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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Oct 04. 2024

강남 회식

“내도 강남에서 회식 해봤데이”

이전 회차: ["서울 깍쟁이"] - https://brunch.co.kr/@treekim/21


밤 11시


2021년 8월 6일 오후 5시 30분 (금) - 서울특별시 역삼동


“나무님, 회 좋아하세요?”


퇴근 30분 전, 조장 광해가 회식 장소를 찾아뒀는지

메뉴를 물어보며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오늘은 조원들과 강남역 근처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다.






(출처) 디지털 강남 문화 대전


- 강남


아주 어릴 때 이런 말이 있었다.

‘강남은 땅만 밟아도 돈 내야 한다’


부끄럽지만, 성인이 되고 서울 친구를 만들기 전까지는

정말 강남땅을 밟으면 돈을 내야 하는 줄 알았다.


2호선과 신분당선, 위로는 9호선과 3호선이 다니는 좋은 접근성.

수많은 기업이 모여 - 각지의 인재가 이곳으로 모인다.


그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와, ‘강남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만든 지역의 후광.

돈이 쌓이는 곳에 몰려든 수많은 음식점과 유흥가, 그리고 투자사들.


이곳은 대한민국 경제의 클러스터.  강남이다.






서둘러 짐을 챙기며 사무실을 나갈 준비를 한다.

인턴을 평가하는 건 인사팀과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보니,

기존 직원들은 인턴을 터치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도, 항상 인사는 한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한주 고생하셨습니다”

“어어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사무실 한 켠 빈 책상을 차지하고 앉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자료를 만드는 인턴들에게 초콜릿을 사주시는 분이 있다.


유통 사업팀의 송기영 과장님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사무실 사람 중, 유일하게 파티션 옆으로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는 착한 사람.


아무것도 모르던 인턴 삐약이들은

뻣뻣했던 표정과 자세에 어느 정도 여유가 들었다.

그래도 2주라는 시간이 꽤나 밀도 있게 흘렀나 보다.



광해가 예약한 횟집으로 걸어가던 중, 문득 설레는 기분이 차오른다.

인턴 동기들이지만, 어떻게 보면 '직장 사람들'이지 않은가.

퇴근하고 강남에서 술 마시는 직장인들 - 을 부러워하던 예전에 내가 떠오른다.


".. 오늘 술도 마시나요?"

살짝 기대를 품고 광해에게 질문을 한다.

"당연하죠! 다들 술 마실 거죠?"

"네! 오늘 달리시죠"

".."


현준은 이미 술을 한 잔 걸친 듯한 - 들뜬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 옆의 지민은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회사 밖을 나와 10분 정도,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의 어느 골목에 있는 횟집에 도착했다.

정시 퇴근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왔는데,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직장인들의 소란이 가게 안을 채우고 있다.


"모둠회 대자랑, 맛있는 참 한 병 주세요~!"

"네? 아~ 네네!"


직원이 소주 한 병을 들고 온다. 다만 주문한 소주가 아니다.


"아! 저 참이슬 말고, 맛있는 참으로 주문했어요"

"맛있는 참.. 은 없어요, 진로는 있어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문한 소주를 참이슬로 변경했다.

모든 가게에 기본으로 세팅되는 맛있는 참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


"맛있는 참은 뭐예요? 새로 나왔어요?"

현준이 동그래진 눈으로 묻는다.


".. 맛있는 참 모르세요? 참이슬은 독해서 맛있는 참 먹잖아요!"

"하하, 나무님! 맛있는 참은 대구에만 있어요, 서울은 참이슬이에요"

광해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서울은 맛있는 참이 없어요? 허..!"


이럴 수가, 지역별로 판매되는 소주가 다를 수가 있다니.


"... 큽"

조용하던 지민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떨군다.

묘한 부끄러움이 차오르며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허겁지겁 회 한 판을 해치우고, 매운탕을 한 술 뜨며 광해가 입을 연다.


"... 벌써 2주가 지났네요, 다들 할 만하세요?"

"우..후  너무 힘들어요 시키는 것도 많고"

들뜬 마음에 소주를 들이부은 내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되어있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입사하면 더 어려운 일 하겠죠? 하.."

항상 즐거운 표정인 현준은 슬픈 눈으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다만 입은 웃고 있다.


"어렵긴 해요..  아. 벌써 팀 프로젝트도 했고, 발표도 하는데

 서로 쌓인 거 없나요?  오늘 다 풀고 가시죠!"

조원들의 얼굴을 살피던 광해가 술잔을 들며 얘기한다.


"저 있어요"

조용하던 지민이 광해가 든 술잔에 잔을 부딪히며 한 마디 한다.

야금야금 술을 마시고 있었는지, 지민의 얼굴도 홍당무가 되어있다.


"솔직히 프로젝트, 이렇게 가면 저희 다 떨어질 것 같아요"

듣고 있던 남자 셋은 모두 움찔하며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현준님은 매일 모르겠다고 하고, 허허실실 웃고 계시잖아요. 입사하고 싶으신 거예요?"

"어.. 저는.. 그럼요! 아 더 열심히 할게요!"


현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조장님은 아니다 싶으면 바꾸자고 말도 좀 하시고 그래야 하지 않아요?

 대화가 산으로 가도 그냥 듣고만 있으시잖아요, 솔직히 조금 불안해요"


".. 음.. 넵, 저희 월요일부터는 조금 더 달려봐요, 아. 제가 더 노력할게요 미안해요."

광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요, 솔직히 여기서 더.."

".. 야"


"... 야?... 저한테 한 말이에요?"

".. 내가 누구한테 카겠노"


지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 말이 튀어나온다.


"... 왜 갑자기 반말이에요?"

"내랑 동갑.. 동갑이잖아"

"허, 어이가 없네.."


".. 니 진짜 싸가지 없데이.….진짜.."


이판사판, 고개를 힘겹게 들고 지민을 쳐다보며 말한다.


현준과 광해는 눈이 야구공만큼 커졌고,

지민은 젓가락을 양철테이블에 세개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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