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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an 01. 2024

서일페는 사랑이었다.

다꾸 하는 딸, 작가 하는 딸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부모

"엄마, 우리 크리스마스에 서일페 가면 안 되나?"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보내야지."

"우리 크리스마스에 뭐 해?"

"아직 계획한 건 없지만 뭐 하지 않을까? 놀러 갈 수도 있고. 근데 서일페 그게 뭔데?"

"서. 울. 일. 러. 스. 트. 레. 이. 션. 페. 어"



묻긴 했지만 한 손으론 이미 검색 중이다. 얼핏 보니 일러스트 작가님들이 모인 박람회란다. 박람회라고 하면 부모가 되면 무조건 가봐야 하는 줄 알았던 '육아 박람회' 말고는 다른 박람회는 언뜻 기억나지 않는다. 임신해서 배가 나온 채로 빽빽하게 들어찬 부스를 돌며 뭐라도 사야 할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뭘 사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과 사은품으로 많은 손수건을 받았던 기억으로 남은 곳이 박람회다. 참, 그곳에서 태아보험도 가입하고 나왔다.


개요: 박람회
기간: 2023.12.21. (목) ~ 2023.12.24. (일)
장소: 코엑스 B홀 & D1홀


기회가 될 때마다 서일페 이야기를 꺼내는 딸에게 생각해 보겠다며 시간을 벌었지만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사전 등록기간에만 입장권을 할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미리 사놨다가 못 가면 돈만 날리는 거 아닐까 고민하다 결국 사전 등록기간을 놓쳤다. 서일페 시작을 하루 앞두고서야 가족회의를 거쳐 토요일에 서일페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남편도 크리스마스 연휴니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서일페가 육아박람회 같은 건데 부스가 다 스티커샵일 거라는 나의 설명에 깜짝 놀라더니 발을 슬금슬금 뺐다. 아이도 아빠는 얼른 집에 가자고 할 것 같다며 엄마랑 단둘이 다녀오겠다고 했다.


다꾸에 진심이 되어버린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서일페 가기'가 되었다. 아이는 전 날부터 바쁘다. 서일페에 참여하는 작가님 리스트와 배치도를 보며 동선을 짜는가 하면 몇 개의 블로그를 읽더니 출발시간까지 정해버린다.


"엄마 6시 50분에는 일어나야 해."

"너무 빠르지 않아? 늦잠 자고 싶은데. 집에서 9시에 나가자."

"안 돼. 10시에 입장인데 그럼 너무 늦어. 8시에는 나가야 해."

"알겠어. 8시에 집에서 출발이야. 간단하게 아침 먹어야 하니까 너도 준비 빨리 해."


아이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부모 주도의 여행을 갈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시간도 이르니 괜히 가기 싫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다음날 아이의 들뜬 표정을 보니 덩달아 설레며 잠이 깬다. 평소에 쓰지도 않던 지폐도 종류별로 가져가고 아이 전용 교통카드까지 챙겨서 집을 나선다. 광역 버스를 타고 강남에 가서 전철로 봉은사역에 내려 한 십여 년 만에 오는 코엑스를 보니 이 상황이 신기하다. 20대 때는 자주 왔던 곳인데 이제는 아이의 손을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이런 생각도 잠시 같이 내린 무리의 인파가 다 서일페를 간다는 착각에 빠져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도착하려고 걷는 속도를 높였다. 40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딸만 어린이 일 줄 알았는데 곳곳에 아이들이 꽤 보인다. 한쪽에는 딸과 함께 온 아빠도 보인다. 서일페 초보 관람객에게는 그 아빠는 딸바보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했다.


약 1시간의 대기 끝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일페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엄마, 우린 3층으로 가야 해."


몇 번 와본 것처럼 엄마를 이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대던 모녀가 점점 죽이 맞는다. 아이는 거리를 두며 구경하던 부스에 조금 더 발을 내딛고, 그 뒤에서 엄마는 인스타 팔로우를 맺는다. 그럼 팔로우 이벤트 작은 스티커를 주는데 아이가 직접 받는다. 육아 박람회에 손수건이 있다면 서일페에는 스티커가 있다. 그러다 아이가  홀린 듯 한 부스로 뛰어간다.


"엄마! 지윰!"


제일 가고 싶었던 작가의 부스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를 고른다. 방학에 여행 가서도 다꾸를 해야 하는데 수영과 스노클링 스티커가 없다며 한탄하던 아이가 매의 눈으로 고른다. 본인에게 필요한 내용이나 종류, 분위기를 따져가며 용돈 안에서 사려는 모습이 또 귀엽다. 정말 고슴도치 엄마가 아닐 수 없다. 부스를 지날 때마다 아이는 다 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한숨과 좋아하는 것을 샀다는 기쁨이 뒤섞인다. 꽝 없는 뽑기라지만 매번 5등만 걸리니 낙심도 한다. 간간이 들리는 1,2,3등 환호성에 부러움 가득한 시선도 보낸다.


코너 끝 부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딸이 20년 동안 그림을 그렸어요. 인스타 팔로우하시면 스티커 드립니다."

색감이 따뜻한 귀여운 그림체를 가진 작가님은 수줍게 계신데 연세가 있어 보이는 작가님의 아버지는 열정적이시다. 자랑스러운 딸의 작품이 잘 알려지도록 홍보에 열심이시다. 딸이 좋아하는 곳에 손잡고 온 나나 딸이 차린 부스에 도와주러 나오신 아버님이나 부모는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은 지원해주고 싶고 힘들어하면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게 부모 아닐까. 아침에 봤던 딸과 함께 온 아빠까지 생각나며 서일페에서 예상치 못한 부모의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순간이지만 괜히 코가 찡하다. 아마 그 작가님은 잘 되실 거다. 이렇게 멋진 아버지가 딸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시니 말이다.


자제하느라 힘들었다는 딸과 전시장을 나온다. 점심 먹고 2차전으로 재입장까지 하며 서일페를 제대로 즐겼다 싶다.


"딸, 오늘 좋은 경험이었다. 그렇지?"

"엄마, 꼭 다음에 안 올 것처럼 이야기한다. 다음에 또 올 거야."

"응? 이게 마지막 아니었어?"

"난 이제 계속 올 거야."

"그럼 아빠랑 와."

"아빠랑은 집에서 같이 다꾸할거야."


다 계획이 있는 딸은 정말 아빠와 다꾸를 하며 서일페와 크리스마스를 마무리한다. 


서일페 가기도 사랑이고, 함께 다꾸하기도 사랑이다. 딸아 알지?


딸 작품                                                           아빠 작품




서일페 TIP!


1. 환불은 전날까지 가능하니 사전 등록 기간에 예매하면 입장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단, 규정이 바뀔 수 있으니 확인은 필수)

2. 오픈런이 좋다. 오픈런을 한다 해도 대기 시간이 있지만 오후보다는 사람이 적어 쾌적하게 구경할 수 있다.

3. 신속한 구매가 좋다면 현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1000~2000원짜리 뽑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사람이 많을 때 빠르게 구매 후 이동하고 싶다면 현금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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