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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Oct 27. 2024

석촌호수

왜들 웃습니까

이전회차 : '강남역 제육볶음' - https://brunch.co.kr/@treekim/27


석촌호수의 봄


2021년 9월 4일(토) 오후 1시 - 서울특별시 송파구


하늘색이 더없이 푸른 주말 오후.

찌는 무더위는 걷힌 듯, 맑은 바람이 얼굴로 마중 나온다.


카디건을 팔에 걸치고 걷는 연인들,

가볍게 입고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

예쁜 교복을 맞춰 입고는 길을 걷는 연인들.


빼곡히 심어진 벚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편안한 소란 속에 걷는 이들의 중심엔

햇살이 떨어져 윤슬로 일렁이는 호수가 잔잔하다.

이따금씩. 저 멀리서 사람들의 환호 소리도 들리는 듯한


이곳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다.




인턴 최종 프로젝트 발표를 이틀 남겨둔 오늘,

조원들과 잠실역 근처 카페에서 발표 자료를 최종 정리하기로 했다.

광해가 석촌 호수 근처의 카페를 예약해 둔 참이다.


“안녕하세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불어오는 바람에 옅은 향수 냄새가 실려 코 끝을 스친다.

연두색 카디건을 걸치고, 흰 원피스를 입은 지민이 서있다.


얼굴이 훅 달아올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휘적 거리는 나를 뚱하게 보던 지민이 말했다.


“아직 다른 조원 분들은 안 오셨죠?”

“네네, 아직 안 오신 것 같아요”

“.. 음. 잠깐 앉아있을까요?”


지민이 호수를 바라보고 놓여진 나무 벤치를 가리킨다.


“아 네, 그럴까요. 아 그러시죠”

지민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벤치에 앉는다.


“대본은 다 외우셨어요?”

“네.. 오늘 발표 자료 최종 검토하고, 내일 하면 충분해요”

“다행이네요”


지난달 6일, 회식 자리에서 터트려버린 나의 객기로

근 한 달 동안 나와 지민은 거의 대화가 없다시피 했다.


사무실에서 싸우지 않은 것이 어딘가. 싶기도 하며

언제 사과를 건네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석촌 호수, 와 보셨어요?"

조용히 앉아있던 지민이 호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뇨, 처음이에요. 이런 곳이 있네요"

"좋아요 여기.."


나는 석촌 호수가 처음이다.

대구에 가면 수성못이라는 도심 속 호숫가가 있는데. 그곳이 딱 이렇다.


호숫가를 살펴보다가, 문득 물고기가 사는지 궁금했다.


"여기 물고기 사나요?"

".. 살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네"


"여기 낚시할 수 있어요?"

"네? 낚시요?"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본다, 그러고는


"석촌 호수에서 누가 낚시를 해요? 아 진짜 웃겨"

"낚시는 안 하나 보네요"


정말 진지하게 궁금했다.

이렇게 웃을 일인가 - 나는 뚱한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봤다.


"어 진지하네요, 푸하하하"

"아니.. 그.. 예.. 여기가 그런 느낌은 아닌데"


낚시를 하는 호숫가는 아닌가 보다.

하긴. 이 로맨틱한 곳에서 지렁이를 끼우는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 저기 광해님이랑 현준님 오시네요"

한참 웃던 지민이 내 뒤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무님 지민 님 안녕하세요, 먼저 와 계셨네요"

광해와 현준이 이쪽 벤치로 걸어오며 인사를 건넨다.







4명의 조원이 모두 모여, 광해가 예약한 카페로 들어간다.


..

"석촌 호수에서 낚시요? 푸하하하"

석촌 호수에서 낚시가 가능하냐는 내 말이 어지간히 웃겼는지,

지민은 현준과 광해에게 내가 한 말을 얘기해 줬다.


"아우 모를 수도 있죠.. 서울은 낚시하는 곳이 없어보여서 물어봤어요"

"아, 지방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진짜 웃겨요 하하하"

 현준이 낄낄대며 카페 단체석의 의자를 뺀다.


"하하하, 그러게요. 우리 잠깐 쉬다가 최종 정리 시작하시죠?"

주문을 마치고 온 광해가 말한다.


"좋아요, 전 그럼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석촌 호수에서 정신 못 차리고 허둥대다 카페에 들어와서 그런지,

속이 답답하던 참이었다.


..

"흐읍~ 후..."


카페 문을 나서서, 신호등을 건너면 석촌 호수가 보인다.

호수를 바라보고 심호흡을 한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 잠실의 풍경이 보인다.


목이 아프도록 턱을 올려도 꼭대기가 안 보이는 롯데 타워.

교복을 입고 셀카봉을 챙겨 롯데월드로 향하는 커플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놀이기구 소리와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수.


속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하다.




..

".. 네! 이제 발표 준비만 하면 되겠네요"


약 4시간의 회의 끝에, 발표 자료 최종 정리가 끝났다.

조장 광해가 노트북을 덮으며 말을 덧붙인다.


"내일 일요일인데, 술 한 잔 어떠세요?"


다만 현준과 지민은 뒷 약속이 있는지, 발을 뺐다.

나도 호수나 한 바퀴 걷고 들어가 쉴 겸 - 불가능하다 한 참이다.


"아쉽네요, 그럼 월요일에 최종 발표 끝나고 한 잔 하시죠!"

광해 이 사람도, 조용한 듯하면서 은근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


".. 나무님은 어디로 가세요?"


잠실역 입구 앞에서 지민이 말했다.

광해와 현준은 잠실역으로 먼저 들어간 참이다.


"저는 석촌 호수로 가려고요"

"아, 약속 있으세요?"

"아뇨, 아.. 조금 걷을까 해요"

"그래요? 저돈데, 같이 가실래요?"


지민도 따로 약속은 없었는지, 시간이 비는 듯했다.


"한 30분 걸을 거에요, 갈까요?"

"네, 가요"


초저녁 푸른빛이 감도는 석촌 호수는

낮 시간의 포근한 느낌과 또 다른, 차분하게 안정된 느낌을 줬다.


어색할 것 같던 예상과는 다르게,

'발표 긴장된다', '송 과장님 턱수염을 레이저 제모 해야 한다'는 등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민과 석촌 호수를 걷는다.


인턴도 막바지가 되어서 그런가,

감정이 없을 것 같던 이 사람. 꽤나 말이 많다.


"그.. 지민 님"

"네?"


석촌 호수길을 절반쯤 걸었을까,

잠시 조용해진 이 코스에서,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엔 죄송했어요"

"..."

"사과가 늦었죠, 미안합니다"


지민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문채 걷고 있다.


"제가 조금.."

"미안해요"


지민이 어물쩡거리던 내 말을 끊고선 대답했다.


"그날 많이 흥분해서, 저도 실수했어요"

".."

지민도 할 말이 있었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동기인데 친해지지도 못했고..

 술도 들어가니, 그 상황에 더 욱했던 것 같아요"


호수에 달빛이 떨어진다.

푸르스름한 빛이 짙은 호수를 감싸고 있다.


"사실, 일이든 공부든.. 제가 제일 잘할 거 같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 네?"

"그날 객기를 부린 것 같아요. 미안해요"


지민이 에코백을 두 손에 모아들고는, 내쪽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저도 잘 지내고 싶은데 말이 헛 나왔어요, 미안해요"

".. 먼저 가 볼게요!"


호숫가 옆 계단이 보이자, 지민이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곤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발표 끝나면 술 한 잔 해요.  들어갈게요!"


말을 끝낸 지민이 계단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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