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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꿈을 묻지 않는 나이

길 위에서 만난 여인들

by 바다에 내리는 눈

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에게 퀴즈를 내는 티브이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시즌 2가 방영 중이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고 흔치 않은 직업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섭외해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시즌 1에서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게 일상을 묻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인터뷰하는 형식을 취했었다. 시민 참여 예능을 그다지 즐겨 보진 않지만 간혹 엉뚱하고 솔직한 답변들이 재미있어서 몇 편 보았는데 시민 인터뷰 때 전형적으로 묻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린이나 학생을 만나면 주로 꿈이 무엇인지 묻고 중장년에겐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쯤 되면 꿈과 해당사항 없는 나이, 이루지 못한 꿈을 묻어 버리고 후회 한두 점쯤은 가지고 있을 듯한 나이로 보이는구나 싶어서 내가 다 서운했다. 어릴 적 꿈이 뭔지 모를 때에 어른들은 귀찮도록 꿈을 묻더니, 꿈꾸고 싶은 어른에겐 아무도 꿈을 묻지 않는다. 하긴, 지금 누가 나에게 물어 본대도 어릴 적 몰랐던 것처럼 지금도 모르겠다. 그것이 갖고 싶은 직업인지, 이루고 싶은 인간상인지, 이제 나는 늦었으니 자식에게 거는 기대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무도 묻지 않으니 서운한 것이 꿈인 듯하다.


바젤에서 참여하던 모임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기도제목을 나눌 때 아이들을 위한 기도제목도 좋지만 자신이 요즘 너무 비전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고 비전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에게 왜 진작 꿈과 비전에 대해 묻지 않았나, 반성했다. 구성원이 다들 자녀를 둔 엄마들이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임 안에서 주된 화제는 배우자, 가정, 자녀였다. 남들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사는 어머니 역할을 잘 받아들이고 겸손하고 야무지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늦된 나만 내 꿈과 비전, 내 슬픔과 좌절을 얘기하는 게 철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주로 육아의 고단함만 토로하는 우를 범했었는데 어쩌면 다른 엄마들도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데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단어는 '장수의 꿈', '노화방지의 꿈', '쾌변의 꿈' 같이 생물학적인 욕망에 붙어 버리는 단어이고 '은퇴 후 계획', '실버 플랜', '장기 목표', 'KPI' 같은 단어들에 더 익숙해져 버린 이 나이에도 서로 꿈을 묻고 대답하고 비판 없이 들어주면 좋겠다.


나의 꿈은 이상주의자요, 라는 대답에 그것은 멸종한 것이라고 비웃지 말고. 어린이의 꿈이 공룡이라고 그 누가 비웃던가.


나의 꿈은 구연산과 베이킹소다로 청소하며 환경을 지키는 주부 운동가요,라고 한다면 그런다고 지구가 살아나냐고 도전하지 말고. 어린이의 꿈이 지구를 구하는 슈퍼 히어로라고 했을 때 그건 만화 속에서나 가능한 거라고 산통을 깨는 어른은 없지 않나.


나는 꿈이 없어요,라고 한다면 생각 없이 산다고 속으로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 "나도 그래요" 맞장구쳐 주면 서로 한 번 멋쩍게 웃을 수 있으니. 웃음은 중년 건강에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충격적으로 읽은 책이 있다. 김이듬 시인의 '모든 국적의 친구'라는 에세이다.


그녀는 파리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며 24명의 파리지앵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한 권의 책을 엮어 냈다. 나는 그곳에 머물며 단 한 명의 파리지앵도 깊숙하게 사귀지 못했고 그나마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정작 묻고 싶은 것은 묻지 않고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에 귀 기울이지 않고 5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들과 나의 시간은 한 줄의 글로도 남지 않았다. '기꺼이 파리를 방문한 뛰어난 작가' vs. '억지로 끌려 와 사는 한량' 간 역량과 의지의 차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커도 너무 큰 이 생산성의 갭에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뭘 꼭 남겨야 돼?'라고 빈정거리는 것은 쿨한 게 아니라 못난 것이다. 내게 허락된 유한한 시간 동안 나에게 와서 문을 두드린 사람들을 귀히 여기지 않고서 대는 핑계. 스위스를 떠날 때 똑같은 후회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 결심했다.


엔도 슈사쿠, 6일간의 여행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 상처를 남기는 사람, 향기를 남기는 사람, 작은 점선을 남기는 사람, 큰 구덩이를 남기는 사람의 차이점은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불꽃의 잔상이 사그라들기 전에 황급히 떠나 버리는 혜성처럼 서로를 스치며 상대방의 마음에 내 삶의 궤적을 남긴다. 내 마음에 어떤 흔적을 만든 말을 무심코 툭 내뱉은 사람들을 잡고 친분이나 지위나 언어 장벽 따위를 무시하고 용감하게 물어보리라. 갑자게 불쑥 찾아가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를 접어 두고.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나요, 그때 내게 했던 그 말 기억나요? 좀 더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지금은 꿈이 뭐예요?"


이다음에 커서, 자라서, 무언가 전환점을 돌면, 나중에 되고 싶은 무엇이 아니라 내일 죽어도 오늘 내가 붙잡고 사는 그것을 찾는 여정을 독려하고 싶어서,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하는 울컥한 마음으로 '길 위에서 만난 여인들'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써야겠다고 홀로 골방에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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