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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Sep 19. 2024

봉천동 썬플라워

모르겠고 일단 올라간다.

이전 회차: [난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됐다] - https://brunch.co.kr/@treekim/18



봉천동 어느 골목. (글쓴이가 실제로 거주했었다)



2021년 7월 24일 오전 11시 (토)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봉천역 2번 출구,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를 오물거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한 손에는 캐리어, 한 손에는 스마트폰.

땀을 뻘뻘 흘리며 두리번대는 20대 남녀들.


정강이에 툭- 하고 가져온 캐리어가 치인다.


그렇다. 난 오늘 서울 사람이 되러 왔다.






다음 주 출근을 앞두고, 잠깐 살 집을 구하러

이곳 서울, 관악구로 올라왔다.


이곳은 관악구의 봉천동. 봉천역이다.

대한민국 2030 직장인의 메카, 사회 초년생의 성지.


뒤로는 관악산과 앞으로는 신림천이 흐르는,

서울대를 중앙에 낀 어쩌면 노른자땅.

아직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빌라가 많다.


강남과 접근성이 좋은 2호선, 대학로를 끼고 발달한 요식업.

수많은 사회 초년생이 터를 잡는 곳이 바로 이곳. 관악구다.


‘’

“하~ 뭐가 이래 비싸노“

‘’


롯데리아에 들어오기 전까지, 5군데의 부동산에 다녀온 참이다.


1000/50, 500/60. 침대 깔고 짐을 풀면 공간이 없는 조그만 원룸의 한 달 월세.

100/30에 원룸을 구하고, 500/50으로 신축 오피스텔 복층을 구하는 대구 가격표가

익숙한 나에게 이 가격과 컨디션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명 관악구가 가장 저렴하다 그랬는데,

강남은 월세를 100씩 낸 다는 건가? 숨이 턱 막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참 부러운 순간이다.

이 놈의 서울에 연고가 없으니, 인턴 두어 달이 참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생전 부동산 계약이 처음인 이십 대 중반 초짜.

이 머저리는 출근 이틀 전에 잠깐 살 집을 구하겠다고 호기롭게 올라왔다.

준비 없이 서울을 올라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심지어 이불이랑 옷도 캐리어에 넣어왔다)


한 숨을 푹 쉬며 롯데리아 밖으로 나온다.

몇 군데만 더 돌아보고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2년짜리 계약으로

원룸을 구해야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


봉천동 골목을 걷다 보니, 한쪽에 선 모텔이 눈에 들어왔다.

[ 썬플라워 모텔 ]     * 가명입니다.


''

"모텔은 단기 계약받아주려나..?"

''


더 이상 선택지는 없다. 온몸이 땀에 절여져 있고, 눈앞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12시 백주대낮에, 무지개색 주차장 가림막을 걷어내며 모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혹시, 2달 정도 장기 숙박 가능한가요?"

"2 달이요? 예,, 뭐 가능은 하죠"

"혹시 얼마인가요?"

"한 달에.. 80만 원으로 방 하나 내어드릴 순 있겠네요"

".... 60만 원은 안 될까요?"

"에이, 안 되죠. 여기 하루 숙박이 5만 원인데.."

''


사실 60만 원도 심히 부담스러운 돈이다. 하지만


''

"정말 어떻게 안 될까요? 잠깐 일하러 대구에서 왔는데, 사정이 마땅찮아요"

"... 음"

''


모텔의 사장님으로 보이는, 흰 나시를 입은 중년 남성이

뚫린 카운터 구멍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내 행색을 훑어본다.


''

"... 두 달이죠? 조용히 있다가 가셔야 합니다"

"... 조용히요..?   아아 네네!  물론이죠, 아 정말 감사합니다"

''


두 달에 보증금 없이 120만 원.

한여름 무더위에 머리가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던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두 달 치 방값을 결제했다.


사장님은 내 주민등록증을 스캔하시고는

301호 키를 건네주었다.


''

"수건은 이틀에 한 번씩 갈아드릴게요, 귀중품은 저희가 변상 안 해요."

"네! 뭐.. 귀중품 같은 거 없어요  하하하"

"... 예, 올라가셔서 쉬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웃음이 실실 삐져나온다.

모텔이고 자시고 간에, 드디어 머물 곳을 구했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오니, 기다란 복도가 뻗어있다.

빨간색 카펫과 껌뻑이는 주광색 조명, 들어오지 않는 햇빛.


실실 나오던 웃음이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301호 문을 열고 들어오니, 침대 하나와 화장대, 유리문으로 된 화장실이 보인다.

창문은 없다.


''

"... 오케이"

''



2021년 7월 24일.  내 첫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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