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이란 이럴 것이다' 하고 머릿속에 그리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일단 강사가 자기소개를 하고 학생들에게 강의 계획서를 나눠 주고 강의 계획서에 다 나와 있는데 나중에 딴 소리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시험 일정과 숙제와 출결의 학점 반영률 같은 사항을 유치원생에게 잔소리하듯 일일이 짚어 준다. 그런 후 강의명에 들어가는 개념에 관해 썰을 푼다. 학기가 진행될수록 진도 나가기에 급급해서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 '설득 (Persuasion)이란 무엇인가, '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이런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난제들을 이 수업을 들으면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의 니즈를 최소한이나마 충족시켜 주기 위한 면피성 강의라 할 수 있겠다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풍경 안의 매너리즘에 빠진 강사는 과거의 나이다). 그래서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영남화 (Lingnan Painting) 수업 첫 시간은 서로 자기소개를 한 후 강사가 영남화가 무엇인지 그 역사와 대표적 화가들과 화풍에 대해 설명해 주고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될 거라고 알려 주는 이론 위주 수업이겠거니, 시간이 남으면 붓을 쥐어 볼 수도 있겠거니......
그러나 실제 수업 첫날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미 다른 학생들은 자기 책상에 앉아 연습을 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쭈뼛거리며 교실 문을 들어선 나를 초로의 강사님이 교탁으로 부른다. 인사와 자기소개 따위는 쿨하게 생략한 선생님은 경황없는 나에게 붓, 종이, 먹 등 일체의 도구를 안긴 후 바로 선 긋기 시범을 선보인다.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서 선생님이 물의 양을 조절하여 세 가지 다른 농도의 먹색 (초묵, 농묵, 담묵)을 낸 후 선을 긋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됐으니 가서 사군자 붓을 이용하여 알맞은 두께로 가로 선을 그어 보라고 주문한 후 선생님이 말한다. "자, 다음 그룹!"
이게 도대체 뭐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실전인가!
알고 보니 이 교실엔 초급 과정을 이미 수강한 중급반 학생들 몇 명, 중급 과정을 이미 수강한 고급반 학생들 몇 명, 그리고 나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초급반 세 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그러니 자기소개니 개념 설명이니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초급반인 우리가 가로로 선 긋기 시범을 보는 동안 중급반과 고급반 학생들은 묵묵히 자기 그림을 연습한다. 선 긋기 시범을 본 초짜들이 자리로 돌아가서 화선지에 선을 똑바로 긋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동안 중급반 학생들이 나와 선생님 책상에 모여서 조금 더 발전된 그림을 배우고 (포도였던 거 같다) 다음엔 고급반 학생들이 나와 돼지 그리기를 배운다. 고급반 학생들이 들어가면 또 초급반이 나와서 세로 선 긋기를 배운다.
선생님이 한 번의 수업에서 전달하는 지식의 양이 많거나 시범을 보여 주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두 시간 동안의 수업에서 선생님은 각 그룹에게 세네 번씩의 시범을 보여 줬을 뿐이지만 초급반에게 주어진 네 가지 과제 - 진한 선 긋기, 중간 농도로 선 긋기, 옅은 선 긋기, 나뭇잎 그리기 - 를 연습하는데 두 시간이 모자랐다. 새삼 놀라웠다.
아, 그림은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리면서 배우는 거구나.
나는 가르치는 입장일 때 많이 준비해서 하나라도 더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쏟아붓고 수업이 끝나면 완전히 지쳐 버려서 '역시 사람 상대하는 일은 맞지 않아, 그냥 혼자서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학생이 배운 것을 소화시키고 몸에 익히는 행위가 수업 중에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그런 여백을 허락하지 않고 끊임없는 말의 덧칠로 나도 피곤하고 학생들도 체하는 수업을 했었던 게 아닐까.
어린 시절 친구를 어른이 되어 만났을 때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낯설어서 존댓말이 나오려 하는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화선지와 붓, 먹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붓에 조금만 먹물을 많이 묻혀도 선이 다 번져 버려 두껍게 되고 그게 두려워서 먹물을 조금만 묻히면 마른 선이 갈라져서 보기 흉하다. 편하게 잘 그려지는 자세로 붓을 짧게 잡으면 손에 먹물이 묻어 종이가 더러워졌다. 붓을 정석대로 쥐고 45도로 눕혀서 시작했다가 중간쯤 가서 90도로 세워 선긋기를 마무리하려니 더 어려웠다. 담묵으로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 싶어도 먹물 농도가 진해지면 묻혀야 할 먹물의 양과 붓을 종이에 눌러 그리는 압력을 다시 계산해서 또 여러 번 연습해야 선생님이 주문한 두께의 선을 그릴 수 있었다. 가로세로로 선 긋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3일 동안 그린 선 긋기 숙제. 엉망이다.
시범을 보이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 연습하세요. 연습, 연습, 또 연습. 아무튼 연습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나의 스승님은 90세가 되었을 때 그제야 제대로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94세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던 해에도 매일 연습하셨어요.
어쩌면 영남화 그리기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경지에 이른 나이에 그린 선과 면들을 '작품'이 아니라 '연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겸손일지도 모르겠다. 졸수(卒壽)까지 연습하면서 화가는 노쇠한 것이 아니라 성장했다는 증언은 불혹의 나에게 날카로운 위로이자 따뜻한 권면이었다.
선생님의 말에 자극받아 3일 동안 시간을 내서 숙제를 완성하고 두 번째 수업은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준비했다. 첫날은 내가 제일 늦게 와서 몰랐는데 누구도 수업 전에 떠들거나 딴짓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개고 붓을 가지런히 두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우당탕탕 앉아 부스럭거리며 종이며 붓이며 꺼낸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거였는지, 영남화 수업은 붓을 쥐기 전의 고요하고 비어 있는 시간까지 포함한 것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난화를 배웠다. 집에 와서 가방에서 난화 그림을 꺼내는데 옆에서 남편이 비웃는다.
"하하, 이게 뭐야!"
"이거 선생님이 그린 거야."
"응......?"
내가 그린 건 줄 알고 비웃을 준비를 잔뜩 하고 있던 남편은 선생님 그림이란 말에 당황한다. 이 단순한 걸 두 시간 동안 그렸다는 걸 못 믿겠다고 어디가 대단한 건지 설명을 해 달라고 하는데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귀찮아서 내가 그린 걸 보여 줬더니 바로 납득한다, 선생님이 그린 난은 대단한 거였다는 걸.
당연히 왼쪽이 선생님이 그린 예시 그림이다.
수십 장을 그렸는데 건질 그림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건 잎의 각도가 인위적이고, 어떤 건 잎들 사이가 너무 넓게 퍼졌고, 어떤 건 잎이 너무 두껍고, 어떤 건 잎은 잘 그려졌는데 꽃이 엉망이고, 어떤 건 꽃대가 우아하지 않고...... 그렇지만 아쉬울 때 붓을 놓아야지 어쩌겠는가. 하루 종일 난만 치고 살면 좋겠지만 밥도 해야 하고 집도 치워야 하니까. 아쉬울 때 붓을 놓지만 붓을 잡지 않는 날은 없도록 한다. 이게 영남화 수업에서 길어 올린 두 번째 교훈이다. 세 번째 수업에선 또 어떤 꿈꾸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