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색 전구가 물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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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4일 (화)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보라매 공원
기상청 앞 언덕길을 지나고 나니, 숨이 가파르다.
봉천역에서 보라매 공원까지 30분을 쉬지않고 내리 걸었더니
운동은 시작도 하기 전에 다리가 아파온다.
저 멀리 커다란 모래 운동장이 보인다.
따뜻한 전구색에 비친 운동장과 체육복을 입은 사람들,
고개를 돌리면 높고 화려한 빌딩들이 이 넓은 공원을 감싸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웃으며 내 앞을 지나간다.
".. 다들 근처 사는갑네, 부자다 부자"
이 곳은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 공원이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쓸어내며 운동장 위를 달린다.
대학교 점퍼를 입고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
헤드셋을 끼고 산책하는 젊은 사람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웃는 젊은 커플들,
정장에 브리프 케이스를 든 직장인들,
이들의 표정엔 조금의 후련함도 느껴진다.
공원 전체를 비추는 따뜻한 색의 조명 아래,
사람들의 얼굴이 꽤나 행복해 보인다.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매일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램과 함께
회사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안녕하세요, 1조 발표를 맡은.. 후! 김나무입니다"
뛰면서 발표 대본을 읊는다. 아직 중얼거리기만 해도 긴장이 된다.
지난 주. 나는 우리조의 발표자로 확정이 됐다.
''
"발표 제가 해도 될까요?"
"네, 전 괜찮아요"
생각보다 지민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도끼눈을 뜨고 반대표를 던질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아! 나무님이 발표하시려구요? 아.. "
현준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움찔거린다.
지켜보던 광해가 질문을 던진다.
"현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저도 발표를.."
현준이 말을 이어가던 찰나,
"나무씨 보니까 잘 하더만~ 다들 얼른 퇴근해요"
사업팀의 송과장님이 파티션 뒤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한마디 거들고는 사무실을 나간다.
파티션이 높아 못 본 것인지,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 퇴근했다 생각한
우리 조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송과장님이 사무실을 나서자, 광해가 말을 덧붙였다.
"송과장님이 계셨네.. 저도 나무님이 잘 하실 거 같아요"
"네네, 나무님이 발표하시면 될 것 같아요!"
현준이 맞장구를 치며 의견을 따른다.
다만, 항상 환하던 현준의 눈이 어딘가 일그러진 느낌이다.
"다들 괜찮으시면, 제가 열심히 준비해 볼게요"
''
지난 주 수요일의 일이다.
회식 자리에서 부린 객기로 기가 팍 죽어있던 내가
광해의 응원 덕인지, 송과장님의 말 덕인지.
호기롭게 발표를 해보겠다고 밀어부쳤다.
어찌됐든, 발표를 해보겠다라는 나의 발언은 객기로 끝나지 않았고
'발표자는 김나무'로 의견이 점철되었다.
다만, 얘기가 끝나자마자 - 어두운 표정으로
약속이 있다며 먼저 일어난 현준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참이다.
운동장 안 쪽에서는 젊은 남녀가 빙 둘러모여
무릎을 돌리고 있다. 달리기를 하러 모인 듯하다.
"모임.. 재밌겠네"
돌아다니다 보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달리기를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있다.
저 사람들은 이 서울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틀림없이 멋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언제 다시 대구로 내려갈 지 모르는.
허름한 모텔에서 자고 먹는 인턴은.
모임에 가입할 수 없다. 그처 사치인 거지.
우뚝. 멈춰서 하늘을 올려본다.
짙은 남색의 하늘과 주광색 불이 켜진 빌딩 꼭대기가 눈에 차 들어오고,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야. 궁금하다, 함 살아보자, 내 좀 낑가줘봐라”
실 없는 소리를 툭 뱉고는 다시 뛰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