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왜 군인이 되었어요? " 또는 "왜 육사에 갔어요?"
육군사관학교를 입학부터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받은
질문이다.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버전의
답변을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답변은 "제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이며,
비공식적인 답변은
"군인이 무슨 일 하는지 잘 모르고 들어왔어요."이다.
독자들에게 여기서 밝히지만 사실 진짜 정답은
'군인이 무슨 일은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복은 멋져 보였다.'이다.
왜 나는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지금부터 그 진짜 이유를 여러분들께 공유한다.
시간은 필자의 고3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율학습시간에 학교 방송으로 '육군사관학교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1층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방송을 들었다.
몇 년 전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모교 방문 행사'를
나온 것이다. 당시 내가 육사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서울에 있고 학비가 공짜며,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가
전부였다.
마침 자율학습을 공식적으로 땡땡이를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교무실에 이미 평소 육사에 관심이 가졌던 몇몇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필자도 자리에 앉아서 선배님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어깨가 넓게 벌어진 선배님들께서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학교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일이라 당시의 기억은 분명하지
않으나, 선배님들의 말씀은 대략 '육사 좋은 곳이니까
많이 지원하세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날 이후 육사에 대한 이미지는 육사는 좋은곳,
그리고 멋진 제복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또한 필자의 외숙부님은 당시 현역 육군 대령이었고
아버지와 함께 내가 육사에 진학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셨다.
외숙부님은 장교로 복무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고,
아버지는 학창 시절 사관학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계셨다.
두 분의 강한 추천과 제복에 대한 나의 동경은
나를 육사 입학 1차, 2차 시험장으로 이끌었다.
이건 여담이지만 외숙부님의 아드님과 따님,
그러니까 사촌누나, 형님은 모두 명문 K대를 졸업하고
대형 로펌 변호사와 고시패스 5급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뭐지 이 기분은;;;)
그렇게 필자는 육사에 입학하고 4년간의 소정의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만 촉광에 빛나는 소위로 임관하여
대한민국의 육군의 장교가 되었다.
왜 군인이 되었는지 알아봤으니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가 싶지만, 사실 진짜 스토리는 이제 시작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안 한 가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사관학교에
진학하고자 공부하는 학생 및 그 부모님이 있다면
반드시 사전에 숙고하는 것을 당부한다.
개인적으로 앞서 소개한 일화에서 선배님들께서 말했던
'육사는 좋은 곳이다.'라는 명제는 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각자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봉급도 받으면서 전액 무료로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큰 혜택이다.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다.
그러면 '육사를 졸업하면 무엇을 하는가?
' 더 정확하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요즘은 길거리에서 흔하게 각종 광고를 통해서
00 사관학교라는 상호명을 찾기 쉽다.
ex) 취업률 1등 취업 사관학교 000 등
사관학교(士官學校)의 사전적 정의를 한번 살펴보자.
한자어 풀이를 해석하면
士 선비 사 , 官 벼슬 관 , 學 배울 학, 校 학교 교
관직을 수행할 사람을 양성하는 학교다.
즉 '국가에서 양질의 장교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국가방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교육기관'이다.
국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개인에게 수 억 원을 투자해서
4년간 양성을 했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공짜는 없다.)
육사에서 제시하는 학교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올바른 가치관 및 도덕적 품성과 군사전문가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하고 국가와
군에 헌신하는 정예장교 육성 ”
그렇다 사관학교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그 이름에서부터 자명했다.
만 19살의 필자는 장교로서 군과 국민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국가와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지난 11년의 군 복무 간 많은 사관학교 출신 선배,
후배 동기 장교들을 만났지만
입학 전부터 이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분은 뵙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비단 사관학교뿐 아니라 수많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보다 성적에 맞는 학교를 선택한다.
당연히 육사도 선발을 위한 일련의 절차에서
수능성적과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요구한다.
필자도 그런 입시전쟁을 겪었고 교육의 현실을 잘 알기에
어쩌면 당연했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4년은 한 명의 사람을
재사회화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Soldiers are made not born."
이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마블의 대표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도
실험을 통해서 육성되었고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님도 무과를 급제하고
재교육을 통해서 군인으로 거듭났다.
한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사관학교는 보통 대학교와 달리 1월 중순에 가입교식을
갖고 2월 말에 정식으로 입교식을 한번 더 실시한다.
5주간의 군사교육을 통과한 사람들만 생도 정복을 입고
진짜 군인이 될 수 있다.
필자가 3학년 생도였던 시절에 당시 이제 막 육사에
입학예정인 신입생도들을 교육하는 기초 군사훈련
파견 생도로 선발되었다. 필자보다 3년 아래 기수인 후배
생도들을 양성하는 과정에 투입되었다. 신병교육대대로
비유하면 조교에 가까운 직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독자들은 알겠지만 군대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다.
특목고를 나온 사람, 재수 또는 삼수한 사람,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 등등
가입교 당일에는 지난 2n년동안 너무도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들을 교육시키는 것 군에서 필요한 인재로 다시
재사회화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옷을 입는 법, 전투화를 착용하는 법, 침구류를 정리 법
그리고 걷는 법까지 다시 가르치고 배운다.
5주의 시간이 지나고 입학식 날 그들은 어엿한
한 명의 군인이 되어 부모님 앞에 당당하게 경례를 한다.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육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육사가 제시하는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자유 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한 국가관 확립
2. 위국헌신의 군인정신과 리더십 함양
3. 기본 전투기술과 소부대 지휘 및 관리능력
구비, 군사전문가로서의 기본소양 함양
4. 창의적*통합적 문제 해결 능력 배양
5.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연마
이렇게 졸업한 지 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육사의 교육목표를 읽어보니,
필자의 지난 4년간의 생도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육사를 입학하는 것보다 졸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야 육군의 소위로 임관할 수 있다.
학교 예규에 생도의 퇴교 및 제적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도 매년 많은 생도들이 학교에서 제시한
지침을 준수하지 못하거나 또는 능력의 부족으로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지 못해서(체력검정,
학점관리 등) 학교를 떠난다.
4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 인고의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임관을 할 수 있다.
군인에게는 신분과 계급이 있는데, 사관생도라는
신분에서 장교로 신분의 전환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생도생활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 할 수 없기에 추후에 다시 다루겠다.
오늘의 주제는 '왜 군인이 되었는가?'였다.
이렇게 내가 지닌 생각을 글로 다시 정리해보니
필자가 지난 10년간 해왔던 대답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육사라는 나의 선택을 통해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밝게 빛났던 20대 시절
전부를 군에서 바쳤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수반되는
여러 가지 희생들도 있었지만, 얻은 것이 더 많기에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물론 동시에 가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은
항상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이 겪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통해서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
"나의 선택이 곧 나 자신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한 편의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1916年作)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표지 배경 출처 : 연합뉴스 '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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