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바다에 내리는 눈 Jun 16. 2021
미니멀 라이프를 하겠다고 있던 책도 버리고 새 책은 전자책으로만 사려고 하지만 그래도 실물 종이책을 사야 할 때가 있다. 전자책이 없거나 오래되어 절판된 책인데 꼭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다. 언젠가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귀에 꽂히는 책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도널드 맥컬로우는 <광야를 지나는 법>이라는 책에서 "크리스천도 우울증에 걸리고 실의에 빠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주기적으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영국의 명 설교자 찰스 스펄전은 우울증이 찾아올 때마다 불안감에 몇 주간이나 꼼짝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쉐렌 키에르케고르는 우울한 성격으로 평생을 고생했다고 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덜 우울하다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항상 자신감이 있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증을 '영혼의 감기'라고 표현합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분명 내 삶은 감사할 것이 넘치는데 왜 내 감정의 디폴드 모드는 '우울'로 세팅이 되어 있는지, 나는 이렇게도 욕심이 많고 나약한 존재인 것일까, 나 자신의 믿음에 회의가 드는 나날을 보내다가 이 책 이름을 들었을 때 '광야를 지나는 법이 있어? 그런 방법이 있다면 꼭 알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자명이 기억나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목사님께 연락해서 죄송하지만 저번 설교에서 언급하신 책과 작가 이름이 뭐였죠, 물어보기까지 해서 이름을 알아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책이 절판된 지 오래고 해외에서 사려니 원래 제목을 알아야 하는데 책 표지 어디에도 원제가 안 쓰여 있어서 몇 번의 검색 끝에 원제를 알아냈다. 원제는 엉뚱하게도 <아메리칸드림에서 깨어나기: 실망을 통해 성장하는 법> (Waking from the American Dream: Growing though your disappointments)이었다. 원제의 어디에도 광야라는 말은 없었다. 내가 광야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 광야를 빨리 지나가고 싶어서 이 책에 꽂힌 건데 원제에는 광야의 '광', 자도 없다니 약간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광야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삶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그 결과물로 따라오는 실망 때문이라는 걸까, 그것도 흥미로운 시선이구나' 싶어서 아마존 미국 헌 책방 판매자에게 딱 한 권이 남아 있는 것을 사서 약 두 달을 기다려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찾았던 책이 도착했는데 몇 달을 책장에 처박아 놓고 들여다보지 않았다. 수험서를 사기만 하고 풀지 않았는데 시험에 붙은 것 같이 행동하는 게으른 수험생처럼, 광야를 지나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을 소유하고 있으면 언제든 광야를 탈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안도감이 들었던 걸까. 나는 진짜로 광야를 지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갈급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말로는 벗어나고 싶다고 습관처럼 투덜거렸지만 어느새 '난 지금 광야에 있잖아 좀 내버려 둬'라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못한 핑계로 광야를 대는데 익숙해져 버린 사막 생명체가 나였다.
그렇게 잊고 있던 이 책을 얼마 전부터 천천히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저자가 어린 딸에게 항상 같은 동화책을 읽어 주었던 것을 회상하며 쓴 부분이었다.
한 기차가 기찻길을 따라 열심히 달리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산 너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선물을 가득 싣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기차가 서 버렸어요.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저 산 너머 사는 아이들이 기차에 실린 멋진 장난감과 맛있는 음식들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죠?
그때 번쩍번쩍 빛나는 멋진 기차가 옆을 지나갔어요. 하지만 그 기차는 자신이 너무 중요해서 고장 난 기차 따위는 돌아보지 않고 가 버렸어요.
좀 있으니 아주 크고 강한 화물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찻길로 들어섰어요. 하지만 그 기차는 무거운 화물들 때문에 바빴어요.
다음으로는 낡고 오래된 기차가 지나갔는데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어요. 낡은 기차는 이렇게만 말할 뿐이었어요. "나는 못해, 나는 못해, 나는 못해 (I can't, I can't, I can't)."
그때 작은 파란 기차가 즐겁게 다가왔어요. 파란 기차는 작고 경험이 별로 없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산 너머 마을에 가 본 적이 없었어요)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어요. 파란 기차는 장난감과 음식을 싣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 I think I can, I think I can, I think I can)" 그리고 정말로 작은 파란 기차는 해 냈어요. 오르락내리락 비탈길을 헤치며 골짜기에 있는 도시까지 달렸어요. 작은 파란 기차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 칙칙폭폭 달렸어요. "내가 해 낼 줄 알았어, 내가 해 낼 줄 알았어 (I thought I could, I thought I could)."
읽다 보니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었다. 엇, 이거 설마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책인가? 미국에 사는 동생이 조카가 읽지 않는 헌 책을 물려준 게 있는데 기차 덕후인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2년 넘게 읽어 주면서 이런 내용인지 몰랐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들이 내용엔 관심이 없고 그림만 보는지라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천천히 읽어 주면 싫증을 내서 그때그때 즉석에서 대충 그림에 맞게, 아들이 아는 어휘 위주로 각색해서 읽어 주다 보니 한 번도 내용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던 거다. 어린 기차의 이타심과 도전 정신을 칭송하는 내용이었을 줄이야.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의 트위스트가 발생한다. 작은 파란 기차 이야기 교훈적이고 참 좋네, 생각하고 있는데 도널드 맥컬로우는 그다음 단락에서 고정관념을 깨부쉈다. 바로 이 '할 수 있어' 정신이 미국을 망쳐 버렸다고.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은 'I think I can'에서 비롯된다고. 아니, 작가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작은 파란 기차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할 수 있어' 정신이 망조라니......
아마도 무모한 욕심과 도전 정신을 분간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좇으면서 만족을 모른 채 질주하다가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빠져 버리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뒤에 이어지리라 추론해 보지만 아직 '광야를 지나는 법'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일단은 무심하게 읽어 주던 동화책의 진짜 내용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런 게 헌 책을 읽는 맛인가?
새 책, 디자인이 멋진 책, 요즘 시류에 맞는 책, 전자책. 세상에 책이야 많지만 파란 기차 책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준 것은 또 다른 헌 책이었다. 알칸소 주의 한 교회 도서관에서 정리한 낡은 책이 홍콩에 날아와 위스콘신 주에서 온 파란 기차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춰 보게 만들었다. 우리 인간은 갓 태어나지 않은 한 모두가 매일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헌 책이다. 헌 책이 헌 책을 만나 생명력을 얻어가는 그 아름다운 조우의 순간이 오늘 누군가를 만날 때 피어오르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