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너를 안고 응급실로 향하는 길

[19살 노견 '방구' 이야기]

by 두부두애

"신경 발작 증세로는 아직까지 보긴 어려울 것 같은데.."
"네...? 네? 헉헉... 선생님 죄송한데...헉헉... 지금 차로 뛰어가고 있어서, 잘 안 들립니다!!"
"아!!! 지금 내원하시는 거죠? 오시면 설명드릴게요!!"
"헉헉... 네네!!! 감사합니다!!"
뚝.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는데 스마트폰이 비에 젖어 잘 안 눌려 2~3번 급하게 눌러 전화를 끊었다.


삐삑, 차 문이 열리고 차 키를 재빨리 꽂아 돌린다. 부르릉. 엔진 소리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출발한다. 조금 전까지 맑았던 밤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주차장까지 뛰어가는 동안 몸이 비에 젖었다. '두둑, 두둑' 앞유리에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와 힘에 겨워 낑낑되며 울려 퍼지는 '방구'의 울음소리가 귀를 매섭게 때린다. 아내의 품 안에서도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아내의 눈가가 촉촉하다. 방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는 아픔에 울부짖는 방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잘못되면 어쩌지' 아내는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애써 침착한다. 방구가 괜찮을 거라는 말과 함께 소리를 내어 아내를 위로한다. 그리고 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아내의 손을 잡아준다.


밤 12시가 넘어 도로에는 차가 없어 한적하다. 간혹 멀리서 보이는 차량 전조등만 눈에 들어올 뿐, 눈 앞에는 계속 내리는 비와 어두움뿐이다. 나도 방구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깐 스치듯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아내도, 그리고 방구도 신경 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딸깍, 딸깍' 우회전 깜빡이 신호를 넣고 24시 동물병원 응급센터 주차장에 진입했다. 차량이 거의 멈추기 직전 와이프는 먼저 내려 응급실로 달려간다. 부리나케 뛰어간다는 표현이 이런 모습이겠거니 싶다. 아기가 아플 때 응급실로 뛰어오는 부모들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 모습과 흡사했다. 비록 우리 부부에게 아기는 아직 없지만 19년 동안 아내가 키워온 방구는 자식만큼이나 소중할 것이다.


응급 진료를 기다리며 방구는 병원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더 세게 울기 시작했다. 같이 진료를 기다리던 다른 강아지들도 쳐다볼 정도였다. "괜찮아 방구야~ 괜찮아~" 아내는 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방구는 응급진료에 들어간다. 아내의 품을 떠나 수의사에게 맡겨진 방구를 바라보며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른다. 처치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방구의 울음소리에 속상한 것이다.


병원에 오기 전, 방구가 집에서 울기 시작할 때, 또 앞이 보이지 않아 잘 걷지 못할 때, 울음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을 때,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아내는 초조한 마음으로 방구를 지켜보았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지만, 아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 그 자체가 방구에게는 스트레스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내의 모습에 나 역시 너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방구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방구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으로 울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너무 속상했다. 방구에게 최선이 무엇일까, 이 노견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최선일까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해 방구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너무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방구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는 아내의 눈이 너무 슬퍼 보였고, 나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슬펐다.


자주 갔었던 병원에 주치의 선생님이 계시진 않았지만, 당직 의사에게 현재의 방구 상태를 설명하고 데려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담 끝에 방구의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 같아 우리는 끝끝내 병원행을 택한 것이었다.


입원실에서 치료 받고 있는 방구, 지금 다시 봐도 속상하다

"방구 보호자님 들어가실게요"
오랜 시간 끝에 간호사는 진료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당직 수의사는 방구의 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수액과 진정제를 투입할 예정이고 뇌압이 높아지면 감압치료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19세인 방구의 나이를 감안해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어... 응급처치 중에 자.. 잘못될... 수도 있는데요... 사람 나이로 따지면 120살이 넘어가는 고령 어른이라, 어느 정도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그 순간 당직 수의사의 말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도 조금은 두려운 모양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수없이 지나며 마주쳐야 했을 생명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때론 죽음들. 그는 그게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어느 누가 그런 것들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고요. 다만 가능성에 대해 보호자분께 설명드린 것입니다"
당직 의사는 안경을 계속 고쳐만지며 이야기한다. '가능성'에 대해 얘기할 때와 달리 다시 원래 말투로 돌아왔다. 수의사는 피곤에 지쳐있는 모습이다. 의사 가운에 붙어있는 각양각색의 강아지 털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사투의 현장에서 애쓰고 있는지 짐작 가는 모습이었다.

방구가 입원해있는 입원실에 들어갔다. 반려견 입원실을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는데, 비교적 공간이 여유로운 네모난 유리 상자에 방구가 담요를 덮고 누워있었으며 외부에는 수액, 각종 치료제 등이 투입이 가능하게끔 여러 주변 기기가 붙어 있었다. 크기로 따지면 비교적 사이즈가 큰 수족관이라고 해야 할까? 그곳에는 방구 외에도 중병을 앓고 있는 강아지들이 여럿 있었으며 모두 힘이 부쳐 보여 안쓰러웠다.


"그래서 정신은 깨어있는 건가요?" 아내는 수의사에게 물었다. 대답은 신통치가 않았다. 이래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저래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가장 유력한 것은 '정신은 반마취상태이나 몸이 깨어있어 움직이려 하다 보니, 그 괴리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에구 이 조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고,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이 나온다. '선생님 여기 좀 봐주시겠어요?' 옆에서 간호사가 수의사를 부른다. 이 시간대 응급실에 수의사가 한 명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른 강아지를 처치하러 수의사는 입원실을 나갔다. 입원실을 나갔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사람 발자국으로 다섯 발자국 정도 뗀 것이다. 아내는 진정제를 맞고 잠들어있는 '방구'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울먹인다.


아내와 나는 방구의 머리와 몸을 한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병원을 나왔다. 속상해하는 와이프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는데, 와이프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흑흑' 참았던 울음이 터진 것이다. 나는 운전석에서 보조석으로 몸을 움직여 와이프를 꼬옥 안아주었다.

'고마워' 집에 도착해 급하게 나가느라 엉망진창이 된 집을 정리하다가 와이프가 내게 건넨 말이다. '으응..?' 새삼스럽게... 그래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와이프는 방구가 소리 지르며 아파하기 시작하면서 이성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진짜 정신이 완전 나가 있었어' 와이프는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는지 방구 생각이 계속 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때가 새벽 2시쯤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내일 재택근무라 조금 더 자도 되지만 와이프는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 아내가 혹여라도 잠을 설칠까 봐 걱정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마음을 다독여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졸고 있었다. 아내는 괜찮으니 나보고 먼저 자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이 밤은 지나갔다.


추후에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사실 나는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그리 깊지 않다는 걸 와이프를 보며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요 며칠간 처가댁에서 아내가 19년 가까이 키우던 강아지 '방구'와 '푸돌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정말 당황했다. 모든 환경이 강아지 중심으로 변하게 되니 인간 몸뚱이를 지니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방구 면회 중에 찍은 사진, 아내의 무릎에서 곤히 자고 있다.

그래서 와이프가 나에게 미안해하며 고마워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 불편하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오히려 와이프가 처가댁에 번거롭게 들락날락할 일 없이 '방구'와 '푸돌이'를 돌볼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하는 것을 지켜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후에는 억지로 돌봐주었던 방구와 푸돌이를 좋아하게 된다.

아내는 퇴근하면 바로 병원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눈을 떴더니 와이프는 아침 6시부터 차를 끌고 병원에 가서 '방구' 면회를 하고 출근했다. 밤새 잠 한숨을 못 잤을 거 같아 속상하다. 나도 근무가 끝나면 병원으로 가서 방구 면회를 같이 해야겠다. 그 조그마한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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