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에 편지가 도착했다.
아직 전입신고도 전이었는데 나에게 온 우편물이라고?
집들이를 위해 친구들에게 주소를 알려줬었는데 그 주소로 한 친구가 오랜만에 직접 쓴 손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친구와는 서로 아날로그 감성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생 때 기숙사에 살면서도 종종 손편지를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친구의 반가운 글씨체!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는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이야기, 기숙사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이번 편지에는 내가 결혼한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하고 있는 진로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편지지를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분명 고등학생 때는 교보문고에 있는 핫트랙스에 가서 100원짜리 알록달록한 편지지와 봉투를 함께 골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카카오톡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연락하는 친구인데도 카카오톡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신기하게도 손편지를 쓰면 메신저로는 담지 못한 나의 이야기가 술술 나올 때도 있고, 적고 나서 다시 보며 부끄러워서 보내야 하나? 고민이 될 때도 있다.
이번에도 답장을 적고 나서 다시 편지를 읽는데 '하 다시 써야 하나...?'라는 생각과 '아 근데 세장이나 썼는데...'라는 생각이 내적 결투를 벌였다.
왜 이렇게 또 솔직해버려 진 거지 하는 생각도 함께.
하지만 그냥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게 손편지의 맛이지 하며.
내가 부지런하지 못해 우리의 손편지 주고받기는 꽤 오래가지 못했지만 한 달 뒤 다시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다.
고등학교 때 가장 가깝게 어울려 다녔던 친구는 13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카카오톡이라는 아주 유용한 연락수단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사진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하고 있지만 사는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지 연락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는 있다.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휴대폰 속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게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내 생일에는 생일 축하한다며 저~멀리 미국에서 기프티콘을 날려주는 친구에게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아마 이 친구는 내가 살면서 가장 편지를 많이 주고받은 친구 중 한명일 것이다.
고민 많던 고등학생 시절, 수험생 시절 그리고 그렇게도 공부가 하기 싫었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꽤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르며 편지를 쓰기로 다짐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편지지를 사러 가는 게 쉽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집에 있던 편지지에 글씨를 써 내려간다.
3년 전, 친구가 임신 중일 때 썼던 이후로 처음이다!
이 작은 편지지에 오랜만에 무슨 말을 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냅다 고백을 했다.
카카오톡으로는 아직 알리지 않았던 나의 임신 사실을 적었다.
아직 알리기 조심스러운 시기였지만, '미국에 편지 가는데 오래 걸리니까 지금 보내도 나중에 안정기 때 받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써 내려갔다.
나에겐 가까운 친구여서 빨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손으로 써서 알리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다. 이 편지를 받은 친구의 반응이 너무 기대된다.
편지지에 카메라를 달아놓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혼자 두근거리는 시간을 보내며 남편 손에 편지를 들려 보냈다.
(임산부 찬스를 마구마구 쓰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게 3주 뒤, 생각보다 빨리 친구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15년이 넘은 우리 모임에서 젊을 때 연애도 잘 안 하고 나름 '막내, 아가' 포지션이었던 나의 소식을 듣고는 친구가 오열을 했다고 한다. 너무 축하하고 언제 이렇게 컸냐며.....^^
친구들에게 이런 우쭈쭈를 많이 받던 내가 아기를 가졌다니 다시 생각해 보니 신기하긴 하다.
이렇게 손편지로 서프라이즈 나의 소식 전하기 성공!!!!!
나에게는 손편지가 주는 힘은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연인 사이, 그리고 친구 사이에는 더더욱.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으로 문자 세줄도 적기 힘들어하던 남편은 이제는 귀여운 편지지도 먼저 골라서 나에게 편지를 써준다.
손편지는 누구에게 언제 받아도 뭉클하고 찡한 무언가가 있다.
다가오는 특별한 날, 아니면 특별하지 않아도 괜히 특별한 날로 만들고 싶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편지 한번 써보는 것 어떠세요?
+
친구에게 놀랄 소식을 전한 것에 아주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던 차에 나에게 전해져 온 사진 한 장.
"Pregnant"가 적힌 임신테스트기다.
친구도 손편지로 소식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아가 나올 때 답장할 것 같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올해 계획 중 둘째 갖기가 있다더니 이렇게 빨리 해낸 너는 정말 대단하고 대견해!
이렇게 우리는 올 10월, 한 달도 차이 나지 않는 아가를 출산한 예정이다.
우리 둘 다 아가 건강하게 잘 품고 내년에는 꼭 만나서 중앙시장 떡볶이 먹으러 가자.
너의 모든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