도 더 만들 수 있다.
가령 '신발이 더러워 지니까 뛸 수 없겠어.'라든지
목표를 정하는 것도 본인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본인이다.
아직 주저하는 청춘에게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이 이 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군대 안에 갇혀있다고 느끼는데서 무력감이 온다면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5년 10년 미래의 자신이 지금을 되돌아봤을 때
만족스러운 20대였다고 느낄 수 있을지 생각 보자.
언젠가 다시 지휘관을 한다면
전역을 앞둔 병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니?
마지막으로, 전역자라면 100% 공감할 문구다.
'군대에서 잘한 놈이 밖에서도 잘한다.'
<표지 배경 출처 : 국방일보 '16.12.28.>
1만5000km 곳곳 살아있는 호국 숨결 우리 안보,
내일도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