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귀
집에 돌아왔다.
2023년 초 퇴사를 지르고 일사천리로 돌아왔다.
해외에서 돌아왔으니 자연스레 귀국으로 이어지고 당분간 서울에 집이 없으니 부모님 집으로 귀향을 한 셈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곧 어디 론가 떠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밖에 나가서 깨닫고 왔다.
산티아고에서 경유지인 엘에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살았다 싶으면서도 당장 이제 뭐 먹고살지 막막함도 든다. 집에 가면 밥은 줄 것이니 당당하게 퇴사를 질렀는데 경유지에서부터 이런 고민이 시작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우선은 마냥 좋다. 게다가 머나먼 나라에서 달러를 벌어 왔으니 당분간 그 구실로 한두 달은 푹 쉴 수 있겠다. 터전을 옮기고 이동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 소비가 발생한다. 보험 은행 통신 주거 등등 한 사람이 거주지를 국내외로 옮기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준비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달리 생각하면 두세 달 투자하면 거주지를 바꿀 수 있는 세상에 살 고 있으니 꽤나 자유로운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에 돌아와 만끽하는 자유는 길거리 소매치기 걱정 없이 예쁜 가방과 지갑 핸드폰을 휴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생활의 자유분방함을 동경해 떠났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자유는 길거리를 편하게 긴장하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작년 길에서 폰을 털리고 연말에 새로 구매한 아이폰 14 프로를 무사히 한국땅으로 가져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몸을 옥죄는 도난방지줄은 공항에서 바로 버렸다. 후련하다.
공항에 나와 원래 살던 공덕동 호텔에서 며칠 묵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새로 배달어플을 깔아본다. 이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을까. 그리고 차근차근 떠나기 전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전의 나를 복기해 본다. 동네에서 좋아했던 카페 음식점 공원 목욕탕 하나씩 돌아본다. 물가가 꽤 오른 것 말고는 모든 게 그대로여서 웃음이 피식 난다.
해외에 다녀왔다고 해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요즘 나는 떠나기 전 생활로 다시 차근차근 복귀하고 있다. 돌아간다는 것이 항상 새로운 대안이 없거나 관성에 젖어서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됐다. 이번 해외생활이 준 값진 깨달음이다. 귀향 귀국 복귀…
얼마나 귀하면 떠나간 제 발로 굳이 다시 돌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