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Sep 26. 2024



다음 날 선생 집을 가는 동생 손에는 채집통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 잔뜩 성이 나 붕붕 거친 소리를 내는 벌 몇 마리가 들어있었다.

몸 전체가 제습제가 된 것 마냥 물을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아무리 찻물을 마셔대도 뱃속에 걸귀가 든 건지 갈증은 더했다. 마르고 쪼그라든 세포 속으로 이제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해갈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선생이 알려주었다. 차를 다 마시고 나니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 어제보다 더 확실하게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다 잠시 기다리라는 선생의 말에 다시 엉거주춤 앉는 틈에 동생이 내 두 손을 확 낚아챘다.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벌써 선생의 손에 들린 채집통에서 나는 벌 소리가 내 귀에 한 무리 벌 떼 소리처럼 증폭돼 들려왔다.


“언니, 겁먹지만 않으면 괜찮아. 한 번 쏘여봤잖아. 괜찮았잖아, 그렇지?”

“안 괜찮아! 무슨 짓이야! 놔줘!”

“금방 끝나. 조금만 참아.”


내가 발버둥치자 동생이 온몸으로 짓눌러서 방바닥에 납작 깔린 상태로 한 팔을 선생에게 빼앗겼다. 선생은 재빨리 벌 한 마리를 낚아채 침이 있는 꼬리 부분을 잘라내어 엄지 손등 위에 꽂았다. 제 궁둥이가 뜯겨 나간 걸 미처 알지 못한 벌은 독이 올라 침을 쏘았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다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숨을 몰아쉬었다. 동생이 나를 향해 뭐라고 고함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하필 이마를 쏘여 가지고.”


앞에 앉은 사람의 눈길이 내 얼굴에 머물자 엄마는 다시 안절부절못했다. 며칠 전 호박꽃을 갖고 놀다가 벌에 쏘여 내 이마는 벌겋게 부어올라있었다.

엄마는 찻집에 들어설 때부터 내 손을 잡았다 놓기를 계속했다. 내 손을 잡고 있지 않을 때는 내 원피스를 매만지거나 냅킨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냅킨을 접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어디에 있을지를 정하지 못해 내 머리와 옷과 테이블 위를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엄마의 손은 한 사람이 등장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우리와 마주 앉았다. 몸을 내게로 기울인 그 사람은 이마가 아니라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카맣고 기다란 속눈썹 속에 자리한 그 사람의 눈동자는 나와 똑같은 색깔었다. 유난히 옅은 갈색 눈동자에 비친 내 원피스는 원래의 샛노란 빛을 잃어 어딘지 모호한 색깔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신경은 온통 오렌지주스를 새 원피스에 쏟지 않으려는데 쏠려있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둘의 대화를 듣고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기억의 의아함은 대게의 사람들이 그 나이 때의 기억을 거의 못한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년기를 통틀어 기억이 딱 그거 하나뿐이라는 것에서도 두드러진다.


“정말 미안하다.”


그 말에 엄마가 갑자기 내 손을 꽉 움켜잡아서 하마터면 오렌지주스를 쏟을 뻔했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나도 놀라게 했는데 그건 엄마와 완전히 달라서였다. 놀이터 친구 유진이네 엄마와도 달랐고 옆집 강아지 구름이 이모와도 달랐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가끔 엄마가 바나나킥 과자를 사주는 슈퍼마켓 주인아저씨와 닮았고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 타는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와 닮았다.

그리고 둘 중 누가 울었는지 헷갈린다. 찻집을 나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어깨 위로 치마처럼 펼쳐진 머리카락이 걸음에 맞춰 출렁거렸다.

보통 꿈은 여기서 끝나는데 이번엔 그 뒤에 있었던 사건이 하나 더 떠올랐다. 기어이 오렌지주스를 원피스에 쏟은 것이다.


아. 차……가워.

“언니! 정신이 들어?”

“으……. 응.”


눈을 떠보니 동생이 내 얼굴에 물을 뿌려 얼굴이며 옷이 젖어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동생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전 07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