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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ul 08. 2023

세 명의 아이들과 혼밥

혼밥 연주

photo by unsplash

조금은 어색하다. 6개월 만의 혼밥이.


나는 가끔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 루틴 한 삶의 패턴을 바꾸기 위해 바깥에서 혼밥을 한다.


변화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인터넷 검색도 없이 무작정 간판이 이끄는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계획 없이 방문한 곳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 천지인 경우가 많다. 마치 어린 시절 장난감 코너에서 무얼 살지 고민하던 호기심 가득한 아이로 변신한다. 두 눈엔 불이 가득한 채.


다양한 감정과 함께 혼밥 연주가 시작된다. 결정을 혼자서만 내릴 수 있다는 짜릿함,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 무엇보다 휴대폰과 대화 없이 음식에 집중하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음표들로 가득 찬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삶의 변주를 위해 혼밥을 시작한다. 자 어딜 골라볼까? 가게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찾아보려 노력한다. 5분이 지났나. 큰 상가건물 1층에 있는 국숫집을 발견한다. 주차를 하기 위해 건물 지하로 향한다. 어라. '만차'다. 모험이 시작된다. 차단봉이 올라가지 않겠거니 체념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를 생각하던 중 만차여도 직진을 해보기로 결정한다. 이게 웬걸. 차단봉이 열린다.


쾌재를 부르며 지하로 향하지만 만차여도 열리긴 하니까 자리는 없겠지라고 단념한다. 아니다. 내가 틀렸다. 딱 한자리가 비어있다. 비상등을 켜고 재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 주차를 한다. 주차장 입구에서의 만차는 속임수였다는 걸 직감한 뒤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렴 어때~ 주차했으면 됐지'


'땡그랑' 소리와 함께 사장님의 인사를 받는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삶의 노고가 엿보이는 주름이 사장님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더욱이 미소는 사장님의 분위기를 친절하고 온화하게 만든다. 이에 나도 화답한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칼국수와 김밥 한 줄을 시켰는데 9000원이다. 요즘 물가에 비해 저렴하다는 걸 체감하고 잘 골랐다는 생각에 속으로 환호한다.


이제부터 내 시간이다. 아직 주문을 받지 않는 손님이 가득하기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혼자 내린 결정에 짜릿함은 맛보았기에 이제 홀가분함을 느낄 차례다. 혼자 먹을 식기류를 챙기고, 셀프바에서 김치를 담는다. 누군가의 양과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한 나 자신이 뿌듯하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마지막으로 휴대폰 없이 주변을 둘려볼 시간이다. 가게의 인테리어부터 시작하여 조그마한 컵까지. 거시적에서 미시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손님이 아이와 부모 거나 아이와 어머님으로 가득 차다. 나는 생각한다. 가게에서 자녀 이벤트를 하나? 이 상권에는 30-40대 젊은 가족단위가 많은가? 맘카페를 통해 입소문이 났나? 등등.


여러 갈레의 생각은 접어둔 채 다시 생각한다. 중요한 건 어떤 형태와 방식이던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아이들의 표정이라는 사실이란 걸.


메뉴가 나오기 전 아이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몰래 아이들을 쳐다본다. 교류에 성공한 아이들은 총 세 명이다.


첫 번째 아이는 몸을 베베 꼰다. 한 창 뛰놀 나이에 어디가 아픈 건 아닐 테고, 아마 부끄러움이겠지.

두 번째 아이는 어머님을 부른다. 나는 몹시 당황스럽다. 그리고 어머님과 암묵적인 눈인사를 통해 말을 건넨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세 번째 아이는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무해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다. 6년을 함께한 여자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의 미소가 여자친구보다 아름답고 고귀하다. 세 번째 아이와는 몇 초 더 눈인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괜스레 나도 미소를 보인다. 아이는 더 큰 미소를 지으며 나의 행복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이에 질세라 소리는 내지 않은 채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와 행복을 건넨다.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우리만의 미소 배틀이 시작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별생각 없이 선택한 국숫집에서의 맛은 어땠을까. 아무래도 리뷰를 보고 신중히 결정하지 않았으니 별로였을까?


오히려 정 반대다. 맛집 리스트 저장이다. 칼국수와 김밥의 조화는 하루를 씻어주는 듯하다. 칼국수는 감칠맛과 칼칼함이 어우러져 김밥과도 잘 어울린다. 아마 이 맛엔 다양한 아이들과의 소통의 향기도 첨가되었겠지. 음식에 온전히 집중하며 행복을 느끼며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게 시작한 변주는 어느덧 마지막에 다다른다. 테이블을 닦고, 가지런히 수저를 포갠 뒤 계산대로 향한다. 음식값을 지불하고 주차등록이 가능한지도 여쭤본다. 다행이다. 주차 등록이 가능하니 잠시만 기다린다. 사장님이 이것저것 포스 기를 두드리신다. 10초간 정적이었을까. 허허. 예기치 못한 숨은 변수가 발생한다. 프로그램이 먹통이라며 그냥 가길 권하신다.


나는 별수 없이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차로 향한다. 차단봉과 다시 조우한다. 그러자 녀석이 내게 말한다. "3300원을 뱉어내시오."


헉. 당황스럽다. 칼국수의 절반 값이다. 다시 한번 눈을 의심하지만, 물가와 상권을 보고 이내 체념한다. 뭐 어쩌겠나. 나가려면 뱉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임을 깨닫고 작별인사를 건네며 혼밥을 마무리한다.







'기분 좋은 장조'로 끝날 것 같았던 혼밥 연주 1악장은 '다소 아쉬운 단조'로 끝을 맺는다.


혼밥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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