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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엄마 Jul 22. 2020

평범한 사람의 퇴사

세상의 모든 퇴사는 비자발적이다

나는 공무원이며 워킹맘이었다. 이번 직장이 네 번째 직장이었으니 지금까지 총 4번의 퇴사를 감행했다. 첫 번째 퇴사와 지금의 퇴사는 원인이 매우 다르다. 20대 사회 초년생의 퇴사와 40대 가정이 있는 워킹맘의 퇴사가 비슷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20대의 퇴사와 30대, 40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는 사람들의 양상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의 영역은 매우 다양하고 개인의 삶은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직장인의 고충은 비슷하다. 


일단 20대 사회 초년생의 직장생활은 불완전하고 미숙하다. 소수의 대기업과 공무원을 제외한, 신입사원 다수가 소속되는 일반 직장은 처우나 복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근무조건은 특히 신입에게 더 가혹하다. 그동안 배웠던 규칙과 법규와는 다른 직장생활이 펼쳐진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회사에서는 임금체불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초년생은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고, 아직 부모님 우산 아래 있는 경우가 많아 짊어져야 할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1년, 2년 버티고 어느 정도 근력이 생겼다 생각이 될 때쯤 첫 이직에 도전하게 된다. 

나 역시 첫 직장은 다른 조건보다도 내 꿈을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내 꿈은 기자였다. 대학교 졸업반, 한참 자신감 뿜 뿜 하면서 동시에 여기저기 이력서 뿌리며 세상이 생각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기. 언론고시에 많이도 도전했다. 신문, 방송, 통신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전국을 누비던 시절이었다. 특히 방송사 지방 지국은 1명 뽑는데 몇십 명씩 테스트에 응시하는 실정이라 떨어지고 돌아오기를 무한 반복하다 드디어 신생 뉴스통신사 공채 기자로 입사하게 됐다. 유명한, 큰 언론사는 아니었지만 그땐 기자 명함을 갖고 기사를 쓰는 일이 내 직업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내가 쓴 기사가 포털에 올라가고 댓글이 달리고 택시 타면 듣던 라디오 시사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해 소식을 전한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신생 언론사의 자금사정은 너무나도 어려웠고 월급을 몇 번 받지도 않았을 시점부터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대학생 때처럼 부모님의 용돈을 받고 있었고 지극히도 현실적이었던 나의 모친은 언론인이라는 뜬구름 잡는 꿈 대신 퇴사를 추천하기도 했다. 직장인의 재미는 한 달에 한 번 받는 월급인데, 그 재미없이 어떻게 일을 하냐고. 차라리 집 근처 공단에 다니더라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에 다니라고. 실제로 우리 집은 월급이라는 대가 없이도 꿈을 이루도록 팍팍 지원해줄 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특히나 내 위에 선배들은, 가정을 이룬 분들은 더더욱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줄줄이 퇴사의 길을 택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젊었고 그래서 젊음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대졸 신입이라는 사회적 기준에서 볼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처우를 2년 넘게 버티며 이직에 필요한 경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차가 되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신입 때처럼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섰다. 평일에 면접이 잡히면 이런저런 핑계로 휴가를 쓰고 면접에 응한 끝에 이직에 성공하고 첫 사직서를 제출하게 됐다. 


두 번째 회사 역시 딱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으로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공중파 방송사 기자 시험 최종면접에서 낙방하고 상심이 깊을 때 메이저 신문사의 온라인 계열사에 합격하게 됐다. 그렇다. 메이저 신문사 기자가 아닌, 온라인 계열사 직원. 2달 걸려 서류전형 - 카메라 테스트 - 심층면접 - 합숙면접까지 합격하고 이제 2명 중 1명은 합격이 예정된 최종면접에서 사장 얼굴까지 보고 떨어진 메이저 공중파 기자 자리에 한 번만 더 도전해 볼까 고민도 했다. 지금도 후회되는 대목이지만 그땐 내가 취준생이란 사실이 싫었고, 자신감이 땅에 떨어져 있어 또다시 한다고 될까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을 택하게 됐다. 만약 그때 메이저사에 재도전했다면 지금쯤 그곳에서 내가 원하던 방송기자의 모습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을까. 아님 재도전에 또 실패하고 차선책도 아닌 곳에 들어가 또다시 적응하고 애써 만족하며 살았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답에 오늘도 의문을 추가해본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취재기자가 아닌, 온라인 뉴스 편집을 담당했다. 그때만 해도 종이신문이 잘 나가던 시절이라 지면 기자들이 쓴 기사를 온라인에서 편집하는 일은 뭔가 메인이 아닌 조력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열정과 애정을 갖고, 언론계 종사자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달리던 시절이었다. 온라인은 문 닫는 시간이 없기에 3교대로 뉴스 편집을 하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게스트 출연도 꾸준히 하던, 내 인생에서 제일 바쁘게 일하던 시기. 그러나 차선책은 차선책이었고 이곳에서도 2년 여가 지난 시점, 원치 않는 부서 발령을 계기로 두 번째 퇴사가 이뤄졌다. 처음부터 딱 원하는 회사에 입사한 능력자가 아닌 이상, 곁다리에서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며 점차 더 좋은 곳을 향해 가는 것. 이것이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펼쳐진 길이 아닐까 싶다. 

퇴사를 결심하게 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처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급여가 적어서, 동료들과 맞지 않아서, 직장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등등.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진리다.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겪어보니 특히나 높은 직급의 자리는 정상인이 올라갈 수 없는 자리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인성마저 좋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환경에서 오는 몹쓸 괴롭힘과 스트레스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직 등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가는 것만이 평범한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갑질 신고? 모두 무용지물 허울뿐인 제도라는 것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해봐야 해당 규정 찾아서 증거 첨부해서 올리라는 매뉴얼적인 답변뿐이고, 갑질 신고해봐야 회사 대가리에게 올라가는 건데 회사는 갑의 편이라는 것을. 선량한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할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직장인의 삶은 쉽지 않다. 

세상의 모든 퇴사는 비자발적 퇴사다. 법대로 규칙대로, 상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아니 최소한 그게 아닌 경우에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면 자아실현에 앞서 생계수단인 직장을 그 누가 쉽게 놓을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생계수단이기에, 살기 위해 일터에 나왔기에 오늘도 참고 또 참는 것일 뿐. 그 안에서 자아실현의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복 받은 자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대학 졸업 이후 모든 인생을 직장에서 보낸 경험자로서 사회가 변하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 수록 굳은살은 배기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100만큼 빡칠 일에 50만큼만 빡친다거나 나를 괴롭히는 몹쓸 인간을 불쌍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정도는 생겼으니. 말 그대로 해결책이 아닌 굳은살이다. 버티는 힘. 오늘도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동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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