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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던 바다! 제금내기

그토록 바라던,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그건 바로 아들의 제금내기다. 어릴 때 엄마는 ‘제금낸다’는 말을 많이 했다. 따로 살림을 낸다는 뜻이니까 ‘분가하다’ 정도의 의미인 것 같다. 학업이나 직장 등의 사유로 방을 하나 얻어나가도 ‘제금낸다’고 했고 결혼 등으로 살림집을 마련해 나가도 ‘제금낸다’고 했다.

엄마가 여섯 자녀 키우며 수시로 냈던 그 제금, 나도 내고 싶었다. 퇴직 전부터 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내가 내고 싶다고 내는 게 아니었다. 아들이 어딘가에 취업이 되어야, 즉 경제적 독립체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 우리는 물려줄 식당도 없고 같이 탈 배도 없다.

지난 6개월간 우리 집의 일시적 가훈이었다. 문득문득 무거운 기운이 흐르기도 했고 기대로 졸이던 마음은 얕은 탄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래도 서로에게 그 기분을 전달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겨울을 지나 봄을 보내고 이른 더위는 밤에도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아들이 입사를 하게 되어 새로운 곳으로 간다. 그리고 출근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이 시간 동안 지낼 곳을 찾아내고 세간들을 들여놔야 했다. 제금에 꼭 필요한 세간들은 개수는 적을지 몰라도 종류는 다 있어야 했다. 대학 입학 때 기숙사에도 보내봤고 큰아들 제금을 내어 본 이력이 있으니 항목이야 척척이다. 무엇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 꽃무늬만 아니면 됩니다.

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이불집에서 여름 이불부터 한 채 사고 그릇이며 냄비, 프라이팬, 수저도 챙겨본다. 여름이니 작은 선풍기는 필수, 몸이 아플 수도 있으니 상비약도 종류대로 약상자에 넣어본다. 새 수건들은 삶아 여름 햇빛에 말린 후 다시 개어 둔다. 이대로면 제금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제금내기는 막강한 체력과 집중력을 요했다. 일단 시간은 촉박했고 이동 거리는 멀었다. 준비한 세간들을 한가득 싣고 서울 한복판을 자차로 이동하며 볼일을 척척 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주차가 쉽지가 않았다. 몇 번의 경로 재탐색에 내비도 나도 지쳐갔다. 어찌어찌 제금내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퇴짜 맞은 세간들과 접촉 사고로 살짝 들어간 뒤 범퍼가 오도카니 남았다.


- 범퍼야 펴면 되고 남은 세간이야 내가 쓰면 되지.

녹초가 된 몸으로 누웠는데 띠링! 문자가 온다. 입사하고 받은 ID카드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 이 목걸이 하나 목에 걸기가 이렇게 어려웠던가!

새삼 감격스럽다. 그제야 세간만 나간 게 아니라 몇달 간 함께 지냈던 아들도 함께 나간 텅 빈 방이 눈에 들어온다. 복닥거렸던 몸과 마음이 왈칵한다.


- 집으로 돌아가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빨간머리 앤이 마릴라 아주머니의 손을 잡으면서 했던 말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너의 발걸음이 행복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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