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바다에 내리는 눈 Mar 10. 2021
얼마 전 미국 서부에 살고 있는 친구 둘, 중서부에 사는 친구 하나, 그리고 홍콩에 사는 나까지 넷이서 줌으로 언택트 신년회를 가졌다. 박사 과정 재학 중에 매일 보다시피 했던 친구들인데 졸업하고 자주 보기 힘들어 서로를 페이스북에서 애타게 그리워만 하다가 사람이 고픈 나의 주도로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나를 빼고 모두 미국에 살고 있으니 다수를 위해 내가 시간을 맞춰 그들이 여유 있는 미국 밤 시간, 홍콩의 낮 시간에 만났는데 진한 수다를 위한 준비물로 술 한 잔이 꼭 필요한데 괜찮겠냐며 친구들은 내가 술을 못 마실까 걱정했다. '아 이 사람들아, 내가 프랑스에서 5년을 살았는데 이제 낮술은 부전공이야. 파리의 회사는 구내식당에서 와인과 맥주를 판다고, 껄껄.' 친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대낮부터 와인 두 잔을 가득 채워 마시는 바람에 그다음 날까지 숙취로 머리가 조금 아팠지만 기분 좋고 반가운 만남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건강에 좋은 약과 목디스크에 효과 있는 견인기 얘기로 시작해서 시카고의 추억과 육아와 코로나와 넷플릭스를 거쳐 마침내 미나리에 이르렀다. 주변의 지인들이 다 영화 '미나리'를 봤더라, 그래서 나도 이번 주말에 보려고 한다는 친구의 말에 아직 미나리가 개봉도 안 한 나라에 사는 주제에 또 내가 아는 척을 했다. 서울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이 서울 지리는 제일 잘 안다고 한국 드라마는 보지도 않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본 뉴스 제목만으로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중국인에게 맞장구를 쳐 줄 수 있을 정도로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유튜브에서 미나리의 출연 배우 윤여정의 인터뷰 영상[1]을 보았다는 이유로 미나리 전문가 행세를 했다.
"윤여정이 그 영화에서 딸로 나오는 배우 한예리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더라. 왜인 줄 아니? 오클라호마 털사에 갇혀서 영화를 촬영하는데 아주 현장이 열악했대. 한국에서는 경력도 오래된 대배우니까 모든 게 어수선한 촬영 첫날 현장을 나가질 않는대.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뭘 알아? 윤여정이 누군지 얼마나 대선배인지...... 그래서 자기를 첫날 첫 장면을 찍는 걸로 일정을 잡아 놨더래. 그래도 여기서는 내가 신인이지, 하고 나갔는데 가 보니 뭐 예상대로 어수선하더래. 의상도 어제 맞춰 본 그 의상이 아니고 잘못된 게 와 있고. 스탭한테 너 이거 우리가 같이 피팅한 그 의상이 맞냐, 하고 물어보니까 실수한 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지 계속 왓? 왓? 거리더란다. 네 영어를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지가 뻔히 실수한 거 알면서...... 그래서 속으로 오, 요것 봐라,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하고 오기가 나서 후배 한예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는 거야. 현장에서 미국 애들이 영어 가지고 무시하고 지들 방향으로 휘두르려고 해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동하라고."
출처: 문명특급 인터뷰 갈무리 산만한 나의 인터뷰 요약에 친구들이 봇물처럼 자기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그래, 그거 알지, 지들이 질 것 같으면 결국은 저열하게 우리 영어를 가지고 걸고넘어지는."
"한국계 감독이 한국 배우들 데리고 한국계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한국인이라고, 영어 못한다고 무시를 해? 이 괘씸한 놈들."
"야 나도 코로나라서 좋은 게 뭔지 아니? 재택근무를 하니까 꼴 보기 싫은 사람 안 봐도 되는 거야.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이유 없이 인사도 안 받아 주는 재수 없는 미국인들이 있다니까."
차별을 받은 배우 자신은 특별대우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서 좋았다며 좋은 연기를 보여 줄 생각만 했다고, 부정적인 경험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넓은 도량을 보여 주었는데 정작 이 일화를 들은 우리는 침 튀겨 가며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척박한 매일에 미나리가 그득그득 피어 있으니까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일했을 때의 기억이다. 회사는 한국 대기업의 지사였고 나는 주재원으로 나갔는데 합작회사의 형태여서 내부에서는 이건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 회사라는 생각으로 일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실리콘 밸리의 벤처 기업 흉내를 내며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하고 겁도 없이 마약에 찌든 노숙자가 가득한 시내 거리를 걸어 퇴근할 정도로 당시의 나는 용감하고 순수하고 회사에 충성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본사에서 나온 나를 견제하고 무시하던 미국인 직원도 있었다. 경력으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가방끈으로 보나 무엇으로도 그가 나를 무시할 자격은 안 되었는데 어떻게 해도 내가 기가 죽지 않으니 결국은 회식 술자리에서 내 영어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무심코 연인이란 말을 lover로 표현했는데 비웃으며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고, 절대 어떤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도 안 나오는 말이고, 잠자리에서나 쓰는 말이라고 무시한다. 영문과를 나와서 소네트 수십 편을 읽었고 미국인만큼 영미 문학 작품 고전도 읽었는데 거기에서 나온 lover는 그럼 다 뭐냐고 내가 반문하니 수백 년 전에야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 아니란다. 그러면 너는 연인을 뭐라고 표현할 거냐고 물어보니 보이 프렌드, 걸프렌드, 파트너 이런 단어로 표현한다고 하는 거다. 나도 그 단어들은 알지만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동거인이 아닌 '연인'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다고 하니 대답은 막상 명확하게 못하면서 그냥 내가 틀렸고 우스꽝스러운 영어를 썼다고 다른 사람들이 그만 하라고 해도 계속 그 단어 실수만 물고 넘어지는 사람이었다. 연인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차라리 one's love라고 하는 게 낫고 lover에는 잠자리를 같이 하는 상대라는 뜻이 있는 걸 알았지만,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이 트집을 잡는 그가 얄미워 나도 억지를 좀 부렸다. 상대방이 잘못된 단어를 썼다면 무안할 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거나 기분 나쁘지 않게 고쳐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치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내 부족함을 확대시켜 다른 동석자들에게 각인시키려고 한 그의 의도가 뻔히 보여 우스웠기 때문에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한국 본사에서 나오는 돈으로 굴러가는 회사인데 당당하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도 읽어 본 적 없다고 밝히는 신참이 제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인 직원들을 무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에 가서 물건 값 1달러도 못 깎는 본성을 타고났는데 회사를 다닐 동안은 싸움닭으로 살았던 것 같다.
아마 일반적인 미국 영화 촬영 현장이었다면 주연배우가 의상 스탭에게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Pardon 혹은 sorry but can you say it again)?'도 아닌 '뭐 (What)?' 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을 거다. 미국에선 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버릇없이 'What?'으로 대꾸하면 절대 안 된다고 교육시키니까. 아무리 선후배 개념이 없고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가 수평적인 미국 회사라도 신입 사원이 매니저에게 단어 실수로 면박을 주는 일은 없는데 내가 당했던 것처럼 윤여정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대우를 받았던 거다.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당황하고 수치스러워서 자꾸 자기 실수만 곱씹고 움츠러들게 되는데 10년 동안의 미국 생활에서 깨달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차별은 당하는 사람의 수준이 낮음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하는 사람의 수준이 저급하다는 걸 보여 준다. 나는 위에 적은 저 사건 이전에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대화 도중 잘못된 단어 사용으로 지적받고 무안하리만큼 놀림받은 적이 없다. 2001년부터 시작된 해외 생활인데 그 긴 세월 동안 내 영어가 완벽해져서가 아니다.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고 마음이 급해서 빨리 말하다 보면 말실수도 많이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원어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실수는 넘길 수 있는 교양과 외국인의 악센트를 받아들이는 관용을 갖춘 세련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실수를 지적하기보다 메시지의 내용에 집중했던 거다. 줌 미팅에서 같이 수다를 떤 친구 역시 10년이 넘게 미국에 살면서 별의별 사람 다 만나 봤지만 'What?' 소리는 딱 한 번 들어 봤다고 한다. 아무리 짜증 나고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지인들은 Pardon이나 Say it again?을 사용하며 최소한의 상식적인 선을 지킨 사람들이었고 딱 한 명만이 그 선 이하로 떨어진 사람이었다.
사실 미국을 떠나 살게 되면서 언어를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 어떤 것이 잘하는 언어인가 하는 기준, 못해서 부끄럽다는 생각, 이런 것들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다. 같은 영어라도 영국에선 Pardon이 교양 없는 말이고 잘 못 알아들었을 경우 What?이라고 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원래는 영국에서도 Pardon을 썼었는데 미국인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20세기 초에 What을 상류층 언어로, Pardon을 하류층 언어로 규정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 그러니 미국 영어 좀 못한다고 뭐 그리 대수인가? 미국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듯 미국 영어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익혀야 할 가장 중요한 재주도 아니다. 어쩌면 불어, 독어, 중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어와 영어도 퇴보하여 결국은 0개 국어 능통자가 되어 버린 내 신세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젠장, 어쩌라고. AI는 날로 발전해서 곧 설국열차 영화에 나오듯 인류는 초소형 동시통역기를 지니고 세계인과 대화하며 사는 시대가 올 것 같은데, 지금도 구글 번역기 기능이 얼마나 훌륭한데, 언어 좀 못하면 뭐 어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다른 콘텐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언어 경쟁력이니 나만의 콘텐츠니 하는 것 없어도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며 민들레 홀씨처럼, 미나리 씨앗처럼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나 자신에 너그러워지기까지 딱 20년이 걸렸다.
[1] 문명 특급 인터뷰 EP.173
[2] "다시 말해 주세요"란 'Pardon!’이 영국에선 하층민이 쓰는 표현? 2017.08.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