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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Sep 23. 2024

"니 서울놈 다 됐네"

'만두 좀 데파주세요'

이전 회차: [봉천동 썬플라워] - https://brunch.co.kr/@treekim/19


출처 - tvn (응답하라 1988)



2021년 7월 26일 오전 7시(월)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빠빠빠빰~ 빠라바라밤~!’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귀를 때린다.

살며시 눈을 뜬 풍경은 아주 새까만 밤이다.


“어으..알람이 벌써 울리노..”


실눈을 뜨고 핸드폰을 확인하며 알람을 끄려는 순간,

비몽사몽 한 정신이 5초 정도의 텀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 오전 7시? 왜 지금 알람이 울리지?

아. 오늘 나 첫 출근이구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바깥이 깜깜하지?

아. 여기 모텔이구나.


눈을 비비며 침대에 걸터앉고서 전등을 켠다. 웃음이 픽- 하고 새어 나온다.

그래, 오늘은 설레는 첫 출근일이다.

.. 비록 시작이 모텔이지만.


내리 30분을 뽀득뽀득 씻고는, 침대 옆에 펼쳐둔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든다.

혹 모텔의 묘한 냄새가 섞이진 않았을지 냄새를 킁킁 맡고는 머리를 쑥 집어넣는다.


긴장되고 설레는 기분, 비록 인턴이지만 나도 ‘서울의 직장인’이 된 것이지 않은가?

그것도, 어른들한테 말하면 ‘아이고! 진짜가!’ 소리가 나오는 이름난 기업인데.

얼른 사원증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2호선 봉천역


네이버 지도를 켜놓고 지하철을 기다린다.

멀리서 내가 타야 할 지하철이 들어오는데, 안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진다.

지하철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소쿠리에 담아 시장에 내놓은 콩나물처럼,

수많은 콩나물 대가리가 흔들거리며 지하철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지하철은 못 타겠구나.. 생각하던 찰나,

문이 열리자마자 몸집도 작은 여성분이 꽉 들어찬 콩나물 소쿠리에 몸을 비집어 넣는다.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다들 입구를 어깨로 밀며 지하철에 탑승한다.


“어.. 다치..다치겠는데..”


지하철 문은 빠르게 닫혔고, 이내 출발해 버렸다.

사람이 유난히 많은 차였구나, 생각하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린다.


저 멀리 다음 지하철이 다가왔고, 창문 안을 확인하고는 가방을 앞으로 고쳐 맨다.

그래. 이게 평균이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들어갈게요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어깨에 가슴팍이 밀리면서도

무표정의 사람들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땀냄새와 향수 냄새에 취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지하철은 이내 강남역에 도착헀다.

개찰구로 올라가는 계단은 손 하나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빼곡하게 차있다.


누구 하나 넘어지면 큰일 나겠는데, 싶은 마음에

이 행렬이 끝날 때까지 잠시 서서 기다리는 찰나.

다음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화들짝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티비에서 보던 거랑 똑같구나.."


얼마 전 뉴스에서 '출근길 지하철 포화'에 대한 보도를 스치듯 봤었는데

'이게 진짜구나, 신기하다' 란 생각과 함께 - 서울에 살면 이 광경을 매일 봐야 할 거란

생각에 불현듯 마음이 착잡해졌다.






"다 오셨나요? 하나, 둘.. 아 잠시 인원 확인 좀 할게요. 셋, 넷..."


사옥에 들어오니, 멀끔한 인사팀 직원이 인턴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멀끔하고 똑똑해 보이는 입사 동기들이 보인다.

지하철에서 느낀 회색 감정이, 설레는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 네. 다 오셨네요, 여러분. 전환형 인턴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한 달 반동안 4인 1조 팀프로젝트를 진행할 거예요.

 프로젝트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평가 요소가 됩니다."



공기가 사뭇 달라진다.

다들 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더니 - 뭘 적기 시작한다.

'어. 난 없는데... 가져오라고 했었나? 하.. 못 봤는데..'

나만 수첩이 없다. 젠장. 속으로 쓴 물을 삼킨다.


"1조 발표하겠습니다. 김나무, 이광해, 조현준, 이지민 - 일어나 주세요"


눈이 동그랗게 커진 세 사람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 분은 1조입니다. 강의장 뒤편에 1조 책상으로 이동해 주세요"


커다란 강의실 뒤편에는 10개의 책상이 정렬되어 있었고,

각 책상에는 1조부터 10조까지 적힌 명패가 올라가 있었다.



''

"... 안녕하세요, 이광해입니다"


말끔하게 생긴 조원이 첫 말문을 땠다.


(광해) "다들 자기소개 한 번씩 할까요? 저는 스물아홉이고 - INTJ에요. 수원 살아요"

(현준) "아, 저는 스물일곱이고 - ENFP에요. 노원구에 살아요"

(지민) "저는 스물여섯이고, INFP에요. 금천구에 살아요"


다들 나이와 MBTI, 사는 지역을 말해준다.

또래 남녀들과 살갑게 인사를 하는 이 상황이 긴장되고, 설레는 참이다.


"저는 스물여섯이고, INTP에요... 아 전 대구에서 왔어요"

(광해) ".. 대구요? 와 진짜 멀리서 오셨네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입을 다물 수는 없으니 -


"... 덥죠, 아스팔트에서 계란 구워 먹습니다 하하"

(광해) ".. 아~ 하하하 진짜 덥나 보네요... 네"

(지민, 현준) "..."

''



아스팔트에 계란 구워 먹는다니, 김나무 이 미친놈.


그렇게 첫째 날 OT는 간단하게 끝났고,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도 전달받았다.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은 느낌과, '아스팔트에 계란'이라는 덜 떨어진 단어 선택에

미친 듯이 후회를 하며 지하철을 탄다.






봉천역에 내려 썬플라워 모텔로 돌아가는 길, 무성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

"여보세요?"

"어, 뭐하노 나무야"

"방금 퇴근했다 ~ 아 진짜 피곤하네"

"아 오늘 출근이네, 어떻드노"


넓고 사람 많은 서울에 혼자인 느낌을 받다가, 고향 친구 전화에 할 말이 마구 생각난다.


"와~ 애들 억수로 똑똑하드라, 서울대도 진짜 많데이"

"킥킥킥, 니는 왜 거있노"

"나도 모르겠다~ 야 근데 지하철 장난 아니다. 다 낑겨있데이. 클럽이다 클럽"

"진짜 그 정도가?"

"그래 임마 ~ 대구 지하철에서는 상상도 몬한다. 바로 뉴스다 뉴스"

"그렇다 카데, 애들 성격은? 다 깍쟁이아이가"

"말도 마라, 친구 할 놈 하나도 없데이. 딱. 지들 것만 딱딱. 재미도 없고~

 아. 근데 강남에 회사 진짜 많데이,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인 천지다

 사원증 메고 빌딩에서 우루루 퇴근하고 다들......  //"


말문이 터지고, 새로운 서울 풍경을 좋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하고픈 얘기에 과장을 섞어 무성이에게 전달한다.


"... 이야~ 강남은 강남인갑네"

"그래, 무성아 니도 빨리 올라온나. 신기한 거 많네"

"... 가야지 ~ 취업이 생각보다 어렵긴 하다. 참 니 대단하데이"

"대단하기는, 취업 하나도 안 어렵다 임마~ 겁먹지 마라, 다 한다!"

"..... 그래, 할 수야 있겠지"


순간, 말실수를 한 것 같아 멈칫한다.


".. 니 완전히 서울 놈 다 돼뿠네"

".. 어? 왜"

"강남에서 일도 하고, 진짜 서울 사람이네. 근데~ 깍쟁이는 하지마래이"

"에이~ 깍쟁이는 무슨. 피곤해서 그렇게 몬산다."

"킥킥.  그래, 고생했다. 나중에 또 전화하자"

"그래 ~ 빠이팅하고!"

''



전화를 하다 보니, 모텔 입구에 도착했다.

고향 친구와 전화를 했는데, 어딘가 찜찜한 느낌.

들떠서 말실수를 해버린 듯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마음 한 켠 어딘가 헛헛해진다.


사실 첫날 퇴근 후, 강남에서 동기들과 술도 한 잔 하고

화려한 강남의 밤거리를 걷게 될 줄 알았다.


다만, 어느새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 위에 누웠다.


모텔 천장에 꽃무늬 벽지와 백열등에 눈이 아파온다.

잠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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