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진 속에서 똑같아 보이는 사진, 몇 년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진, 지워도 모를 사진들을 몇 번의 클릭과 드래그로 싹 지우고 있는 중이었다. 핸드폰 사진이 자동으로 업로드되던 클라우드 서버가 용량이 꽉 찼으니 이용권을 추가로 구매하라는 알림을 며칠째 보낸 탓이다. 10년 전쯤 130GB라는 어마어마한 용량을 보며 이게 언제 찰까 싶었는데 그때가 이때인 것이다. 이용권을 구입할 생각이 없는 소비자는 사진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청소를 할 때 사진첩은 절대 열어보지 말라던 명언은 기억에서 지우고 진짜로 지우려고 들어갔던 사진첩은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재미있는 게 샘솟는 화수분이 되고 말았다. 신혼여행 사진, 아이의 초음파 사진, 일거수일투족을 찍어놓았던 아기 때 사진을 보자니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빠르게 썸네일 같은 사진을 보며 인정사정없이 불필요한 사진을 지워나갔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아까 호들갑을 떨었던 2010년의 여행일기다. 무려 14년 전 호주에 여행 갔을 때도 일기를 썼고, 그것을 사진 찍어둔 것이 오늘에서야 발견되어 14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가 예전부터 이렇게 기록하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찬스가 온 것이다. 엄마의 일기장이라니 아이가 한 걸음에 달려와 화면 속에 남겨진 사진을 바라본다.
"엄마는 좋겠다. 글씨가 예뻐서."
동글동글한 글씨가 귀여워 보인다며 칭찬을 해주는 딸을 보니 글씨를 예쁘게 써놔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함께 읽다 보니 귀퉁이의 작은 스티커가 눈에 띈다.
"엄마도 그때 일기장에 스티커 붙였네!"
손톱만 한 스티커에 기세가 등등해져 엄마는 10여 년 전부터 다꾸를 시작했다며 딸과 다꾸의 시초를 논해본다. 검은색 글이 빼곡한 일기장 속에서 작은 스티커로 기분을 표현하고 알록달록하게 소박한 재미를 주려고 스티커를 붙였을 것이다. 다이어리 사은품이었던 스티커 속에서 어떤 그림을 고를까 고민도 했었다. 여행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잠자기 전 게스트하우스 침대 위에서 일기를 썼던 모습도기억났다. 더 챙겨 온 것도 없이 제일 좋아했던펜과 형광펜으로 그날을 종이에 꾹꾹 남겼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몇 장 안 되는 기록들 덕에 잊고 있었던 호주의 기억이 차츰 선명해진다.
역시나 기록하길 잘했다. 다시금 나의 기록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브런치에 꾹꾹 눌러 담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사진첩 정리도 자주자주 하기로 다짐해 본다. 겨우 줄인 10GB에 새로운 기록을 잘 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