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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1박을 했다. 아직 현직에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사는 곳도 다르다 보니 오랜만에 숙박을 예약해서 1박 2일을 같이 보냈다. 어쩜 그대로다!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누가 듣는다! 하며 낄낄거려도 재미있는 게 친구들 모임이다.


이럴 때면 가장 멀리 인천에 살면서 가장 먼저 참석하겠노라 밝히는 적극적인 친구 홍이가 있다. 명랑 쾌활 그 자체인 홍이는 이번에도 KTX를 타고 먼 길을 달려왔다.

- 얘들아, 아무리 내가 잘 놀아도 그렇지, 의사는 물어봐 줘야 하지 않니?

이런 재잘거림이 호텔 로비에 울려 퍼진다면 그건 홍이가 도착했다는 소리다.


한동안 사느라 바빴을 때 홍이의 소식은 계속 들었었다. 남편의 돌연사와 남겨진 빚, 그리고 본인의 암 투병 소식에 급격히 불어난 체중까지. 명랑 쾌활, 그리고 나에겐 예쁨의 상징이기도 했던 홍이의 근황은 들을수록 믿기 힘든 소식들 뿐이었다. 누구보다 격랑의 세월을 살아냈을 홍이는 가끔 모임을 할 때도 빠지지 않고 나타났다. 투자에도 열심이어서 금을 사라느니, 지역별 부동산 추천에 직구보다 쉽다는 ETF 강연을 펼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 이후 만났을 때는

- 맞아,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하며 깔깔댔다. 홍이에게는 아무리 힘든 일이나 슬픈 일도 모두 시트콤이 되는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늘 그렇듯 울산의 일산해수욕장과 출렁다리가 호텔 창밖으로 펼쳐져 있어도 결국 우리가 하는 건 호텔 방에 둘러앉아 먹으며 이야기하는 거 이 두 가지였다. 좀체 대화의 주도권이 홍이에게 오지 않던 순간, 자연스레 건강 이야기로 넘어갔다.

- 하긴 나도 그제 병원에서 뭐가 또 보인다고 오라고 하긴 했어.

다들 전작이 있던 터라 눈이 동그래져서 홍이를 봤다.

- 그런데 여길 왔다고?

다른 친구가 물었다

- 응,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홍이가 눈을 반짝이더니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갔다. 딸만 넷인 홍이네 친정 아빠가 가상의 AI아들을 한 명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다.

- 나에게 아들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나!

하신다는 거다.

- 너네, 있는 아들은 어찌어찌 이길 수 있는데 와, 이 AI아들은 뭘 해도 이길 수 없어.

좌중이 빵 터졌다. 격한 끄덕임 속에 홍이는 아주 만족한 듯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날 아침, 대왕암으로 가는 길은 비가 내리고 바닷바람이 격하게 불었다. 우산은 의미가 없었고 편의점에서 똑같은 비옷을 사서 입고는 날려 갈 것 같은 바닷길 산책을 했다. 홍이에게 물었다.

- 모레 병원 가 봐야지. 그건 또 그때 생각하려고.

하더니 사정없이 몰아치는 비와 바람에 엉거주춤 비옷을 잡아채며 한 마디 한다.

- 야, 몸무게 불어서 좋은 것도 있다. 이 바람에 날려가진 않겠어.

좌중은 또 넘어간다. 홍이에게 지금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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