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퇴사, 어렵게 들어가놓고 고민하는 이유
나에게 상처를 준 공무원에게
세상이 험하고 척박하다 보니 사명감이나 적성 보다는 안정되고 괜찮은 조건의 직업이 인기가 치솟고 그에 따라 공무원의 주가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나 역시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공무원이 된게 아니었다. 결혼을 한 뒤 출산과 육아라는 먼 길의 초입에서 본능적으로 공무원 이직을 시도했다. 현실적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 이 나라에는 많지 않기에.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만사가 해결되느냐. 그럴리가요~
언론사 다닐 때 일하며 틈틈이 미디어잡을 들락거렸는데, 공무원이 되니 매일 공무원판 잡코리아인 나라일터를 들락거리게 되더라.
나만 그렇느냐? 옆자리 앉은 애들도 똑같더라 ㅠ 일이라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격렬히 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안위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크고 작은 성취를 통해 삶의 보람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과도 같은 것. 평생 충성할만한 만족스런 '일터'란 존재하기나 하는건가요~
공무원들이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1.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업무. 대충 공무원은 박봉인 대신 업무강도가 높지 않고 칼퇴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워라밸이 보장되는 몇 안되는 직업이랄까. 겉으로 보기엔 책상에 앉아 우아하게 컴퓨터만 보면 되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서별로 업무는 천차만별이지만 야근과 주말출근을 밥먹듯 소화해야만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있던 부서는 정부부처 기관장 비서실이어서 더더욱 고정관념 속 여유로운 공무원의 일상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기관장님 출근 전이 출근시간이고 기관장님 퇴근해야 퇴근이었기 때문에 기관장 성향에 따라 조기출근과 야근이 일상화돼 있었고 밀린 보고서 검토, 이슈가 있을 땐 급 회의소집, 국회 시즌이나 국감 시즌에는 자료 검토 등으로 주말출근도 잦다. 비서실 직원들은 당연히 나오는거고 기관장이 주말에 왜 나오느냐에 따라 관련부서 담당자들도 줄줄이 출근해야 하는건 당연지사. 공무원 과로사나 안타까운 선택에 대한 뉴스가 잊을만 하면 등장하고 지자체 대민업무는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트라우마 치료 등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운영될 정도이니.. 칼퇴하는 철밥통 공무원은 그냥 이미지 속에만 존재하는게 현실이다.
2. 경직된 조직문화. 보수적인 분위기나 수직적 조직문화는 어느정도 각오하고 들어가지만 요즘 시대 아직까지 상명하복이 뼛속까지 새겨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공무원 조직이다. 내 의견보다는 윗사람의 결정이 우선시되는 곳. 윗사람의 폭언과 막말이 지탄받기는 커녕 상당히 방어가 잘 되는 분위기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열린 사고를 가진 요즘 젊은이들이 적응하기 힘든건 당연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적응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거. 경우에 따라서는 빨리 벗어나는게 현명한 선택일수도 있는 그런 분위기.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도 공무원들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해당이 안 되는게 현실이다. 그럼 어떻게하는가. 각 기관마다 고충처리 담당부서가 있고 언제든지 민원을 넣을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비서실에서 바라본 업무처리 과정은 정말이지 없는 것만도 못했다. 공무원 조직 분위기에서 상사의 갑질을 신고할 정도면 얼마나 고민고민끝에 도저히 견디다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한 걸텐데...그러한 직장내 갑질이나 괴롭힘 민원은 절차상 기관장에게 보고되고 기관장 업무를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란 인간은 바쁜 기관장이 그런것까지 신경써야 한다는게 매우 심기가 불편해 사태파악이 되기도 전에 만약 갑질 아닌걸로 밝혀지면 갑질 신고한 애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는지 찾아보라고. 아예 아무도 갑질신고 같은건 시도도 못하도록 못을 박겠다는거지. 상사의 갑질을 더 높은 사람이 나서서 해결해주긴 커녕 처음부터 문제를 해결할 의지조차 없는 것이다. 이 조직은 그냥 높은 사람, 권력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조직이라 아랫것들은 그저 복종하기만을 바라니 지내다 보면 속이 깝깝한 순간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3. 급여 부분. 박봉이라는 것은 알고 갔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라는 생각을 한번쯤을 해봤을 것이다. 호봉제이다 보니 매년 급여가 올라가는 시스템이라 첫해 급여는 알바때보다 적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경력직으로 들어와 호봉 테이블대로 급여를 받다 보니 이직 전보다 수입은 줄었다. 예전에는 노후에 연금 메리트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연금개혁으로 든든한 노후를 기대할 수도 없고...실제로 우리 팀 행시패스한 사무관 첫 월급을 보고, 개고생 해가며 고시공부한걸 옆에서 수년간 지켜봐온 그의 언니가 울었다고 한다. 이 월급 받으려고 그렇게 공부한거냐고ㅠ 맞벌이가 아니라면, 가진 재산 없다면 두고두고 이직을 고민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하여 어렵게 공무원이 돼서도 더 좋은 곳으로 갈아타기 위해, 혹은 타기관으로의 전입을 위해 호시탐탐 노력한다. 대다수는 생각만 할 뿐 현실과 타협하지만 날이 갈수록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젊은 공무원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나 역시 수시로 퇴사를 고민하며 초록창에 공무원 퇴직을 넣어보고서야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걸 알았다. 의원면직 선배들의 스토리를 접하는게 어렵지 않은 현실. 많은 부분 공감이 갔다.
나의 명목상 퇴사 이유는 코로나 시대 육아 때문이었지만 이 조직에서 겪은 불합리한 상명하복과 오로지 기관장에게 충성을 위한 상사의 터무니없는 지시, 갑질 등은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