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퇴사는 비자발적이다
3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을 때, 많은 이들이 얘기했다. 공무원처럼 좋은 직장이 없다고. 법적으로 모든 기업에서 육아휴직은 보장돼 있는데, 있어도 쓰지를 못하는게 현실이니 그럴만도 하다. 나 역시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두 아이가 5세, 6세때 유치원 등하원때문에 3년간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도 못꺼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무사히 복직을 했으나...복직원을 낸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사직서를 쓰게 됐다.
공무원은 편견이 많은 직업이다. 일반 직장보다 여유로운 업무에 칼퇴근하고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일반 기업 못지않게 격무에 시달리고 야근을 밥먹듯 해야 한다는 것은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다. 더욱이 기관장 비서실에 소속된 내 업무는 기관장 출근을 준비하는 것부터 업무가 시작되고 기관장이 퇴근하고 정리를 해야 업무가 끝나는 특성상 출근이 빠르고 퇴근이 늦어 육아와 병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도 태생이 노동자인 나는 워라밸을 무너뜨려 가면서까지 회사에 충성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었지만, 결국 비자발적 퇴사에 이르게 됐다. 여기에 공무원에 대한 확실한 편견 하나가 숨어있다. 흔히 공무원은 철밥통이라 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비정규직 공무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출범 당시부터 정부는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이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정부부처에서조차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이익이 횡행하고 있었다. 휴직에서 복귀한 순간부터 부당한 대우를 겪어내야만 했다. 나는 6급 별정직 공무원으로 휴직 전 업무는 기관장 말씀자료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복귀시 마련된 자리는 기관장실 청소를 하고 차를 나르는 공무직 업무였다. 당연히 직급에 맞지 않는 업무다. 더욱 악질인건 기관에서 이런식으로 인사를 해놓고 6급이 너무 쉬운 업무를 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6급이 정부부처에서 어떤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냐며. 처음부터 의도가 분명한 인사조치였다.
기관은 결국 근무평가 시즌이 되자 나에 대한 평가권을 가진 5급 사무관에게 내 점수를 최하점을 매길 것을 지시했다. 이는 명백한 평가조작이었다. 정부부처에서가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중앙정부부처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같은 황당한 지시를 받은 평가자는 그 후 며칠간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내가 의도가 뻔한, 직급에 맞지 않는 업무를 부여받고도 늘 최선을 다하며 구멍없이 업무를 수행해온 모습을 곁에서 모두 지켜봐온 그였다. 내 평가자는 비서실장에게 말도 안되는 지시를 받고 인사과에 항의했지만 인사과장 역시 입이 맞춰진 일이었기에, 평가서에 없는 말을 지어쓸 수 없으면 적극성 부족으로 작성하라는 팁을 줬다고 한다. 그 역시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은 직장내 괴롭힘의 희생자이자 의도치 않게 평가를 조작한 가해자가 된 것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자 돌아온 것은 더 큰 괴롭힘이었다. 내가 소속된 기관은 매년 4월 성과급이 지급되는데, 성과관리점수(BSC)를 근거로 S부터 A, B, C까지 등급을 부여받는다. 비서실은 성과를 내는 부서가 아니기에 성과관리점수 자체가 없고 평균등급을 받는다. 이는 내가 이 기관에 소속된 9년간 변함없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인사팀은 올해는 BSC자체가 없는 비서실도 성과등급을 부여하겠다며 예상대로 나에게 C등급을 줬다. C등급은 성과급 지급이 아예 없다. 매일 아침 아이들 등교도 못시킨 이른 시간 출근에도 단 한번도 차질없이 업무를 수행한 직원을 대상으로 근무평가에 이어 성과상여까지 불이익을 준 것이다. 나가라는 말이었다. 안나가면 넌 계속 이런식으로 보복을 당할것이라는 압력이고 위협이었다.
성과급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이 일년간 흘린 땀과 눈물의 결과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위적으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조작될 수 있다면 진정한 땀의 의미는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걸까. 그것도 공정을 솔선수범해야 할 정부부처에서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계수단이며 한 가정 구성원의 목숨과도 같은 노동의 가치가 특정인의 의도대로 움직여지는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3항, 제4항에 따라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사업주는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이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법률로, 공무원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지만 일하는 사람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너무 당연해서인지 그곳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처럼 공무원이기에 받는 혜택도 있지만 공무원이기에 받는 차별도 명백했다. 권익위에 도움을 요청해도 국가공무원법 위반 증거를 제시하라는 매뉴얼적인 응답 뿐. 힘없는 사람은 손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의 의도와 입김이 영향력을 갖는 기관에서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자아실현은 사치였고 가족의 생계수단인 이 일을 지키고자 벼랑끝에 매달려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복직 후 8개월이란 시간동안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었다. 언제까지나 피해자로 남아있는 것보다는 작아서 들리지 않더라도 하고싶은 말을 하고 쓰고싶은 글을 쓰는게 더 나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결국 복직원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 다시 사직원을 썼다. 그렇게 공무원 자리에서 짤렸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부처도 이런 상황이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도 이렇게 괴롭힘당하고 짤리는데 하물며 사기업에서는 얼마나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오늘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전국의 직장인들에게 마음깊이 박수를 보낸다. 계속 문제제기를 하다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