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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Sep 05. 2024

난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됐다.

미안하다. 넌 말 할 준비가 됐지만

이전 회차: [숨 막히는 면접장, 나는 촌놈이네] - https://brunch.co.kr/@treekim/17


저녁 늦은 시간, 대구 강정보




2021년 7월 10일 저녁 8시 (토)  -  대구광역시 달서구 강정보


"..."

"..."

"...음"

"...흠"



강둑에 쪼그리고 앉아 침묵을 지킨 지 30분째.

명훈이 슬며시 입을 연다.


''

".. 아, 삼성 또 졌더라? 가을 야구 하겠나"

".. 삼성이 요즘 못하지"

''


10년 지기 동네 친구 명훈이.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건실한 기업에 입사했다.


보통 오래된 친구 놈과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가 않다.

명훈이가 그런 놈인데, 적막이 이렇게 어색하다.


''

"요즘 일은 할 만하나?"

"좀 익숙해졌다, 아! 내일 대리님이랑 야구 보는데,,,"

''


신나게 말을 이어가다 멈칫하더니, 말끝을 흐린다.


''

".. 어차피 또 지는 게임이겠지? 어우 습하네 날씨"

“.. 음”

''


강 위에 뜬 달빛에 얼굴이 비친다.

입꼬리가 지하 4층까지 내려간. 패잔병의 얼굴이 강물에 떠있다.


아차. 분위기를 바꾸려 할 말을 쥐어짜 내보지만,

이 놈의 머릿속에 밝은 단어가 남아있질 않다.


뭐라도 운을 때어보려 입술을 움찔움찔하다가,

멈칫-하고는 이내 턱을 괴어버리고 만다.


다시 침묵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친구끼린 뚫린 입으로 못 할 말이 없다는데,

여기 우리네 입에선 도통 말이 없다.


들을 준비가 안 된 사람과 말 할 준비가 된 사람.

하고 싶은 얘기와 듣고 싶은 얘기가 다르다.


둘 다 그걸 아는지, 조용히 강물을 바라보기만 한다.


''

"... 일어날까?"

"그라자"

''


저녁 8시, 스물여섯 청춘에게 그리 늦지도 않은 시간.

솔솔 풍겨오는 고깃집 냄새에 '밥 먹자'라 할 법도 하다만, 우리는 묵묵히 식당 앞을 지나쳐 걸어간다.


"

"먼저 들어간데이 ~ 조심히 가고"

"


먼저 집 앞에 도착한 명훈이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쓴웃음을 지어 보이던 찰나, 벨소리가 울린다


"

"여보세요?"

"나무야 잘 지내나! 내 기훈이다"

''


장교단 동기였던 기훈이의 연락이다.

힘든 훈련소에서 같이 고생한 동향 친구,

동고동락했던 기억에 반가움이 밀려온다.


"

"오랜만이다! 임관하고는 처음 연락하네, 대구가?"

"요번달부터 서울 올라왔다. 잘 지내나?"

".. 뭐 ~ 그냥 지내고 있지! .."


..


"... 어 그래그래! 내 쭉 서울에 있다, 오면 밥 먹자"

".. 어어 좋지! 조만간 올라가면 전화할게"

..

"


너는 잘 지내고 있냐.라는 말을 못 했다.

나는 이 흔한 안부를 왜 물어봐주지 못했나.


참 속이 좁아터진 나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네 세상을 바라볼 용기가 없다.


---


어느덧 집이 보인다.

휘몰아친 속을 갈무리하다보니, 어느새 집 앞이다.


잠깐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눈물이 핑 돈다.


''

"... 하, 참.. 허허"

''


내 모습이 찌질하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띠링'


핸드폰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누군진 모르겠다만..

지금은 너와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

안녕하세요, 00 그룹 채용 담당자입니다.

축하합니다! 00그룹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김나무 님은 앞으로 1달간 인턴으로 근무하며,
전환 평가를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됩니다.
..
첫 출근일과, 구비해야 할 서류를 알려드립니다.

- 2021년 7월 26일 (월), 09시 00분
- 졸업 증명서 / 성적 증명서 / 주민 등록증...

자세한 내용은 메일을 통해.. //

""



"

"... 어?"

"



붙었다.


족발집 얘기로 면접을 망쳐버린 그 기업에서

나에게 합격 문자를 보냈다.


감격과 함께 의문이 몰려온다.

어떻게 합격을 한 거지? 누가 장난치나?


다만 입꼬리가 살살 당겨온다.

이미 벤치에서 엉덩이는 떨어졌다.



---



"

"여보세요?"

..

"어 기훈아, 다음 주에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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