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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ug 28. 2024

서울, 오기는 했는데

서울이 맞기는 한데

늦은 저녁, 한강 공원





2021년 12월 03일, 밤 10시 (금)  -  서울특별시 여의도 한강 공원


".. 와이래 춥노"


2021년 12월, 밤 10시 여의도 한강 공원.

더플코트 주머니 속 핫팩이 슬금슬금 뜨거워지는 참이다.


강추위에 한껏 움츠리고는, 코트를 여미고 강 둔치를 걷는다.


'I SEOUL U'  조형물 뒤로, 강 건너편의 반짝이는 빌딩숲이 장관이다.

대교를 지나는 자동차와 긴 지하철,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그래. 이건 내가 상상하던 서울이 맞다.


칭칭 감은 목도리 위로 코를 내밀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훅 들어오는 찬 공기.


"스읍~... 하"


서울 공기가 안 좋아서 건강 나빠진다는데, 뭐 그렇지는 않다.

매캐한 공기?  음식 냄새?  그런 건 아니다.

여기저기 섞인 듯한, 뜨뜨미지근한 공기가 코로 들어온다.


역시, 대구랑 다르다.


--


2021년 7월, 스물여섯에 직업 군인을 그만두자마자

칼 취업을 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동네에서는 내가 1등으로 간 놈이다.


입대 전까지 평생 대구에 살며 두어 번 서울에 왔던 것 같은데,

경기도에서 군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오기도 했다.


부대 근처에 지하철이 있던 동기 놈과 자주 만나곤 했는데,

항상 복귀 직전엔 한강 둔치에 서서 야경을 바라봤었다.



"무성아, 우리 서울 다시 오겠나?"

"취업하면 오지 않겠나, 근데 그기 쉽나. 잘 모르겠네"

"이야.. 근데 이 야경을 매주 볼 수 있는 거 아이가. 나는 서울로 올란다"

"서울 좋지.. 근데 대구서 편하게 회사 댕기는 것도 안 낫겠나?"

"... 거나 여나 사는기 똑같지 뭐, 그럴 거면 서울 살아봐야지"



평일엔 고층 빌딩에서 폼나게 퇴근하고,

이름난 맛집 중 하나를 골라 저녁을 먹고, 근처 한강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주말엔 멋진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성수동과 이태원에 들러 피자를 먹고 집에 돌아와 야경을 감상하는.


허름한 간부 숙소의 문을 열고, 마포역까지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온

군인 아저씨의 눈에 - 서울 라이프는 그런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5개월 차, 주소지가 '서울특별시'가 된 서울 사람이 되어있다.

퇴근하고 한강을 온 건, 7월에 취업하고는 오늘이 처음이다.


" 휘황찬란하다... "


한강 건너편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올라온다.

무성이는 뭐 하고 사려나,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여본다.

칼바람에 손이 아리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더니 - 수화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어 왜"

"뭐 하노 무성아"

"집이지, 밥 먹고 쉴라고"



휴대폰 스피커 너머로 거실의 티비소리가 들린다.



"잘 사나 ~ 내 지금 한강 공원이데이"

"오랜만이네, 우리 자주 갔었다 아이가?"

" 기억나제, 우리 여기서 전역하고 꼭 서울 올라오자고 캤었다 아이가"

"그랬지, 우리 중에 니가 1등이데이. 어떻노, 살만하나?"

".."



말문이 턱 - 막힌다.

살만한가?  당시 군인 아저씨가 꿈꾸던 삶은 아닌 거 같은데.



"야야, 확실히 서울은 다르다. 니도 빨리 올라온나"

"회계사 합격하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재밌게 놀고 있어라"

".. 그래~ 내 조만간 대구 가니까 그때 함 보자, 공부 열심히 하고"



전화를 끊고 한강을 바라본다.

한숨으로 뱉은 입김이 눈앞을 가린다.


그래, 사실은 이게 내 대답이랴.


멍하니 서있다가, 문득 네이버 지도를 열어 지하철 시간을 검색한다.

아! 곧 막차 시간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구나.


저 빌딩숲 뒤편 어딘가 숨어있는 빌라숲이 있다.

작은 내 보금자리,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됐다.


헐레벌떡 여의나루역으로 뛰어간다.

그러다 잠깐 한강을 돌아보고는,   다시 역으로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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