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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시리아 여인 자하 (Sahar) (2)

길 위에서 만난 여인들

by 바다에 내리는 눈

자하 (Sahar)와는 독일어 수업에서 만났다. 향수병 (하임붸 Heimweh)라는 단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자하, 향수병을 느끼니? 그러자 그녀는 단숨에 대답했다. "매 순간. 이 곳의 모든 것이 고향과 달라." 난 이 말에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모든 게 다를 수 있지? 이 글로벌 시대에...... 머리에 쓴 히잡과 정직한 눈망울, 단호하면서도 차분한 어조 때문에 그녀를 볼 때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단단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었다 (정작 그녀는 시리아 출신이지만). 그리고 더 듣고 싶어졌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무엇이 그렇게 다 다른지.


인터뷰 1편에서부터 이어짐.


나: 그래도 자식들 생각하면 스위스가 더 낫지?


자하: 그럼, 난 오직 걔네의 미래를 위해 여기에 있는 거야. 난 나만 생각해선 안 되고 걔들을 위해 살아야 하니까.


나: 그럼 향수병은 어떻게 이겨 내?


자하: 나도 모르겠어. 자주 울기도 하고 딸들 생각해서 강해지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어머니는 약해선 안 되거든. 어머니가 약해지고 슬퍼지면 자식들도 그걸 다 느끼니까.


나: 강한 어머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가 수업 시간에 너의 어머니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잖아. 어머니도 참 강한 분이시더라. 다시 한번 너의 어머니에 대해 소개해 줄 수 있어?


자하: 어머니는 나를 위해 모든 걸 주셨고 모든 걸 걸고 싸워 주셨지. 내가 자란 사회는 아주 웃겨. 남자들은 여자란 오직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말했어. "내 딸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해. 딸들도 아들과 똑같아." 하지만 아버지, 삼촌, 다른 친척 남자들 모두 그런 생각에 반대해서 내가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난리가 났지. 집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가면 분명히 품행이 나빠질 거라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나는 겨우 대학 교육을 마칠 수가 있었어. 지금까지도 난 한 번도 우리 어머니가 나를 아들과 차별한다고 느낀 적이 없어. 어쩌면 내가 약간 어머니에게 의존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나를 항상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줘.


나: 시리아에 있는 어머니한테 연락하는 게 가능해?


자하: 매일 왓츠앱으로 전화하는 걸. 처음 스위스에 와서 2년 동안은 연락할 수 없어서 힘들었어. 거의 매일 작은 방 안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혼자 울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왓츠앱으로 전화를 걸 수 있어서 좋아.


나: 나도 마침 지금 엄마와 함께 있어. 한국에서 나를 보러 오셨거든. 나도 이제 나이가 꽤 먹었지만 그래도 아직 엄마가 필요해.


자하: 내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엄마가 필요해. 나도 지금은 어머니지만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그녀처럼 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그녀가 나에게 해 준 모든 걸 내 자식들한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도 어렸을 때 나와 같은 문제를 겪었어. 대학 교육을 반대하는 가족을 오빠 (나에겐 외삼촌)가 설득해서 학교를 갈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 똑같이 싸워 준 거야.


나: 지금은 시리아에 이런 강인한 여인들이 많겠지?


자하: 물론, 지금은 시리아 여인들도 강해졌지.


나: 시리아 사회의 여권 상황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쁘네. 너는 시리아에서 선생님이었잖아. 그렇지만 여기서는 학생이자 주부지. 아랍어 선생님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 주부로 삶이 변화했는데 어때?


자하: 처음엔 상황을 아주 나쁘게 받아들였어. "(이렇게 살 거면) 내가 교사가 되려고 왜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지?"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려 노력하지. 그래, 나는 더 배워야 해. 여기서 뭐라도 해야지 그냥 집에 있을 순 없으니까. 여전히 "나는 고국에서 선생님이었어. 대학을 마쳤고 모든 자격을 다 갖추었는데 왜 다시 '제로 0'에서 시작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많지만.


나: 그래, 나도 그런 생각해.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해.


자하: 나도 그래. 매일매일.


나: 너의 꿈은 뭐야?


자하: 통번역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의 내 독일어 실력을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을 거 같아. 게다가 여기는 아랍어 통번역에 대한 수요가 적어서 그렇게 돈도 많이 못 벌고.


나: 너는 이미 많은 아름다운 아랍 문학 작품을 알고 있으니 그것들을 번역해 보면 되겠다. 진짜 멋있을 거 같아.


자하: 내 독일어가 나아지는 그 날이 오면. 하지만 지금은 자식들이 내 인생 목표야. 그 애들의 미래부터 먼저 생각하고 내 일은 나중이지.


나: 마지막으로 나한테 네가 가장 좋아하는 아랍 문학 작품이나 작가를 소개해 줄래?


자하: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의 '부러진 날개 (Gebrochene Flügel)'를 추천해. 그 문장력과 문체가 맘에 들어. 내가 뭔가를 쓰려고 할 때 그의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하는 편이야.


나: 난 사람들이 너의 고향을 전쟁으로 기억하지 않고 그곳에도 많은 아름다운 아랍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자하: 그래, 우리 고향에는 아름다운 문화가 많지. 나는 아랍인이 아니라 쿠르드인이긴 하지만. 물론 아랍어와 쿠르드어 둘 다 내 모국어야.


(쿠르드족과 아랍인들 간의 갈등에 대해 들었으면서도 무심결에 그녀의 고향 시리아를 아랍 문화라고 표현해 버리다니. 이런...... 무지한 나를 그녀는 교양 있고 부드럽게 교정해 주었다.)


나: 그래, '부러진 날개' 꼭 읽어 볼게.


자하: 인터뷰 어때, 괜찮았어?


나: 어, 정말 좋았어!


<인터뷰 후기>

2020년 2월의 어느 날 어학원 근처의 카페 Spiga에서 난생처음 인터뷰어가 되어 자하를 인터뷰했다. 한 시간 남짓한 그녀와의 대화 녹음 파일을 몇 달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듣고 또 들으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더 질문거리가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 영향으로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이렇게 집중하여 듣고 모든 낱말을 받아 적고 번역하고 고치고 음미한 적이 없었기에 그 누구보다 더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외출을 자제하는 사실상의 가택연금 시간 동안에도 자하를 따라 시리아에서 터키로, 그리스로, 이라크로, 스위스로, 우리가 마주친 현재로, 그녀의 꿈결 같은 미래로 부러진 날개를 달고 이동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녀의 꿈을 발굴해 준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려 한 것이구나. 내가 언젠가 (과연?) 쓸 소설 속 인물의 재료가 될지 어디에 실을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이 그저 혼자 기획한 인터뷰라는 말에도, 어떤 자격도 없는 나에게 기꺼이 인터뷰를 당해 준 자하에게 감사하다. 칼릴 지브란의 '부러진 날개'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아름다움에 대한 글귀들에 표시해 두었다. 다시 자하를 만나는 날 아름다움 (쇤하이트 Schönheit)에 대하여 토론해 볼 수 있기를. 지금은 바젤 땅에서도 아름다움의 한 조각을 발견했느냐고 물어봐야지.


KYOBO_20201026_134306.jpg 칼릴 지브란 '부러진 날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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