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지경 Jul 03. 2024

오늘도 수영 갈까?  

매일 새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매월 1일은 뭐든 시작하기 좋은 날이다. 지난달 아무리 계획했던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해도 1일이 되면 새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어 진다. 마치 술 마신 다음날 해장 냉면을 먹고 새 사람이 될 거야 다짐하듯. 공교롭게도 수영 강습은 매달 1일 어김없이 시작된다. 고로, 매달 1일엔 누구나 새 수영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


7월 1일부터 매일 새벽 수영을 시작했다. 매일 수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 3개월 간 수박 쪼개듯 주 6일 중 3일씩 나눠 화, 목, 토요일에는 새벽 수영, 월, 수, 금요일에는 오후 수영강습을 받았다. 수영강습의 절반은 눈 뜨자마자 수영을 하러 물에 뛰어들고, 절반은 요가를 한 후 수영장에 가려고 했다. 왼쪽 어깨에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수영 전후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라는 말을 듣고는 '요가 후 수영'을 하리라 마음먹었기에.


시작은 분명 그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일은 오후 수영이니 늦게까지 일하고 잘까? 내일은 오후 수영이니 드라마를 끝까지 볼까? 내일은 오후 수영이니 한 잔만 더 마실까? 다음날 새벽 6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은 이 핑계 저 핑계를 잘도 만들어 냈다. 밤 시간이 즐겁긴 했다. 일이 유난히 잘 되는 밤도 있었고, 드라마는 재미있었으며, 밤술은 유난히 더 달았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점점 늦게 잠들다 보니 점점 늦게 일어나게 되는 건 당연지사. 급기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요가도 못 간 채 어영부영 오전을 보내다 허겁지겁 오후 수영 강습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원고 마감이 있는 날은 아예 요가도 수영도 가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원고를 보낸 후 거울을 보면 오후가 되도록 씻지도 않고 부스스한 머리 몰골의 여자가 있었다. 누, 누구세요?


아, 이게 아닌데. 무너져 가는 생활 리듬을 되찾고 싶었다. 방법은 하나. 다시 매일 새벽 수영을 하는 것! 그래서 마음으로 수강신청 피켓팅에 뛰어들었다. 피켓팅 전쟁에 승리해야 다시 새벽 수영 강습을 들을 수 있으니. 수영장마다 등록일이 다르긴 해도 등록 방식은 비슷하다. 대부분 기존 회원에게 우선권이 있다. 수영 강습을 등록해 놓으면 재등록 기간만 놓치지 않는 이상 죽기 전까지 수영 강습을 들을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수영한 번 배워볼까 기웃거리는 사람은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영원히 수영을 못 배울 수도 있다는 얘기. 아휴, 이러다 살아생전에 수영 한번 배울 수 있을까 하며 너무 속상해하진 마시길. 고인 물도 수업 시간을 옮기려면 피켓팅에 참전해야 하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왕이면 출전하는 피켓팅 비수기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수영장에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으므로. 날이 점점 추워지고 약속이 많아지는 11~12월은 비수기에 속한다. 국가 공인 가정의 달, 5월도 지출과 일정이 많아 수영장을 찾는 발길을 뜸해지기도 한다. 성수기는 온 국민이 새해 결심을 하는 1월 여름휴가철이 있는 7~8월이다. 1월에는 작심 3 일파가 많아서 초반에만 번잡하지 후반으로 갈수록 출석하는 수강생이 점점 줄어드는데, 여름휴가를 앞두고 나도 수영 좀 배워볼까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시기라 수영장에 사람이 넘쳐 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딱 하나 남은 자리를 기적적으로 잡아, 새벽 수영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지난해 5월이었다. 그게 기적이 아니라면 운명이었을 것이다. 새벽 수영을 하게 될 운명. 


7~8월이라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손가락 스트레칭 제대로 하고, 신규 등록 수강신청 시간이 시작되기 전 수영장 홈페이지나 모바일 페이지에 로그인해야 한다. 수강신청이 열리는 즉시 빛의 속도로 클릭하기 위하며. 깜빡했다가 5분만 늦게 들어가도 접수 마감이 되기 일쑤다. 나는 수강신청일 알람을 맞춰두고 수강신청 10분 전 PC앞에 앉았다. 9시가 된 순간 클릭을 하려는데 남편이 뒤에서 나타나 물었다. "뭐 해?"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새벽수영 7시 월, 수, 금반을 클릭하는 대신  새벽수영 7시 화, 목, 토를 클릭하고 말았다. "아, 왜 중요한 순간에 왜 나타나서 방해를 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죄 없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고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새벽수영 7시 월, 수, 금반을 클릭했다.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9시 2분. 모든 수영강좌는 접수 마감이 된 후였다. 휴. 이 어려운 걸 내가 해내다니. 역시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그 덕에 7월 1일 월요일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7시가 되기 전 수영장에 도착해 익숙한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은 후 중급반 레인으로 뛰어들었다. 7월을 맞이한 새벽 수영인들은 줄지어 이동하는 철새처럼 질서 정연하게 25m 레인을 돌고 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호흡과 동작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수영장 벽을 뻥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금세 숨이 차올랐다. 하루 중 가장 심박수가 올라가는 시간. 몇 바퀴씩 쉬지 않고 도는 중간중간 수영 강사님이 오늘 연습할 동작을 설명을 할 땐 헥헥거리며 숨을 골랐다. 7시 50분이 되자 언제 끝나나 싶던 수영 강습도 마침표를 찍었다. 피날레는 다 함께 외치는 파이팅!  아무리 숨이 차도 끝까지 해낸 사람들은 해사한 얼굴로 파이팅을 외쳤다. 매일 외치는 파이팅이지만, 그날따라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샤워를 하고 수영을 하고 또다시 샤워를 한 후 집에 돌아와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남편과 아침을 먹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수영만 해도 새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오늘 일과 중 하나를 잘 해냈으니,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일상의 원동력은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루틴에서 나온다.


이 글은 쓰는 오늘 날짜는 7월 3일이다. 3일 연속 새벽 수영 강습을 들었다. 하지만 내일 하루만 수영 강습을 빠져도 나는 다시 헌 사람이 된다. 헐었다기보다는 안 씻은 사람이란 표현이 정확하겠다. 수영장에서 샤워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씻지 않는 게 습관 돼버렸다. 더구나 나는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씻지 않을 수도 있다.  


수영 강습을 빠지만 씻지도 않고 일을 한다는 얘기. 나처럼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뿐 아니라 직장인들도 종종 그렇다고 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하냐고?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영장에 가서 씻고 수영하면 된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새 삶을 사는 기분이 절로 들 테니. 새 사람이 되는 법 참 쉽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