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낡고 찬란한 현실

2021년 5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다가 무심코 주차된 밴 안에 눈이 갔는데 어떤 여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밤이라면 저녁에 한 잔 하고 음주 운전을 하기 싫어 눈 붙이고 있겠거니, 한낮이라면 한참 운전하다가 피곤해서 졸음운전하기 싫어 잠시 쉬는 거겠거니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아침 시간에 웬 젊은 여자가 차 안에 뻗어 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기다 안심했다. 그 뒤에 주차해 있는 SUV 안에 다른 여자가 안대까지 야무지게 하고 누워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뒤의 차 안에도...... 국제학교들이 몰려 있는 동네의 인적이 드문 뒷길에 쪼르륵 주차된 차들 안에서 조수석을 한껏 뒤로 젖히고 젊은 엄마들이 자고 있었다.


홍콩에서는 유치원 (Kindergarten)이 시작되는 3세 반을 K1이라고 하는데 그 전의 0~2세 대상 어린이집은 공립이 거의 없고 대부분 사립으로 운영된다. 사립학교 어린이집 (Pre-nursery)도 종일반이 거의 없고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오전에 3시간 이하로만 등원한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다시 집에 갔다가 또 금방 하교 길 픽업하러 돌아오면 귀찮으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차라리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이나 보충하자는 게 이 엄마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젊은 엄마들이 자고 있는 차들의 행렬을 보고 있노라니 또 다른 홍콩의 풍경이 떠오른다. 주말이 되면 휴가를 받은 헬퍼들이 공원 등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밥도 먹고 카드놀이도 하고 마이크에 노래도 하고 아무튼 아예 거기에 살림을 차린 듯 모여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는데 처음 홍콩에 와서 그 풍경에 압도됐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밖에서 하고 있는 그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홍콩 사람들이 헬퍼들을 배려하는 건지 무심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한화로 약 7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헬퍼들은 그나마도 대부분 본국의 가족에게 부치기 때문에 쉬는 날에 돈을 지불해야 앉을 수 있는 커피숍이나 식당에 들어가는 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 갖고 와서 야외에 앉아 자기들끼리 모여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공원이나 해변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거야 서구에서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센트럴 지역의 큰 쇼핑몰 연결 통로,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 뒤편 이런 곳에 다닥다닥 몰려 앉아 후덥지근한 날씨에 밥을 먹는 걸 보면 측은한 맘이 들었다. 돈이 없으면 쉬는 날에 갈 데도 없고 사생활을 보장받으며 더위와 비를 피할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구나...... 선진국일수록 도심 속에 돈 들이지 않아도 편히 쉴 수 있는 벤치와 공원이 많다고 하던가. 홍콩의 휴일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인간은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되고 물질이 중심인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현장 사진 같다.


그러나 헬퍼 월급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사립학교에 다달이 학비로 내고 있을 엄마들도 노상주차된 차 안에서 자고 있다. 사립학교 학부형들과 헬퍼들, 이 두 집단이 사회적으로는 다른 위치에 존재하지만 고단한 휴식을 공공에 노출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식에게는 나보다 더 나은 삶,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집에서 먼 학교까지 무리해서 보내고 각종 과외 활동에 집어넣고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차에서 쪽잠을 자고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K1 과정부터 시작되는 경쟁에 대비해서 각종 교육 정보를 알아보는 매니저 역할까지...... 이것이 이 엄마들이 원하던 삶일까.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남는 건 뭘까. 자식들도 나중에 또 이렇게 살게 될까? 홍콩은 빈부격차가 큰 나라라서 엄청난 부자들도 많다.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학습 매니저까지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의 부자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얘기일 테지만 그들만큼 돈이 없는데 경쟁에선 뒤쳐지고 싶지 않아 뱁새가 황새 쫓아가느라 다리 찢어지고 있는 이들의 초상에 나도 어리석게 붓칠을 한 획 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파리에 살 때 만난 걸인들에겐 구걸의 이유가 있었다. 지하철 역사나 거리의 구석에 앉은 그들 옆에는 'J'ai faim (배를 곯고 있어요)' 'Famille de la Syrie (시리아에서 탈출한 가족입니다)' 등의 말이 쓰여 있는 종이 상자가 놓여 있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어린아이, 축 늘어져 있는 개가 있어서 돈을 줘야 할 이유가 보였다. 돈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동전을 받으면 주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Merci'라고 속삭이는 인사까지, 어쩐지 파리에서는 구걸에도 일종의 매너와 문법이 형성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스위스로 이사하고 나니 거리에 걸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가끔 무슬림 이민자 노인이 트램 역에서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며 손바닥을 내밀긴 했어도 파리에서처럼 수많은 노숙자와 걸인을 본 적은 없다. 이런 청년을 본 적은 있다. 트램 정류장에서 걸어 다니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어로, 내 옆 사람에게는 독어로, 나에게는 영어로, 사람 얼굴 봐 가며 마치 수금하는 사람 같은 태도로 돈을 달라는 거다. 옷차림은 깔끔했는데 부스스한 머리, 떠는 손, 불안한 눈빛이 약간 정신 이상 증세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소득이 높고 복지가 좋고 불법 체류자가 거의 없는 스위스에서는 190cm가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에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걸인의 잔상이 오래 남았다.


홍콩에서는 가끔 길바닥에 엎드린 노인들을 본다. 그 노인들은 파리의 걸인들처럼 앉아 있거나 스위스의 걸인처럼 서 있지 않다. 땅바닥에 고개를 박고 엎드려 누운 채 두 손을 벌리고 있다. 날씨는 또 왜 이리 무더운지, 선선한 유럽 날씨라면 몰라도 30도가 넘는 땡볕에 저렇게 오래 엎드려 있어도 되는 걸까,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걱정될 정도다. 처음 그런 노인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지갑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손바닥에 놓아줬는데 이 노인이 고개를 들어 나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머니에 챙기는 것도 아니라 시체처럼 가만히 계속 그 자세로 있었다. 알량한 돈 몇 푼을 쥐어 주고 파리에서처럼 눈인사라도 받고 싶었던 건지, 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그에게 당황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집어 가면 어쩌나 불안해졌다. 얼른 노인이 챙겨 자기 주머니에 넣길 바랐는데 횡단보도의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까지 몇 번을 돌아보아도 그는 그대로였다. 이 얘기를 스위스에 있는 친구에게 했더니 그녀는 조용히 탄식했다.


"그러니까 손을 오므릴 힘조차 없었던 거군요."

피할 그늘이 없는 곳에서 뜨거운 지열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앙상한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도움을 움켜쥘 기력도 없는, 우리가 이제껏 보아 온 가난과는 차원이 다른 가난에 친구와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기도했던 것 같다.



얼마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사가 주관한 '2020년 홍콩 사진 콘테스트' [1] 수상작 전시를 보았다. 코로나 전염병이 도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인지 작년 콘테스트의 주제는 'Happy & Healthy'였고 정말로 행복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사진들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모두가 입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와중에 가운데 소년 혼자 눈에 마스크를 쓴 모습이 코로나 따위에 지지 않고 여전히 행복한 장난꾸러기의 결기를 보여 주는 것 같아 내 눈에는 아래 사진이 가장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天真無忌 (Innocence) by Law Yun Lung Alan [Source:www.hkphotocontest.com]

풍경 사진 대상은 'Meal on Lion Rock (사자 바위에서의 식사)'라는 작품이었는데 보는 순간 'Happy & Healthy'라는 주제가 잘 드러나서 주최 측에서 좋아했겠구나 싶었다.


2020122877914609.jpg 崖壁上的晚餐 (Meal on Lion Rock) by Leung Chi Hang, [Source:www.hkphotocontest.com]


야심한 밤에도 절벽에 매달려 일을 멈추지 않고 위태로운 지점에서 소박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노동자의 얼굴에 조명을 비춰 함박웃음까지 확실히 보이는 이 풍경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주제 의식에 너무 충실해서 연출 사진인가 싶을 정도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 위기에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 낭떠러지에 매달린 듯 살고 있지만 '주어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살아가자, 계속 힘내서 일하자!' 하는 선전 문구라도 사진에 쓰여 있는 느낌이었다. 이게 2020년의 홍콩의 진짜 현실이었을까?


2020122319154153.jpg 空間 (Space), by Chak Kwong Man [Source:www.hkphotocontest.com]


나는 '공간 (Space)'라는 사진 앞에 한참 머물렀다. 마침 가수 민수의 '섬 (Islet)'[2]이라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낡은 아파트 옥상 위 섬처럼 머물고 있는 여자는 마냥 고독하지만은 않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통해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그녀를 둘러싼 낡은 현실에서 도피하여 소셜 미디어의 화려한 세계로 들어가면 안식을 얻는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마약 '소마'처럼 하루 일정량의 인스타그램을 섭취하면 현실과 상관없이 충만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핸드폰에 고정시키고 있는 눈을 들어 현실을 바라보면 그저 사방이 낡았다.


나는 홍콩의 낡은 공간이 주는 울림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 이 사진이 좋았다. 그녀는 빨래를 널러 옥상으로 올라온 김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느라 바쁜 워킹맘이다. 혹은 그녀는 코로나로 국경이 막혀 2년째 보고 있지 못한 중국에 있는 부모와 위챗으로 얘기하고 있다. 아니, 그녀는 작은 화면으로 케이팝 가수의 영상을 보면서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한국에 가 보겠노라 다짐하는 한류팬이다. 어쩌면 그녀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파티를 할 수 없어 생일에 혼자 있는 쓸쓸한 기분을 달래러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옥상에 올라왔는데 친구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를 확인하고 울컥하여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그녀라 할지라도 모두 2020년의 홍콩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다.


빈부격차 심하기로 유명한 홍콩에 살면서 매일 내가 선 곳을 확인한다.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실내에서 하얀 식탁보 위에 놓인 커피를 마시며 '아, 행복하다' 느끼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면 색칠이 다 벗겨진 회색 건물들에 알록달록 사람 사는 색을 더해주고 있는 것은 창문에 잔뜩 걸려 꿉꿉하게 말라 가고 있는 빨래들이다. 여기 이 커피잔 안 작은 세상을 홍콩이라고 믿을 것인지, 저기 저 무지개 같은 빨래에 밴 바람 냄새가 홍콩이라고 믿을 것인지...... 이방인은 매일 결정의 기로에 놓여 있다.


[1] https://www.hkphotocontest.com/

[2] 민수, 섬 (Islet) https://www.youtube.com/watch?v=DYUYjfdtK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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