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네 이웃을 먹이라

푸드 앤젤 (Food Angel) 자원봉사기

by 바다에 내리는 눈

국제면 뉴스를 보다가 차마 사진을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버린 기사가 있다.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아빠가 자리에 없으면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쇠사슬에 묶여 지내던 한 여자 아이가 오랜만에 음식을 받고 너무 급하게 먹다가 체해서 죽고 말았다는, 지금 이렇게 쓰면서도 믿을 수 없어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떨리는 그런 뉴스다. 스위스 바젤에 살 때 시리아 난민 출신의 친구 자하를 만나 그녀의 시리아 탈출기를 (https://brunch.co.kr/@snowflakesea/34) 들어서 그런지 시리아 소식을 접하면 남 일 같지 않았는데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지' 다짐은 하면서도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 뉴스는 유튜브에서 본 한 탈북자의 증언을 [1] 떠올리게 했다. 북한에서 부모 없이 꽃제비로 떠돌던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아사 직전의 다른 꽃제비 아이를 보았다. 지나가던 중국인들이 불쌍히 여겨 빵을 주었지만 먹을 기력이 없어 그냥 품에 안고만 있는 아이였다. 곁에 있던 다른 꽃제비 아이들이 달려들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눈도 뜨지 못하면서도 빵을 뺏기지 않으려 꼭 쥐고 안 놓더란다. 그렇지만 결국은 빵을 빼앗겼고 아마도 곧 숨을 거둔 것 같았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자기의 삶에 환멸과 큰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같은 처지의 죽어가는 아이에게서 빵을 빼앗아 어린 동생을 먹여 살리는 자신의 곤고한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계속 살아선 안 되겠다는 각성을 하고 그것이 그를 탈출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잠시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남한의 청소년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밝고 명랑한 아이들의 뒤편에는 깊은 상처가 있으니 봉사자들이 각별히 주의해 달라는 다른 선생님들의 당부를 의욕만 앞서고 철없던 내가 유념해서 행동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란 인간은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다짐하지만 매일 저녁 과식해서 소화제를 찾는다. 그러면서 시리아와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에 눈물짓는다.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 흘리면서 그들의 육체의 갈급함을 채워 주지 않으면 그것은 입으로만 하는 거짓 사랑 고백, 위선자의 자기 위안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렇게 앉아서 감상에만 빠져 있지 말고, 돈으로 해결할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부딪혀 돕는 건 어떨까, 도전하는 음성이 내 안에서 들렸다. 그래, 이제 움직일 때도 됐지......


홍콩에 믿을 만한 NGO 중에서 푸드 앤젤 (Food Angel https://www.foodangel.org.hk/)이란 곳이 있단 걸 알아냈다. 식당, 호텔, 슈퍼 등에서 유통 기한이 임박했지만 멀쩡한 식재료들을 기부받아 요리를 해 자원 봉사자들이 도시락을 싸서 노숙자, 취약계층 노인, 장애인 시설 등에 무료로 배달해 주는 단체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봉사 가능한 날짜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정부의 요식업 관련 규제를 따라야 해서 모든 봉사자는 식당 종업원들처럼 1) 최근 2주 내의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 혹은 2)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증명서를 내야 한다. 아무래도 증상이 없는데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신청에 허들이 되는지 봉사자가 평소보다 적은 것 같다. 또 홍콩은 올 6월 말까지 유통기한인 화이자 백신이 남아 돌아서 폐기한단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백신 접종률이 낮다. 코로나 백신을 맞기 싫은데 자원봉사 때문에 일부러 맞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게다가 기업이나 학교에서 오는 단체 봉사자도 코로나 시국이라 금지되어 봉사자가 부족한 것 같았다. 진작에 백신을 2차까지 맞은 덕에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내가 오래간만에 기특했다. 여러 군데 주방이 있는데 내가 갈 수 있는 시간과 거리에 있는 곳이 삼수이포에 있는 센트럴 키친이라 그곳을 선택했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

아침 9시 반부터 봉사 예정이라 15분 먼저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건강 상태 질문서를 (Health Declaration Form) 작성하는데 질문서 마지막 항목의 영어 번역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최근 14일 동안 코로나 환자와 어떤 관여도 없었습니다'라는 항목에서 광둥어 문장에서는 '아닐 불 (不)'자를 보았는데 영어에는 관여가 있었다고 (I have been involved with any Covid-19 cases...) 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스태프를 불러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NOT'을 빼먹었다고 얘기를 해 주는데 영어를 전혀 못 알아 들어서 답답했다. 잘못 번역된 문장에 yes라고 체크해서 괜히 나중에 문제 될까 봐 걱정되고, 그동안 거쳐 간 다른 봉사자들은 왜 아무도 이 실수를 잡아 내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들 제대로 안 읽어 보고 사인한 걸까. 사실 애초에 이렇게 간단한 문장을 검토도 하지 않아 완전히 뜻을 반대로 번역해 놓은 번역자에게 짜증이 나려는데 또 내 고질병이 도졌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왜 이렇게 간단한 걸 못 알아들어?' '왜 이렇게 일을 대충 해?' '이건 상식 아니야?' '이건 기본 아니야?' 이런 생각들을 비겁해서 밖으로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수도 없이 하면서 남을 답답해하고 내 기준만 앞세웠다. 교만이란 고질병이 자원봉사하러 와서도 꿈틀꿈틀 고개를 들다니...... 조용히 밥이나 하다 갈 것이지 여기까지 와서 지적질이나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이없게 느껴져 금방 짜증을 거두었다.


체크인 구역 (주방 내에서는 촬영 금지)

'코로나 환자와 관여가 있었음'에 yes라고 체크해 놓고 엄중한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손을 씻고, 알코올 소독을 하고, 위생모, 위생 장갑,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 관련 안내를 10분 이상 듣고 있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기이했지만 어쨌든 주방으로 입성했다. 주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생강들. 한국 생강은 손톱 몇 개 붙여 놓은 것처럼 작은데 중국 생강은 역시 대륙의 산물답게 아기 팔뚝만 했다. 생강 껍질을 숟가락으로 1시간 동안 벗겨 내면서 중국 음식은 생강을 엄청 쓴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이었으면 다 마늘이었을 텐데). 반복적으로 작은 움직임이 많은 이런 작업이 건초염이 있는 손목에 치명적이라 오른팔이 시큰했지만 양파가 아니라서 눈은 아프지 않으니 감사했다. 사실 양파를 까라고 할까 봐 고글을 챙겨갈까 생각했었다.


생강 다듬기가 끝난 후 또 손을 씻고 앞치마와 팔토시, 위생 장갑을 바꿔 끼고 본격적으로 도시락 싸기 작업에 돌입했다. 따끈한 점심을 배달하기 위해 12시 전까지 신속하면서도 위생적으로 도시락을 싸야 한다. 단체 급식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탈이라도 나면 안 되니 작업 지침이 복잡하고 봉사자들이 그대로 잘하는지 스태프들이 수시로 확인했다.


- 내용물이 넘쳐 용기가 더러워지면 안 되므로 밥과 계란 요리는 용기의 80%, 채소는 70%만 담기

- 흘러넘친 음식물은 아무리 비닐장갑을 꼈어도 절대 손으로 집어서 담으면 안 되고 뚜껑을 사용해서 넣기

- 용기 닦는 행주와 조리대 닦는 행주는 구별해서 사용하기

- 도시락의 온도를 균일하게 보관해야 하므로 포장이 끝난 도시락을 4개 이상 겹쳐서 쌓지 말기

- 앞사람과 일하는 속도 맞추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지침들을 지키면서 2시간 동안 서서 도시락을 쌌다. 냉방되는 사무실에 앉아 일한 경험밖에 없는 나는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식당 주방은 음식이 식으면 안 되니까 에어컨을 안 트는구나. 아니, 에어컨을 틀었는데 이렇게 더운 건가? 대용량의 음식물과 오븐이 뿜어내는 열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족히 수천 개는 싼 것 같아 작업량에 압도되었는데 그래도 설마 수천 개를 쌌을까, 해서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니 푸드 앤젤에서 하루에 기부받아 활용하는 재료가 35톤이고 매일 10000 끼니, 2000개의 도시락을 제공한다고 한다. 정말로 나와 다른 봉사자들이 두 시간 동안 싼 도시락은 수천 개였다! 한편으로는 이 단체가 없었다면 하루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점심을 굶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먹먹해졌다. 어째서 호의에 기대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되는 걸까. 왜 사회는, 국가는, 체제는 그들을 내버려 두었나.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23)'는 성경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과 함께 반발심이 들곤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어떻게 남들이 하는 일처럼 멋지고 위대하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온 사소하고 하찮고 누구나 할 수 있고 별 거 아닌 일을 주께 하듯 성심성의를 다해서 할 수 있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에게도 큰 일을 맡겨 달라고, 그러면 주께 하듯이 하겠다고 반항하며 살아온 40년이다. 그런데 푸드 앤젤의 주방에서 나는 주께 하듯 도시락을 쌌다. 집에서는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면 아까워서 손으로 집어서 다시 프라이팬에 넣고, 같은 행주로 그릇도 닦고 조리대도 닦는데, 소스가 흘러넘쳐도 그냥 그릇을 내는데, 여기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예쁘고 깔끔하게 싸서 먹을 사람들이 도시락을 받았을 때 기분 좋기를 바라면서 쌌다. 공짜 점심이라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주는 대로 먹으라는 자세가 아니라 고급 슈퍼마켓과 호텔 식당에서 기부받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서 최고 수준으로 위생적인 주방에서 엄격하고 진지한 스태프들의 진두지휘 하에 열과 성의를 다해 도시락을 싸는 다른 봉사자들의 태도에 감동해서 지금 이 도시락을 예수님이 드셔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쌌다.


그렇게 수천 개의 도시락을 싼 후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광둥어로 인사하고 짧게 손뼉 친 후 그 흔한 기념사진도 없이, 감사 인사도 받지 않고 서둘러 떠났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으니까.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먹이라는 것은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었으니까. 인생에서 최초로 내게 맡겨진 일을 주께 하듯 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2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던 키친


덧붙이는 말: 나중에 건강 상태 질문서 번역을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고 이메일을 보내니 영어를 할 수 있는 담당자가 확인하고 덕분에 고쳤다고 답장이 왔다. 지적이 아닌 제안을 한 결과가 되어 다행이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GwryD4xG5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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