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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Sep 02. 2024

숨 막히는 면접장, 나는 촌놈이네

다들 이렇게 살았다고?

이전 회차: [서울, 오기는 했는데] - https://brunch.co.kr/@treekim/11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2021년 7월 8일 오후 2시 (목) - 대구광역시 달서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이곳은 성서 산업단지역 근처의 투썸 플레이스.


집에서 걸어서 10분, 대학 시절부터 쭉 오던 곳.

지난달 전역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신입 공채에 지원할 이력서를 쓰러 출석 중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땀을 닦으며 2층으로 올라간다.

쾌적한 창가 쪽에 마침 소파가 비었다.


'사람인' / '잡코리아' / '자소설'...

여러개의 포털을 열어 두고, 조건을 걸기 시작한다.


'신입' / '서울' / '기획 전체', '마케팅 전체' / '장교 우대'..

많은 채용 공고를 확인한다, 애초에 대구는 선택지에 없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는 기어코 퇴근 후 한강에서 맥주를 마셔야겠다.


[ 00 기업 사업 / 전략 기획 신입 ]

< 필수>

 - 4년제 대학 졸업
 - 토익 점수 750점 이상
 - 관련 자격증
 - 관련 직무 유경험자
 - 컨설팅펌 / 컨설팅 동아리 경험
 - // 등등


한 숨을 푹 - 내쉰다.

유명 대학, 인턴 경험, 자격증, 영어 점수. 충족 조건이 하나도 없다.

서울대도 취업이 어렵다는 문과 출신? 그게 나다.


"이런 것도 좀 하고 그럴걸.."


공고에 쓰인 '조건'이라는 글자에 벽을 느끼고는,

괜히 직업 군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한다.


'21' 하반기, 00 기업 공채 서류전형 결과'


메일함에 신입 채용 서류 검토 결과가 도착했다.

꽤나 큰 백화점을 전국에서 운영하는 대기업.

당시 별 기대없이 지원했는지 - 오늘이 발표일인 것도 몰랐다.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기대'라는 감정을 비워낸다.

실망하면, 힘이 쭉 빠져서 이력서를 작성할 힘이 없더라.


'그래, 대기업이잖아? 두 달간 숱하게 탈락했잖아?'

마음을 비워내고 메일 제목을 클릭한다.


' 안녕하세요 김나무 님, 00 채용 담당자입니다...'

그래요, 본문은 언제나 친절한 인사로 시작하더라고요.


밑에 딸린 문장을 읽어보려 무심하게 스크롤을 내린다.


안녕하세요 김나무 님, 00 채용 담당자입니다.

축하합니다!  2021년 하반기 전환형 인턴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이후 진행될 면접을 아래와 같이 안내합니다.

[ 실무 면접 안내]
 - 면접일시 : 2021년 7월 16일 (금), 오후 1시
 - 면접장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 그룹 빌딩
...


"어?"



...



"엄마!"

"어 아들"

"내 서류 합격했다!"

"뭐를 합격해, 회사? 진짜로?"

"어! 내 00 그룹 서류 합격했다! 00백화점 알제!"

"엄머야! 진짜가! 대단하데이 벌써 ~ 면접은?"

"다음 주라 카네, 머리가 하얗다 지금"

"서류 합격도 대단한기다! 고기 먹어야겠네~"

,,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카페에서 나왔다.

아메리카노는 손도 안 댄 참이었다.


머리가 띵하다.








2021년 7월 16일 오후 12시 (금), 서울특별시 금천구



"귀사가 걸어온 족적과.. 브랜드 가치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은, 너덜너덜한 A4 용지를 접어 가방에 넣는다.


준비한 대답을 통째로 다 외웠다.

곧 면접이다, 첫 면접이라고 아울렛에서 정장과 가죽 구두를 샀다.


새벽부터 일어나 정장 차림으로 KTX를 타서 - 서울에 왔다.

왁스로 열심히 넘긴 머리가 땀으로 축축하다. 이 날씨에 정장이라니.


회사 근처 카페,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넥타이를 만지는 이 젊은이를

누가 보더라도 '면접보는 신입이구나'라 생각할 것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 30분. 면접 30분 전이다.

심호흡을 하고, 눈앞에 보이는 사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커다란 유리문이 열리고, 1층에는 수다를 떠는 직원들이 보인다.

저마다 목에는 반짝거리는 사원증을 매달아놨다.



"와.. 억수로 멋있다"



멀끔하게 생긴 직원이 다가와서 이름을 묻고는, 대기실로 안내해 준다.

따라간 대기실에는, 하얗게 질린 정장 차림의 또래들이 가득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

"일찍 일어나는 새가..."



"웅성웅성.."

대화가 아니라 혼잣말로 채워진 소란과 긴장감이 대기실을 채우고 있다.


저마다 휴대폰, A4 용지에 무슨 글을 빽빽하게 적어뒀다.

긴장되면서도 어딘가 느껴지는 동질감.

부끄러워 접어둔 A4 용지를 꺼내들고, 나도 그 소란에 합류한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이름을 물어본 직원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 김나무, 박길동, 조동근, 조현준, 이광해 님 이동하겠습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따각따각, 줄지어 걷는 5명의 구두 소리가 요란하다.

내 뒤에 따라오는 이 친구는 울기 직전이다.


이 넓은 회사에서,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만 경직됐다는 느낌이 몰려오며 문득 어지러워진다.



---



면접장에 들어서니, 5명의 면접관이 앉아있다.

저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맞은편에 차례대로 앉는다.


적막이 흐르고, 주먹 쥔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 조동근 님부터,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  안녕하세요, 아침형 인간 조동근입니다.

  삼0 물산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00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리고.."


"네, 그만. 다음으로.."



잠깐, 그만이라고?

무려 00 그룹에서 인턴을 하고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데?


엄청난 스펙을 가진 지원자의 스타트에 기가 팍 꺾이고,

이 지원자의 말을 끊는 면접관을 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안녕하세요, 씨0 그룹에 인턴으로 근무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1년간 근무하며.."

"롯0 그룹이 개최한 공모전에서 1등을 수상.. "



연달아 3명의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엄청난 '고스펙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들으니 한없이 작아진다.

준비한 대본은 이미 기억에서 삭제됐다.

모든 감각이 나에게 말한다. - 이건 탈락이다.



"...... 김나무 님?"

"... 네?.. 네!"



절망하고 있던 찰나, 면접관이 내 이름을 부른다.

심지어 한 번에 대답도 못했다.  망했다.



"족발집 아르바이트를 하셨어요?"

",,,아. 네"



뜬금없이 족발집이 왜 나오는가.

내 첫 질문이 자기소개가 아니라, 족발집 얘기라니.


그러고 보니, 스무살 때 시장에서 족발집 알바를 했다.

도대체 스무살에 했던 알바는 어떻게 안 걸까?


아. 내가 경력사항에 족발집 알바 경험을 썼구나.

하 - 다시는 경력사항에 알바 경험을 쓰지 않으리라.


희미하게 웃고 있는 면접관이 턱을 괴며 질문을 이어간다.



"족발집 아르바이트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했나요?"

".. 네, 족발집 아르바이트는..."



옆을 보지 않아도, 지원자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부끄럽다. 다시는 대기업에 서류를 쓰지 않으리라.

이럴 거면 나를 왜 합격시켰나?


어쨌든 대답은 해야겠으니, 족발집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 가게가 시장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 필요한 알바생은, '주방일을 하는 홀 알바'입니다.

점심시간엔 현장 노동자 손님들이 오셨고, 퇴근 시간에는

귀가하는 남편, 혹은 젊은 남성들이 포장하러 오셨습니다.

위치가 시장이다 보니, 회식 예약은 없었어요,"



퇴근길 포장, 빠르게 현장 복귀가 필요한 분들이 주로 방문하셔서

음식을 데워두고 빠르게 내어드리는 게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 다만 주방 알바는 직원를 뽑아서, 할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출근하면 홀을 닦고, 바로 주방일을 도왔습니다.

그래야 포장을 하나라도 더 하고, 회전율도 늘거든요.

근무지 특성이 그렇다보니, 나중엔 주방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



대답을 마치고는, 면접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유통사 기획/관리직을 채용하는 면접 자리에서

누가 족발집 알바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이후 다른 지원자에게 질문을 시작했고,

나는 30분을 내리 아무 질문도 받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 ... 네, 면접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50분 간 족발집 얘기를 1분 정도 하고는,

49분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다가 나왔다.

부끄럽다. 부모님께 전화드리겠다고 했는데,

서러움이 비칠까 봐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일주일간 준비한 기업 조사 자료와, 꼭 말하고자 했던

포부가 담긴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마저도 퉁 - 하고 튕겨나온다.

순간 누가 봤으면 어떡하지, 싶지만 씩씩 거리며 못본 척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지나쳐가는

정장 무리들이 부럽고, 미워 보이고, 또 부끄럽다.


대구로 가는 KTX 출발 시간이 두 시간 남았다.

절대 서울에 오지 않을 거라, 서울 콩깍지는 착각이다 생각하며,

서울역으로 가려고 네이버 지도를 연다.



...



"하.. 지하철은 또 와이래 복잡하노? 무슨 방면? 뭐 어디로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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