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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Oct 11. 2024

객기

술의 힘을 빌려

이전 회차: ["강남 회식"] - https://brunch.co.kr/@treekim/22



2021년 8월 6일 오후 10시 (금) - 서울특별시 역삼동


".. 니 진짜 싸가지 없데이.... 진짜.."


뜨거운 술기운이 올라오자, 억한 심정이 울컥하고 나와버렸다.

순간, 조금 오버했나 싶은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 닌 뭐 잘났다고 말을 그리하노, 2주 동안 니는 뭐 했는데?”

“제가 뭐했... 아. 먼저 말 놨으니 나도 말 놓을게?”

묻고 그라노 부담스럽구로”

“하.. 진짜”


지민의 얼굴에 핀 홍조가 귀까지 퍼져나간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않고, 그저 씩씩 거리며 나를 쏘아본다.


“.. 지민님! 우리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어요, 한 템포 쉬시죠!”

“..예! 당연하죠, 오늘 나무님 많이 취하셨네 ~ 너무 신경 쓰지 마요”

''

뒤늦게 정신을 차린 광해와 현준이 화재 현장에 소화기를 뿌려댄다.


“.... 저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정리도 열심히 하잖아요”

꽉 쥐고 떨던 주먹을 풀고서는, 지민이 입을 뗀다.


“그럼요! 지민 님이 얼마나 열심히 하고 계신데요”

현준이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 저 진짜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왜 갑자기 쟤가.. 하..”

억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던 지민이 숨이 차는 듯. 한숨을 몰아쉰다.


“아이 술도 취하고 하니 실수인가 봐요~ 풀려고 모였잖아요 그쵸? 그쵸 광해형?”

“그럼요, 지민 님 화 풀어요! 그럼 오늘 다 푸시죠!”


현준과 광해의 말을 들은 지민이 천장을 올려보며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 야”

왜”

“넌 2주 동안 뭐 했냐?”

“.. 뭐라고?”

“넌 뭐 했냐고, 뭐 크게 도움이 된 인간이야 너는?”


순간 말문이 턱 - 막히며 머리가 지끈거린다.


“.. 발에 땀나도록 뛰 댕긴다. 니 알잖아?”

“그건 누가 못해? 다 하는 일이잖아?

"... 여기저기 인터뷰 따오고, 만나고,, 니는 안 하잖아? 그런 일

"도움 안 되니까 안 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잘하고 있냐 너는?"

"어제도, 지난주도 - 고객 인터뷰 내가 따오고 정리했잖아?"

"당연히 해야 하는 거, 바쁜 김에 니가 하는 거야. 뭐 대단한 일인 것 마냥 얘기하네?"

"뭐? 제가 하는 게 없나요 이 팀에서?"


지민의 말을 들은 나는억울한 눈으로 현준과 광해를 쳐다봤다.


".. 아 아니죠"

현준이 조금 당황한 듯 대답했다.

"그럼요, 아니에요. 두 분 조금 진정하세요"

광해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손사래를 친다.


''

"야, 너, 할 줄 아는 거 있어?"

"뭐?"

"할 줄 아는 게 있냐고, 엑셀을 만지든, 분석을 하든 그런 거"

".."

"너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


가게 손님들이 하나둘 이 쪽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누그러들더니, 흘깃대며 쑥덕거린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언성을 높여 따가운 말을 뱉어낸 지민에게 화도 났지만,

머릿속엔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지?’라는 생각이 맴돈다.


감정을 담아 강하게 쏘아낸 그 말보다,

‘딱히 할 줄 아는 것 없는 사람이 맞다’라는-

내 얕은 자존감과 자격지심이 뱉어낸 잡념이 나를 휘감는다.


순간 벙찐 표정을 한 나를 보며 지민이 자세를 고쳐 잡는다.

본격적으로 말을 쏟아내려는 눈치다.


“솔직히 니가 같은 팀이라서 불안하거든?

  누구는 자료 만들고, 데이터 분석하고.. 다 하나씩 하잖아?

  넌 뭐 하는데?  아니, 뭘 잘해서 여기 붙은 거야? 진짜 궁금해서”

“… 나.. 뭐..”


울컥 튀어나왔던 마음이 프레스로 눌리는 느낌이다.

명치부터 꽉 막혀 체한 듯한 느낌이 든다, 속이 울렁거린다.


“.. 그, 지민 님 일단 진정하고 조금만 쉬고 다시..”

격앙되는 분위기에 광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니, 잠시만요.  야, 너 대학교는 어디 나왔어? 무슨..”

“지민님!”


...







강남, 택시 승강장


...


세상이 노랗다.


순간 눈앞이 핑 돌았던 것 같은데,

정신 차려보니 광해가 날 반쯤 둘러메고는, 택시를 잡고 있다.


..

“나무님, 집 도착하면 카톡해요. 알겠죠?”

“...  예”

“.. 그.. 너무 걱정.. 아, 주말 편하게 쉬고! 월요일에 봐요”

..


광해는 초점이 없는 나를 택시 뒷 좌석에 앉히고는,

문을 닫고 술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어디로 모실까요?"

".... 봉천역으로 가주세요"


택시 창문에 머리를 툭 - 하고 기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로 들어가는 광해에게 내심 서운한 동시에

설명하기 힘든 부끄러움과 외로움이 밀려온다.






객기.


난 객기를 부린 거다.

나랑 참 다른 결로 살아온 사람들,


그래, 멋지고 잘난 너희 서울 사람들 앞에서

호기롭게 한 번 지껄여보고 싶었다.


그게 내 이야기가 아니라, 객기로 끝나버렸다.

그게 참, 부끄럽다.


불청객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

"봉천역 도착했어요"

".. 여기요..  감사합니다"

..


썬플라워 모텔로 가는 골목이 보인다.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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