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왔던 각설이 친구

by 바다에 내리는 눈

타향살이 바쁘고 지친다는 이유로 여기 글을 쓰지 않고 몇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본향살이는 안 바쁘고 안 지칠 것인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아가건 삶은 바쁘고 지치기는 쉬운 일이라 지난 몇 달간의 공백은 결국 글쓰기보다 좋은 무언가 다른 것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증거 밖에는 안 된다. 각설하고 또 1년 만에 어김없이 한국을 찾았다. 이리 산지 20여 년이 되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달라진다.


젊고 친구가 제일 중요한 20대 때에는 내가 연락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많은 친구들.

30대가 되면 이제 슬슬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가정도 꾸리기 시작하느라 바빠서 자기들끼리도 한 번 모이기 힘든데 이렇게 외국에서 오는 친구가 있어서 보는 김에 우리도 모일 수 있어 좋다는 여전히 많은 친구들.

40대가 되면 자의 반 타의 반 (중년의 남녀가 왜 어울리냐는 남의 시선도 있고 내 안의 검열도 있고) 남자 동창이나 친구들에게는 연락하기가 힘들어지고 자연스럽게 가까운 여자 친구들 위주로 재편되는 관계들.


그래도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남은 친구들은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친구들이라 그런지 어떻게 해서든 내 얼굴 보려고 바쁜 와중에 짬내고 만남에 정말 반가워하기에 늘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최근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고백하기를 내가 반가운 감정과는 별개로 내 존재가 그들에게 환기시키는 감정들이 있다고 한다.


'얘가 한국에 들어왔다니 아, 또 1년이 지났구나...'


지난 1년 동안 뭘 했나 싶은 허탈함, 앞으로도 이렇게 혹은 이보다 더 빠르게 세월이 지나갈 거라는 두려움, 남은 몇 개월이라도 올해를 상반기보다는 잘 살아내야 한다는 초조함. 나는 왜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와서 어쩌다 친구들에게 달리는 경주 중간의 반환점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


심지어는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도 이 감정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모든 것에 늦되고 늦된 나는 작년에서야 숱한 실패 끝에 운전면허를 땄는데 당연히 지난 1년 동안 그 면허는 처박힌 장롱면허가 되었고 이럴 거면 시간과 큰돈 들여 왜 면허를 땄냐고 성화인 가족들의 전방위적인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올해 여름 도로연수를 다시 받고 있다. 작년에 운전면허를 딴 학원에서 연수를 받는데 학원의 셔틀버스 기사님이 친절하고 점잖으셔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올해도 같은 분인 것 같았다. 하루는 셔틀버스 안에 다른 사람들이 없으니 기사님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기에 나도 적당히 대답을 하면서 혹시 작년 여름에도 여기 계셨냐고 여쭤 보니 잠깐 머뭇거리고 계산을 하더니 그렇다고, 본인이 작년 봄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여름에도 이 버스 운전기사였다고 하면서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벌써 1년이 지났군요.'


그리고 시작된 기사님의 이야기. 30여 년을 공직에 몸담고 있었는데 은퇴 후 자그마한 사업을 해 보려고 하다가 잘 안 되어서 1년 좀 넘어 접어 버린 이야기. 아직 마음은 젊은데 자기가 어느새 60대가 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이에 집에 있을 수 없어 자신을 따르던 예전의 부하직원들은 집에서 쉬시지 왜 운전기사를 하냐고 하지만 본인은 젊은이들과 소통도 하고 집에 생활비도 더 벌어다 줄 수 있으니 좋다는 이야기. 살다 보니 '기사님' 소리도 다 듣는다며 처음엔 마음이 좀 힘들기도 했지만 내려놓고 나니 이젠 편해졌다고 이렇게 기사 노릇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는 이야기.


나도 이제 타고난 내성향은 극복하고 스몰 토크가 가능한 아줌마가 되었기에 집까지 오면서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맞장구치다가 내렸다. 그리고 '기사님' 소리가 듣기 힘드셨었다지만 정작 본인은 너무 점잖고 예의가 바르셔서 작년에 나를 '여사님'이라고 불러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겼었다는 에피소드는 함구하는 자신의 센스에 뿌듯해하며...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2-4)

내가 나보다 훨씬 나은 나의 친구들처럼 열심히 경주를 뛰고 있지 못하다면 차라리 그들이 지쳐 있을 때쯤 시원한 물이라도 건넬 수 있는 반환점인 처지가 내 복인가 보다. 그들과의 커피 한 잔, 점심 한 끼 짧은 시간 동안 힘이 되는 말들을 건넸는지,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는지,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친구였는지 돌아본다.


오늘 조금 있다가 아주 오랜만에 해후하게 될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미국에 살 때 큰 도움을 받았고, 내 삶에 귀감이 되었고, 같이 즐겁고 의미 있고 좋은 시간들을 보냈던 인연들인데 정말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서울 관광 온 외국인들처럼 한옥 카페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처지라 공평한 이 만남에서 세월의 흐름에 두렵지도, 이룬 것 없음에 허탈하지도, 이룰 것 생각에 초조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웃고, 앞으로는 좀 자주 볼 수 있도록 약속하고 헤어질 수 있기를 빌어본다.


keyword
이전 17화신선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