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무 Jun 05. 2023

스승의 의미

어린 시절의 선생님들 그립습니다.

그 시절, 그런 것이 가능했다고 하면 지금의 아이들은 납득할 수 없을 일들을 우리는 겪었다.

국민교육헌장을 줄줄이 외워야 했던 어린 초등학교시절, 우리는 국민학교를 다녔지 말이다.

학교에서는 작은 컵으로 한 컵 씩 건빵을 나눠줬다.

명목이 무엇인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양동이 바닥쯤 다다르면 별사탕이 있는 건빵을 나눠 주었는데, 한 반에 68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양동이 하나로 다 먹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반씩 잘라 34명씩 하루 걸러 건빵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건빵의 양이란 게 지금 생각해 보니 40컵 정도 되었나 보다 싶다. 남은 건빵은 황토색종이봉투에 담겨 담임선생님 책상 한편에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저 건빵은 누가 먹을까? 선생님 혼자 다 먹는 걸까?

당시 소심한 내가 감히 그 궁금증을 입 밖으로 낼 용기는 없다. 그저 어린 시설의 궁금증으로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건빵의 행적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도 그건 아마 불법이었을 테지만 담임선생님의 집에서 반아이들의 과외를 했다.

혹여 많은 교사 출신들이 그것이 내 기억의 오류라고 한다면, 나는 달리 증거 같은 거는 없다

오롯이 내 기억에 의존하는 한 그때 담임선생님의 집에서 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대여섯 명 되는 그 아이들은 과외하는 날 선생님께 한 컵의 건빵을 받아왔다.

물론 나와 친한 아이는 그것을 내게 나눠주며 으스대기까지 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 70년대 그래도 살림살이 넉넉한 어떤 집에서는 과외를 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과외를 하는 구조는 아니었다. 우리 반에서 제법 공부 잘하는 편이었던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과외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부류에 들고 싶어 엄마를 졸라댔다. 시골에서 그래도 넉넉한 집안이었음에도 우리 부모님은 안된다고만 하셨다.

그 시절, 지금의 잣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자면 어처구니없는 일 앞에서도 당시의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의 흉을 보거나 하는 따위는 들어보지 못했다.

옆집오빠가 고등학교 교련선생님의 몽둥이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엉덩이를 맞고 와도 학교에 항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물론 도시에서 많이 배운 부모들은 달랐을지 모른다.

적어도 내가 살던 아주깡촌도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규모의 읍내에서는 그랬다.

어린 내게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그런 절대적인 권력? 을 가진 선생님들... 스승님들...

심지어 우리 어머니는 교사 월급이 박봉이라며 김장철에 김장을 두통씩이나 선생님댁에 날랐다.

또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인근에는 고아원이 있었는데, 그때 그곳의 아이들은 가방도 없이 보자기에 책을 싸 오는 아이들도 있었고, 운동화 없이 고무신을 끌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면, 낡은 가방을 어디선가 구해와 그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권리니 의무니 그런 단어들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생활하는 이들이 적었나 보다.

4학년때이던가? 남자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선생님댁 이사에 아이들을 동원하셨다. 리어카 한대를 빌려와 아이들과 함께 많지 않은 선생님댁 이사를 했는데, 조무래기 우리들은 마냥 즐거웠다.

지금 시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그 누가 그런 이상한 이벤트를 받아들일까?

그래도 그때는 즐겁고 행복했다. 이사 후에 맛난 짜장면을 사주시고, 선생님댁에 있던 귀한 동화책을 두어 권씩 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께 받았던 책이 얼마나 좋았는지...

뭔가 억울해야 하는 부당함이 행복했다. 그리고 아련하다. 그 조무래기들 중에는 1년에 한 번도 짜장면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동화책은 따로 사본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가족의 달인 5월에 스승의 날도 있다.

난 요즘아이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스승님들의 이야기를 억지춘향으로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권리와 의무와 책임감과 부당함과 공정함 그 모든 단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랑을 나눠주시는 선생님'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불공정했을지라도, 또 부당했을지라도,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 선생님들은 직업으로의 완벽한 사회인이기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분들이다.

그분들, 내 기억 속의 스승님들을 기억해 보는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100세 대입프로젝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